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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불교 승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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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ㅇ%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61.♡.14.37), 작성일 03-08-31 09:09, 조회 3,56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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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예수(임마누엘)의 13세부터 29세까지 16년동안의 행적을 밝힌

각종 기록이 발굴, 수집 되어져 국내에 소개되었다는 내용을 옮겨온 것입니다.



넌 센 스 (예수는 불교 승려이었다?)




성경에도 밝혀지지 않고있는 예수의 13세부터 29세까지의 행적은 그동안 신비속에 묻혀있었다. 그러나 최근 신비에 싸여졌던 그 기간동안 "불교를 수행하던 이름높은 고승高僧이었다." 는 사실이 한 석학碩學에 의해 소개돼 상당한 관심을 끌고있다.


예수의 13세부터 29세까지 16년동안의 행적을 밝힌 각종 기록을 발굴, 수집해 귀국한 장본인은 불문학박사이자 한양대교수인 (민희식씨).


84년 펜번역문학상, 85년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훈장등을 수여 받은바 있는 민교수는 "나는 특정종교의 신자가 아닌 학자로써, 신앙의 문제가 아닌 학문자료의 견지에서, 서양문화의 근본이 되는 기독교를 연구하며 그동안 예수의 업적과 행적을 오랬동안 조사. 연구 추적해왔다."고 말했다.


그 동안 인도의 여러곳을 답사해온 민교수의 예수생애 추적의 개가로 인정되는 이번 자료는 인도. 네팔.. 티베트등 사원에 산재해있던 불교계 경전과 기록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기록들은 그동안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비장된채 공개되지 않던 것을 민교수가 지난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발굴, 입수해 귀국한것. 민교수는 이자료 공개와 발론내용 발표회를 지난 9월20일 조계사관음회를 통해 열었는데 이 이후 기독교계 신학도들 사이에서도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것.


기독교계 기록들이 침묵하고 있는 예수의 청년기와 활동내용을 받고있는 이들 불교계연대기 와 기록은 인도 라다크州 지방의 수도 '레에'남쪽 40km 지점의 '하이미스' 7대사원에서 발견된 티베트어 경전들.


예수생애에서 밝혀지지 않는 기간의 진상에 대해 모호한 점에 짙은 회의를 품었던 서양의 학자들은 많았고. 대표적인 인물이 재정러시아때의 러시아인 '니꼬라그.노그비치'


그는 인도. 네팔등지의 여러사원에 있는 예수의 기록을 모아서 지난 1894년 불어판으로 발표했으나. '예수전'의 편찬자 '에르네스트.르남'및 기독교 단체측의 박애를 받고, 이 자료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번에 프랑스정부의 특별배려로 이 희귀자료를 다시 찾아 귀국한 민교수는 '예수가 원효대사와 같은 불교의 고승으로 활약했다.' 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예수의 불교식 이름은 '이사Issa' 그는 13세때 유태법에 따라 가장권을 갖고 결혼을 해야할 입장에 처한다. 당시 소년들 가운데에 유난히 준수한 '이사'를 사위로 삼고 싶어하는 어느 부호의 끈질긴 요구가 있자, 그는 비밀리에 인도 상인을 따라 인도지역으로 떠난다.


이사는 14세때 아리아인들속에 정착, 힌두거장들에게 베다, 우파니사드등을 공부하나, 사성계급을 주장하는 브라만교에 실망를 느끼고 이를 비판하며, 이곳을 탈출한다.


'이사'는 만인의 해탈가능성과 평등사상을 부르짖는 불교에 매료돼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부다가야,녹야원, 베나레스등지에서 6년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수도생활을 한다.


'이사'의 불교공부는 카시미아를 거쳐 라다크의 레에에서 팔리語, 산스크리트語를 배우며 계속되며 이어 티베트에서는 그곳 밀교계 고승인 '멩게스 테'에게서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과 심령치료 비방등을 집중적으로 익혔다.


불교의 고승인 이사대사大師의 이스라엘 귀국은 페르시아를 거쳐 불교의 복음을 전파하기위해 29세때 이뤄진다. '이사'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불교의 가르침을 몸소실천(간음한 여인의 예)하며 새로운 민중의 희망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렇듯 불교적 연대기에 신라 원효 혜일 대사등과 같이 이사대사의 자세한 활동기록이 소개돼 있는데 반해, 기독교계문헌(누가복음)이 다만 "그때까지 (30세) 예수는 사막에 있었다." 고만 막연히 기록되고 있다.


민교수는 불교측문헌이 정확한 이유는 순교당시의 견문기록임에 반해ㅡ 기독교측 문헌은 오랜세월이 경과된 뒤 여러시기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까닭이라고 지적했다. 뿐만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난뒤 제자들은 기독교 교리의 확립을 위해 예수의 기록을 비교적 정확히 기술한 '토마스'복음서 등이 지나치게 불교적 색체를 띄고 있어 바이블 편집에서 삭제되었다는것.


기독교의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불교의 법화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하는 민교수는 불교의 '장자궁자'와 기독교의 '탕자의비유'외에도 삼위일체의 삼신불에서의 유래등 많은 부분을 예로 들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의 뜻인 '메시아'의 어원은 불교에서 말세중생을 구제하러올 미래불인 '미륵'(마이트리아 혹은 메테아) 에서 유래했다는 일화를 비롯, 예수에게 세례를 준 성聖요한의 이름은 한역불전의 정반왕(석가모니의 부친) 의 서양식 발음(이태리'조바니') 프랑스'장' 영국의'존'에서 나왔다는 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이름은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에서 나온 이름이라은 설이 있다고 민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민교수가 이번에 발표한 두루마리 문서에는 예수와 '필라드(주-빌라도?)'와 의 대립은 예수의 십자가처형, 유다의 배신등 의 숨은 비화까지 철저하게 저술하고 있다.


특히 처형후의 예수의 무덤이 빈것은 이사의 죽음을 계기로 유태인의 반란이 일어날것이 두려워 '빌라도'가 이사의 무덤에서 시체를 옮겼다고 기록돼있다.


또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 제거를 결심한 이유는 민중에세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사가 비록 혁명적 민중지도자가 될 의지가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그를 처형하는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까닭이 라는것.


예수를 이사로 표기한 이 기록에는 모세를 모사로 표기해 소개하며 모사는 이스라엘 인이 아니라 이집트의 두번째 왕자였으며, 차남임 신분때문에 왕위를 계승할수 없게 되자 노예인 이스라엘인들과 '홍해의 간만의 차이'를 이용해 탈출, 제 2의 왕국건설을 꾀했다고 기록했다.


예수생애에 밝혀지지않은 부분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이들 불교적 자료는 한때 '리처드.보크'가 실제로 인도 티베트등을 답사 다큐멘터리 필름(The Lost Years of jesus) 에 담겨진 적도 있다는 것.


이러한 사실에 대해 예수를 신의 아들로 신앙하는 기독교측의 반론 여부에 대해 묻자 민교수는 오히려 강연요청을 받고 있는 이번의 발표는 진실을 밝히려는 학문적 열의의 결과 라고 말했다.


"예수가 불교를 수행하며 승려 활동을 했다고 해서 예수의 위대함이 줄어드는것은 아니지 않느냐?"는게 민교수의 반문이다.



이상의 글은 오래전 86년 10월 26일자 로 발간된 모 주간지에

실린 글이었습니다.



rainbar.gif



< 임마누엘-예수의 "창조"에 대한 가르침>



"창조"는 인류 위에, 신위에 그리고 만물위에 존재하십니다.



"창조"는 그 자체 내에서 하나인 까닭에, 살아있거나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창조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과 동식물들, 그리고 모든 생명이 그들 안에서 (하나)임을

입증하는 창조의 법칙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만물은 둘 또는 셋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틀린 것입니다.

모든것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둘 또는 셋이라고 믿는 것은 어느것이든지 실제로는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둘 또는 셋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안에 있는 영혼은 창조의 한 부분이므로 그것은 창조와 더불어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둘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일원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것이 그로부터 나왔으므로, 어떤 이원성이나 삼원성도 존재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창조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모든 것은 언제나 둘이 있다고 말할때, 그는 그것이

그 둘이 자체내에서 하나이며 합해서도 하나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은 그 자체로 하나이니, 그것이 또한 그 자체로 선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은 그 자체로 하나이니, 그것은 또한 그 자체로 악이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새로운 영혼을 낳아서, 그것이 인간의 육체를 통해 독자적으로 완전하게 되는 것을 허용하며, 그 완전해진 영혼이 창조에게 돌아와서 창조와 하나가 되는것 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창조는 스스로를 완전케 합니다.



"창조"가 새로운 영혼들을 창조하는 것을 중지하여 스스로를 성장하기를

멈추는 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나는 그대들에게 이릅니다.

나의 가르침이 새롭게 가르쳐질 때에는 주의를 기울이시오..

내가 그대들에게 지금 말하는 바대로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니

그대들에게, 또 그대들의 종족에게 이 모든 것들이 먼 미래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그대로 벌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