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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도 함께 벗어날 수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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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133.139), 작성일 04-07-14 01:38, 조회 4,5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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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도 함께 벗어날 수 있다는데...>






▼ 질문



스님 법문에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조상들의 마음도 내 마음자리에 놓으면 다 공법으로 돌아가 조상도 후손도 벗어나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어떤 이치에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 큰스님의 답변



‘어저께도 없고 내일도 없이 항상 오늘’이라는 말씀을 가끔 드리곤 합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저께도 없고 내일도 없고, 오늘 말입니다. 오늘이 영원하다고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조상들의 영령들이건 뭐건 모두, 내 앞에 거론되는 사람들은 전부 주인공 안에다 다 흡수해야 하는 겁니다. 이해가 갑니까?


왜 이렇게 말하느냐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도 우리가 같이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에 살아나가는 데도 걸림이 없고 애로가 없고…. 걸림이 없다 하면 벌써 둘이 아니게끔 융통성이 있게 돌아가서 공생으로 살게 된다, 그러고도 공심 공체 공용 공식으로 걸림 없이 살게 된다 이런 뜻입니다.


지금은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런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뛰면 빠르고 느리게 뛰면 느린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은 뛰고 안 뛰고가 없이 빠르게 생각하면 되고 빠르게 생각지 못한다면, 이해가 안돼서 느리다면 뭐든지 결정이 안 나고 적응이 되지 않죠. 이해가 돼야 뭐든지 결정적으로 흡수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넣으면 넣는 대로 없어진다 해야 되나요? 넣는 대로 둘이 아니다 이런 소립니다. 넣어도 넣어도 늘어나지 않고,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꺼내도 꺼내도 줄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꺼내는 사이가 없다 이런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령들을 다 집어넣으면, 집어넣어서 공심으로 공생으로 공체로 된다면 정말 더하고 덜함도 없이 따뜻하고, 모든 게 자기를 자기가 죽이는 법이 없으니 평화스럽단 얘깁니다, 가정에서도.


여러분도 가정에서 무척 애들 쓰시고 살 겁니다. 이게 너무도 중요한 말입니다. 둘로 보지 않는다면, 둘로 하지 않는다면 둘로 보지 않는 것이고 둘로 보지 않는다면 공생으로 되는 것이고, 공생으로 되면 공심으로 되는 것이고, 우리가 혼자 본다고 해도 혼자 보지 않고 서로 더불어 보는 거니까요. 그렇게 해서 공심으로만 볼 수 있다면 불안(佛眼)이 되죠. 이 육안으로 보는 거는 그냥 우리가 지금 현실에 보는 거고 심안으로 보는 거는 마음으로 보는 거고, 그 경지가 참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차원을 모두 여러분은 모르고도 올라가야 되죠. 모르면서 올라가고 올라가면서 알게 되고, 또 살다 보면 알게 되고, 누가 가르쳐 줘서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그렇게 알게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 이 공부를 못하고 깨우치질 못했다고 ‘그거 우린 깨우치진 못해서 그걸 못해!’ 이러지 마시고, 그렇게 하시는 동시에 그게 안팎으로 벗어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우리 모습도 벗어날 수 있는 거지만 돌아가신 영령들도 벗어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집안도 편안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살다 보면 남인데도 영령들이 ‘저 사람한테 가면 내가 세세생생을 아주 벗어날 텐데…’ 하고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면 꿈에도 보이고 그냥 그럽니다. 그러면 그거 얼른 응해 줘야죠. 응해 주고, 응해 주는 동시에 하다못해 법당에 와서 절이라도 서너 번 올리고 마지막으로는 주인공에다 다 합쳐서 둥글려서 그렇게 관하시면 아주 좋은 일인 것입니다.


내 마음 주인공 하나가 겨자씨라면 일체제불을 다, 일체제불도 각처 각급의 부처님 상이죠, 부처님의 모습이고. 그런 걸 다 이 가죽 속에다 넣고 다닌단 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모시고 쫓아다니면서 받들고 그러지 않아도 될 수 있겠죠. 일체 중생들도 다 넣고. 둘이 아닌 까닭에요. 우리가 이 세상의 모두 일체를 몽땅 다 넣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죠. 한 주먹 쥐어다가 넣어도 쥔 사이도 없고 넣은 사이도 없다. 그러면서도 넣어졌다. 또 꺼내서 풀어 줘도 풀어 준 사이가 없이 풀어 줬다. 이것이 바로 보살행이며 보살의 법도입니다. 즉 공법의 도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