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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의 수(數, 水) 13! 그 비밀을 밝히다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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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26.173), 작성일 09-03-30 23:03, 조회 12,98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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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의 수(數, 水) 13! 그 비밀을 밝히다 1부’






언제나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세요.


수(數, 水, Number)



우리가 흔히 수(數, 수학)를 생각할 때는 간단한 셈(사칙연산)만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질서정연한 논리와 추론이 따르는 수학이 아닌, 간단한 셈 하나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數)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학(數學)은 질서에 관한, 패턴(유형)과 구조에 관한, 그리고 논리적인 관계에 관한 학문입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한 것이며, 우리의 사유(思惟)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지루하고 흥미 없기는커녕 온갖 유형의 창조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상에서 보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수학이 내재(內在)하고 있습니다.

왜 호랑이 몸통은 줄무늬인데 표범은 얼룩무늬일까? 우주는 둥근가, 네모난가, 아니면 다른 어떤 모양인가? 올록볼록한 표면 덕분에 골프공이 하늘에 더 오래 떠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른바 대중의 정서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만일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런 대중의 의향을 정확히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인간 정신의 도구들 가운데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 제기되는 이런 수많은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힘과 재주를 갖춘 유일무이한 분야가 바로 수학입니다. 수학은 단지 고리타분한 방정식과 증명들의 저장소가 아니라 생기 있고 창조적으로 세상을 사유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대양의 심해에서부터 희미한 빛을 가냘프게 발산하는 저 멀리 은하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의 공기역학적인 도약 기술에서부터 4차원 세계의 그림자들에 이르기까지, 수학은 이 세상과 그것의 작동 원리를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비행기는 수학을 이용해 날고 항로를 찾습니다. 또한 병원은 수학을 이용해 설계한 장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약은 수학을 이용해 검증됩니다. 수학은 전화 시스템의 배후에 놓여 있으며, 텔레비전과 라디오, 그리고 CD 플레이어의 한 구석에도 숨어 있습니다. 수학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어떤 물건을 살지 판단하는 데도 사용되며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지 결정하는 데도 사용됩니다. 또 다른 수학의 산물인 컴퓨터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영화는 흔히 수학적 기법을 이용해 제작됩니다. 수학은 스포츠와 여가 활동에서도 점차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참신한 아이디어와 통찰을 수학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행성 탐사선의 궤도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밀한 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출처: Messenger, Mercury, and General Relativity | MESSENGER Web Site



우리가 수학책을 펼쳤을 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온통 이상한 기호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수학이 우리 일상과 밀접하다면 왜 알 수 없는 기호들을 쓰는 걸까요? 그것은 수학자들이 연구하는 패턴이 추상적인 패턴이기 때문입니다.



수학자가 다루는 추상적인 패턴은, 이를테면 세상 만물의 ‘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학자는 세상의 한 측면, 예를 들어 바이러스나 꽃이나 포커 게임을 보고 그것들이 갖는 특징을 끄집어낸 다음 나머지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버리고 바로 그 추상적인 뼈대만을 남겨놓습니다. 바이러스의 경우, 남는 추상적인 패턴은 매듭의 패턴, 다시 말해 DNA 분자가 감겨 있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꽃의 경우에는 대칭의 패턴이 될 것이고, 포커 게임의 경우에는 카드의 분배나 돈 거는 패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추상적인 패턴을 연구하려면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표기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음악은 훌륭한 비유가 됩니다. 음악가는 음의 패턴을 기술하기 위해 추상적인 표기법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음악을 들을 때 마음속에 생겨나는 매우 추상적인 패턴을 종이 위에 기술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가락을 피아노, 오보에, 플루트 등 여러 악기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악기는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가락은 동일합니다. 특정한 가락을 결정하고 그 가락을 다른 가락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사용하는 악기가 아니라 바로 그 악기가 연주하는 악보의 패턴입니다. 음악가가 음악 특유의 표기법을 사용해 종이 위에 옮겨놓은 것은 그런 추상적인 패턴이며 특정한 악기가 들려주는 특정한 소리가 아닙니다. 추상적인 패턴을 끄집어내기 위해선 음악가도 수학자처럼 추상적인 표기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수학자가 수학적인 기호로 가득 찬 종이를 들여다볼 때, 그가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은 그 기호가 아닙니다. 그들은 수학의 기호들을 ‘통해’ 그 기호들이 나타내는 패턴을 직접 읽어냅니다.



수학(數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손에 들고 있던 물체를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밑으로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답은 중력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력’이라는 것은 단지 그 원인에 붙인 이름일 뿐입니다. 이름만으로는 진정한 원인을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원인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정확한 답은 17세기 뉴턴의 운동에 관한 방정식입니다. 뉴턴의 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계속 돌 수 있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도 그 힘 때문입니다.



또한 18세기 초, 다니엘 베르누이가 발견한 방정식은 비행기를 공중에 뜨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우주선이 지구의 사진을 찍어오기 2,000년 전 그리스의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BC 273? ~ BC 192?)는 수학을 이용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수학을 이용합니다. 우주의 기원과 우주의 가장 먼 곳에서부터 바다의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우연적 사건의 패턴에서부터 인간 정신의 내면 작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수학(數)이 없었다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수(數, 水, Number)와 자연(自然)





출처: Fibonacci spiral fun with Java3D



자연현상 중에는 수학적인 성질을 확연히 보이는 것이 있는데, 눈의 구조, 수정, 그리고 벌집의 육각형 방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또한 광물 중에도 규칙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데, 예를 들어 전기석(電氣石)은 삼각형, 소금은 정육면체, 다이아몬드는 8면체, 수정은 6각형, 그리고 황 결정은 마름모 기둥 꼴의 결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계에서 대칭은 비대칭보다 더 흔합니다. 이런 관찰을 통하여, 자연과 수 사이에는 대응 관계가 내재한다고 쉽게 가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모든 것에서 이렇게 즉각적인 대응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이것은 주로 인간의 지각 범위와 관련된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우주를 지각하는 범위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과학은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아직도 우리의 이해를 훨씬 넘어서는 자연 현상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런 현상들의 한 극단에서,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를 찾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반대편 극단에서는 물리학자들이 크기를 잴 수 없는 아원자 입자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들과 관련된 엄청난 범위를 고려한다 해도, 아직도 인간의 지각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술의 진보를 통해 보완할 수 있는) 인지의 한계 너머에는, 인간의 경험에 대한 일반적이고 더 큰 제한이 존재합니다. 공간적으로 우리는 아주 일반적인 은하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알고 있을 뿐이고, 시간적으로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은 우주의 나이에 비할 때 우스울 정도로 찰나일 뿐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아직까지 우리가 경험이나 관찰로 알고 있는 우주가 순수 수학으로 기술되는 우주보다 훨씬 더 심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수론에서는 무한하게 많은 종류의 무한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실제의>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찰에 비해 주눅이 들 정도로 광대합니다. 간단한 예로 수직선상에 다음과 같이 양의 실수들이 표시되어 있다고 보십시오.




이런 과정은 <무한히> 계속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3와 4 사이에 존재하는 수의 개수 또한 무한합니다. 직관적인 논리로는 이 무한이 양수 전체의 개수를 나타내는 무한보다 작아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학적인 용어로 이 둘의 크기는 같습니다.



자연과 우주의 구조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과학적 방법이라고 불리는 것을 통해 얻어진 것인데, 이 방법은 본질적으로 경험주의적인 것입니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경험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만을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 수학은 이런 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은 수백만 개의 삼각형을 관찰함으로써 얻어지는 결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공리(수와 수의 성질에 관한 근본적인 진실을 요약하기 위한 진술)들에 수학적인 논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입니다.



수는 현실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혀 경험적이 아닌, 완전히 추상적인 규칙에 따라 수를 다룹니다. 수는 공간상에도 시간상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섯>이라는 성질이 존재한다면, 이 성질은 설사 우주의 모든 것이 여섯이 아닌 개수들로 조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현실의 존재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여섯(또는 무한을 포함한 다른 모든 수)>이라는 성질은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이 성질은 우주가 끝난 뒤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수를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면, 왜 다양한 문화에서 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영원과 신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 여신 또는 신들과 여신들 그리고 인간에게 존재하는 영원하고 신성한 것(다시 말해 영원한 혼)은 모두 수와 같은 영역에 속합니다. 이 영역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영역입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인간의 두뇌가 수와 관련된 모든 연산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조작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단지 아주 대략적인 것만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발견되는 특이한 직관이나 놀라운 암산 능력은 현재의 우리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방식으로 수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두뇌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자연에 나타나는 수열(數列)의 다양함과 규칙성을 조사하기 시작하면, 환상적인 패턴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매우 혼란스럽고 자유분방한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들의 무한한 증식은 특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0, 1, 1, 2, 3, 5, 8, 13, 21, 34, 89, 144, 233, 377, 610, 987…}



이름하여 ‘피보나치 수열’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0과 1로 시작된 피보나치 제3항의 수는 제1항과 제2항의 합, 제4항의 수는 제2항과 제3항의 합이 되는 것처럼 선행한 두 수의 합이 그 다음 수가 되는 수열을 말합니다.



피보나치 수열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 수열의 수들 중에는 흥미롭거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복잡한 수비학적인 성질들과 관련된 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피보나치 수열에서 인접한 수들은 황금률, 황금분할, 또는 신성 비례라고 알려진 특별히 중요한 수에 점점 더 가까운 수를 만든다는 것이며, 더욱이 이 수열에 존재하는 비례와 많은 생물(특히 식물)에 존재하는 차원에는 대응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 피보나치 수열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부분이 ‘꽃잎’입니다.

‘화이트칼라(White calla) 백합’의 꽃잎 수는 1장이고, 등대풀(Euphorbia)은 2장, 붓꽃은 3장, 야생장미, 동백, 채송화, 딸기꽃은 5장, 코스모스·모란은 8장, 금불초·금잔화는 13장, 과꽃과 치커리 21장, 데이지와 질경이는 34장, 쑥부쟁이는 55장 또는 89장입니다. 그리고 대다수 꽃의 잎수는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 1장, 2장, 3장, 5장, 8장, 13장, 21장, 34장, 55장, 89장 안에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꽃잎들이 피보나치 수열의 수를 따르면서 어떤 생존 이익을 볼까요?

꽃잎은 꽃이 피기 전, 봉오리를 이루어 내부의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리저리 겹치면서 효율적인 모양으로 암·수술을 감싸기 위해 바로 피보나치 수열이 적용된 것입니다.




또한, 피보나치 수열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식물의 잎 차례입니다.

잎 차례는 줄기에서 잎이 나와 배열하는 방식입니다. 잎차례는 t/n으로 표시되는데, t번 회전하는 동안 잎이 n개 나오는 비율이 참나무와 벚꽃 사과는 2/5이고, 포플러 장미 배 버드나무는 3/8로 모두 피보나치 숫자입니다.



전체 식물의 90%가 피보나치 수열의 잎차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잎차례가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는 것은 이것이 잎이 바로 위의 잎에 가리지 않고 햇빛을 최대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성 비례의 수는 많은 문화와 세대에 걸쳐(일반적으로 분수의 형태로) 숭배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수의 기하학적인 성질과 자연의 성장 패턴 속에서 이 수의 분명한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신성 비례의 비를 따라 길이와 넓이를 가진 직사각형을 그리고 마주 보는 두 꼭지점을 잇는 원호를 그리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우리가 흔히 보는 친숙한 나선 패턴이 나타나게 됩니다.



황금 비율(Golden Spiral)



자연계에서는, 어떤 비율에 따라 확장하거나 수축하는 패턴들은 흔히 황금비(1.618…)를 따릅니다. 솔방울의 비늘들, 파인애플의 나선형 열, 해바라기 꽃 등 많은 식물에서 잎의 배치 또한 신성 비례가 되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식물 성장에서 보여지는 수학적인 일관성은 창조된 우주 전체가 수에 대응될 뿐만 아니라 그에 해당되는 에너지로 진동하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자연 현상은 너무나 다양하므로, 아주 넓은 범위의 자연 현상에 걸쳐 수리적인 대응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간단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보다 좀 더 흥미로운 것은, 자연이 (마치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듯이)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생물도 11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6과 8의 패턴에 대한 예는 자연에 널려 있지만, 7과 9의 패턴은 극히 드물고, 이것은 13과 17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9세기 말엽, 막스 플랑크는 빛이 파동으로서 방출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작은 격발 단위로 방출된다는 것을 관찰하였습니다. 플랑크는 이 단위를 라틴어로 <얼마나>를 나타내는 Quantum의 복수인 Quanta(양자)라고 불렀습니다.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막 태동하던 원자의 움직임에 관한 이론에 플랑크의 이론을 적용하였습니다. 1913년 보어는, 전자가 양성자와 중성자의 핵 주위에서 한 궤도로부터 다른 궤도로 도약할 때에는 에너지가 원자로부터 빛의 양자(광자)의 형태로 방출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보어에 따르면 이 <도약>이라는 것은 아주 특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어느 한 순간에 어떤 궤도에 존재하던 전자는 다음 순간 다른 궤도에 존재하게 되고, 그 사이에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놀라운 전이는 <양자 도약>이라고 불립니다.



플랑크의 양자 이론에 의하면, 어떤 입자의 위치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나의 빛의 양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양자의 존재 바로 그 자체가 관찰의 대상이 되는 입자에 영향을 미쳐서 우리가 예측할 수 없도록 그 입자의 속도를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하이젠베르크는 그 입자의 위치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 입자의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의 곱은 절대 어떤 특정한 양 이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그 특정한 양은 현재 플랑크 상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세기 동안, 경험주의 과학은 비록 우리가 정확하게 관찰하고 결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주는 예측 가능하고 확실한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믿음에 토대를 두어 왔습니다. 따라서 불확정성의 원리는 필연적으로 깊은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가 태엽 장치처럼 움직인다는 모델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양성자나 중성자보다 작은 입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칼텍의 물리학자 머리 겔만에 의해 <쿼크>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쿼크에는 6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상향, 하향, 이상, 매혹, 상층 그리고 하층이 그것들입니다. 각 종류는 세 가지의 <색(적, 녹, 청)>으로 나누어집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의 색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플랑크의 불확실성 상수, 카오스 이론 그리고 매우 현대적인 다른 수학 개념들은 사실, 역설적으로 아주 오래된 고대의 어떤 개념으로의 완전한 회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이 친숙했던, 유한함 속의 무한함이라는 개념으로의 회귀입니다. 이 문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현대 수학의 영역은 프랙탈의 학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책들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프랙탈의 아름다움은, 바로 프랙탈의 패턴 속에서는 자연에서 볼 수 있는 패턴들을 생각나게 하는 아주 놀랄만한 대칭과 비대칭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현대의 프랙탈 연구는 베노이 만델브로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뉴욕의 IBM에서 근무하던 프랑스 출신의 수학자였습니다. 만델브로트의 설명은 1967년에 과학지 『사이언스(Science)』에서 처음 논문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논문은 주어진 해변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아주 간단한 지리적인 업무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합니다.



. 만델브로트의 프랙탈: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소수(小數)차원을 특징으로 갖는 형상을 일컫는다. ‘프랙탈’이란 이름은 1975년 B.B.만델브로트에 의해 지어졌으나, 이러한 형상들에 관한 추상적 논의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칸토르 집합, 코흐 눈송이, 시어핀스키 삼각형 등이 그 예이다.





만델브로트의 프랙탈




칸토르 집합(Cantor Dust): Initiator and Generator for constructing Cantor Dust.

칸토르 집합(Cantor Dust): Levels 2, 3, and 4 in the construction of Cantor Dust.




코흐 눈송이(Koch Curve)




시어핀스키 삼각형(Sierpinski Triangle)
출처: Basic Concepts in Nonlinear Dynamics and Chaos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Sigmoid Function Simulation(모의 실험)



먼저, 해변에서 해발 10,000미터(33,000피트)로 비행하면서 해변의 사진을 찍습니다. 만과 곶이 보일 것이지만, 자세히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적어도 그 해변의 길이를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다음으로 해발 500미터(1,600피트)로 비행하면서 그 해변의 사진을 다시 찍습니다. 그러면 해안선의 출입이 좀 더 분명하게 보이게 됩니다. 이번에는 해안선의 길이를 계산하는데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해안선의 돌출부와 만입부들을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이 해안을 정말 가까이에서, 즉 해발 5미터(16피트)에서 관찰한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엄청나게 많은 세밀한 부분을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5센티미터(2인치)에서라면, 더욱 많은 것을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5개의 원자만큼의 넓이에서라면 더욱 많을 것을 다루게 될 것이고, 이런 과정은 무한히 계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3과 4 사이의 수의 개수가 무한하다는 개념과 아주 유사합니다. 물리학자라면 측정이 가능한 범위에는 물리적인 제한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지만, 수학적으로는 한계가 없습니다. 이 해안선의 길이는 정확하게 측정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원래의 길이에 더욱 가까운 값을 구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정확한 길이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현실적이고 유한하며 물리적인 대상인 해안선의 길이는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실제의 물리적인 해안선의 극심한 불규칙성 뒤에 존재하는 수학적인 패턴은 사실 극도로 정돈되고 예측이 가능한 축적과 변환의 패턴입니다. 이 기본 개념은 아주 간단히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직선을 하나 긋습니다. 그 직선을 어떤 연산에 따라 변환합니다. 새롭게 생성되는 직선마다 (그 직선의 축적에 맞게) 같은 연산을 반복합니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합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각 단계를 <반복>이라 합니다.



프랙탈은 아주 복잡한 것이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 내재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수비학자들에게 프랙탈이 중요한 이유는 프랙탈이 생명과 수의 관계라는 개념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연의 생명체 세계에서의 창조, 확장, 번식 그리고 변화가 수에서 관찰되는 것과 동일한 기본적인 패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845년, P.F. 베르헐스트(Pierre François Verhulst)라는 수학자는 최대 한계치를 향해 증가하는 군집에 대한 계산의 법칙을 공식화하였습니다. 이 공식의 적용으로부터 프랙탈 기하학과 관련된 아주 특이한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Logistic Equation
출처: 출처: Logistic Map - from Wolfram MathWorld

참고: Chaos and the Logistics Map Project



베르헐스트의 공식(Verhulst Equation)에서 성장률이 2(다시 말해 200%)보다 작으면, 모든 것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진행됩니다. 군집의 크기가 최대에 도달하면 그 크기는 줄어들고, 줄어든 크기는 다시 최대값에 도달할 때까지 증가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런데, 성장률이 2보다 조금 커지면, 군집의 크기는 2개의 값 사이에서 진동하기 시작합니다(성장률이 2.1이 되면 0.82와 1.13의 값으로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성장률이 2.5가 되면, 군집의 크기는 4개의 값 사이를 진동합니다. 성장률이 2.55가 되면, 새로운 주기인 8개의 값 사이로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2.565의 성장률에서는, 진동에 관련된 값이 16개 됩니다.



성장률이 2.57에 도달하면,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진동에 관련된 값의 무한하게 되면서, 군집의 크기가 완전한 혼돈 상태처럼 변화하고 어떤 패턴도 발견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혼돈의 상태에도 질서는 존재합니다. 이 혼돈은 혼돈스런 양상을 보이는 개별적인 대역들로 나뉘어집니다. 성장률이 3 근처일 때는 단 1개만의 혼돈 대역이 존재하지만, 2.57과 3 사이에서는 각 값에서의 혼돈 대역의 개수가 무수하고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2.679에서는 2개의 혼돈 대역이 존재하고, 2.593에서는 4개가 존재하며, 이후로 8개, 16개와 같이 늘어나 결국 무한한 혼돈 대역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르헐스트의 공식(Verhulst Equation)의 3차원 이미지
출처: Unlimited Growth: How to Sustain Success



이런 다소 모호한 관찰의 진정한 의미는 만델브로트가 현대의 강력한 컴퓨터를 사용하여 프랙탈 패턴을 만들어 낼 때까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만델브로트가 발견한 것은, 그가 컴퓨터에 프랙탈 방정식을 넣어 그 방정식의 그래픽 이미지를 만들어 냈을 때, 어떤 이미지에는 그가 처음에는 점 혹은 얼룩으로 오인한 작은 섬들이 주 이미지와는 고립된 상태로 화면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그 섬들을 관찰하자, 그 <점>들은 사실 주 이미지의 작은 복제판임이 분명해졌습니다.



그 섬들은 다른 장소에 나타난 자신의 복제판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이 자기 복제적인 이미지가 나타나는 장소는 베르헐스트의 연구에서 혼돈이 나타나는 지역들 사이의 간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우리는 아직 자연에서 일어나는 창조와 재생의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랙탈 기하학의 수학 또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두 과정은 놀랍고 아름답도록 유사합니다. 우리가 자연의 동역학적 과정을 더 많이 발견할수록, 그 토대를 이루는 영원한 수리적인 패턴을 더욱 많이 그리고 더욱 분명하게 관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수(數)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숫자는 신성한 진동과학이며 신(神)의 언어입니다. 지구에는 1에서 9까지 아홉 개의 숫자에다가 영(0, Zero)이 있습니다. 인류의 현실은 이들 10개의 숫자와 그들 간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신성한 진동 과학은 늘 지혜의 열쇠라고 여겨졌으며 고대의 신비학교들은 엄격하게 뽑은 입문자에게 신성한 진동과학을 전수했습니다.



셀 수 없이 오랜 세대를 거쳐, 인간은 어떤 성질이나 특질을 특정수와 관련시켜왔습니다. 다음은 다양한 문화, 종교, 그리고 신화에서 부여한, 속성과 수와의 관련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數, 水, Number)의 속성



0[靈, Zero]: 가능성, 간차원(間次元, Interdimension)적인 수의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수.



영(0)은 무(無, nothing)가 아니고 또한 무한(無限, infinity)도 아닙니다. 그것은 간차원적인 정수입니다. 여러분이 12에 기초한 수체계로 그것을 사용하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필요한 마법이 될 것이고, 여러분을 목표(stars)로 데려갈 것입니다. 12에 기초한 수 체계에서 영(靈)은 가능성, 존재하는 것, 즉 진정으로 간차원적인 수의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수입니다.


출처: Kryon - 세 번째 DNA 층의 활성화


“0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0을 렌즈로 삼으면 온 세상이 보인다.”(카플란)



‘0’ 또는 ‘무(無)’에는 아무것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존재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없음’의 영역입니다. 철학자는 인식하려 했고, 신비주의자는 상상하려 했으며, 천문학자는 찾으려 했고, 신학자는 믿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없음’을 먼저 ‘보여준’ 것은 수학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0’이었습니다.



카플란에 따르면 ‘0’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인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 마야 문명에서도 ‘0’의 개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0’의 개념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것이었고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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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문자를 해석해 보면 0에 해당하는 기호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를 표기할 때 비게 되는 자리를 채우는 기호입니다. 마야 문명 역시 0을 사용했습니다. 중국이나 유럽에서는 0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숫자 체계에서는 큰 수를 표시하기 위해 새로운 기호들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게다가 그런 숫자를 가지고 곱셈 같은 것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셈을 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산판(abacus), 중국에서는 산목 또는 주판을 사용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정해진 위치에 돌이나 구슬을 놓아 수를 표현하는데 해당되는 단위의 수가 없으면 안 놓으면 되기 때문에 0이 필요 없습니다. 대신 그런 도구들을 다루는 것 자체가 어려운 기술이고, 계산이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도에서는 모래 위에 금을 그어 몇 개의 칸을 만든 뒤, 1, 2, 3, 4, 5, 6, 7, 8, 9 에 해당하는 숫자를 칸에 써 넣어 수를 표현하고 계산을 했습니다. 역시 203처럼 어떤 단위에 해당하는 숫자가 없으면 그 칸을 비워 놓아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이 방법 역시 유럽이나 중국의 방법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6 세기 초, 인도 사람들은 칸을 없애고, 대신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들의 언어에 있었던 sunya라는 말에 해당하는 작은 동그라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인도 언어에서 숫자를 표현하는 방법은 지금의 십진기수법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이 6세기 초 비로소 기수법에 적용된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지금의 계산법과 비슷한 방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즉, 계산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까지도 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십진기수법 및 계산법이 된 것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0은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한 기호였으나 6 세기 말에는 이것이 "아무 것도 없음" 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 로 취급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자산, 무, 부채로 불리는 양수, 0, 음수의 개념이 나타나게 됩니다. 즉, 인도 사람들이 한 것은 단순히 0이라는 숫자를 발명했다기보다 발달된 기수법과 계산법, 그리고 0이라는 대수적 개념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도 수학자들의 기여는 그들이 최초로 ‘0’을 독특한 기호가 아닌 하나의 숫자로 취급하고 ‘0’을 포함한 숫자들의 관계에 주목해 수준 높은 추상화를 이뤄내며 수학의 큰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아랍 상인들을 통해 서부유럽에 ‘0’이 전해지자 유럽인들은 그 안에서 마법과 음모를 읽어내며 주춤했습니다. 하지만 중세 유럽인들은 결국 그것을 ‘없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해 내는 신의 전지전능함을 표현하는 기호로 숭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흐른 지금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컴퓨터는 오직 0과 1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0’만 남는 세상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편 과학자들은 ‘없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없음’을 만들어내기라도 하려고 했습니다. 독일의 오토 폰 게리케는 “진공은 불가능하다”는 무책임한 말로 2000여 년간 서구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도전하며 1654년 ‘마르데부르크의 반구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반구를 연결해 진공의 상태를 만들고는 16마리 말의 힘으로도 이 반구를 분리시킬 수 없음을 보여주며 진공의 상태가 ‘존재’함을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진공(vacuum)’이 곧 ‘없음’일 수는 없었습니다. 진공상태에도 우주에 충만한 ‘에테르(ether)’가 있다는 신화가 오랜 세월 지속됐습니다. 그 후 ‘에테르’의 신화를 깨뜨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이 등장하며 ‘없음’의 영역에 대한 추구는 이어졌고, 이제 소립자물리학부터 우주 전체를 논하는 천문학까지 다양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확인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곳에서는 여전히 철학, 종교, 수학이 ‘없음’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진공(眞空)은 직관적으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아무것도 없는 무와는 다르며, 진공은 무(無)와는 다르게 물질은 없지만, 공간은 있는 상태입니다.



진공[眞空, Vacuum]

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1/1000㎜Hg 정도 이하의 저압을 가리킨다. 진공도는 저압상태의 공기의 압력을 그대로 이용하여 표현한다.



실제로는 완전한 진공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보통 1/1000(10-3)㎜Hg 정도 이하의 저압을 진공이라 한다. 진공으로 만든 용기 내에 남아 있는 기체의 압력을 그때의 진공도라 한다. 진공전구의 진공도는 10-2∼10-5㎜Hg, 수신용 진공관은 10-4∼10-6㎜Hg, TV 브라운관은 10-6㎜Hg 정도이다. 현재 인공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진공도는 10-12㎜Hg 정도인데, 이때에도 1㎤당 약 3만 5000개나 되는 기체분자가 남아 있다고 한다.



진공펌프를 사용해서 용기 속의 기체분자를 뽑아내어 진공을 얻는다. 진공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공펌프를 계속 동작시키면서 작업하는 진공건조기와 같은 조립장치나, 전구·진공관처럼 배기 후에 용기를 밀봉하는 방법 등을 이용한다.



예를 들면 조립장치 용기로는 금속제품을 사용하는데, 접합부에는 기체가 방출하기 쉬운 고무 등은 사용할 수 없다. 진공관 내에 봉입한 전극 등 금속부분은 배기하면서 빨갛게 달군상태에서 기체를 사전에 방출하는 작업을 한다. 관 내부에는 바륨·마그네슘·붉은인 등을 주재료로 하는 금속조각을 증발시킴으로써 관벽에 막을 만들어 전극에서 나오는 기체를 이것에 흡착시킨다.



진공의 응용

현재 전구나 각종 진공관을 비롯하여, 진공 속에서 물질을 증발시켜 그 속에 놓아 둔 물체 표면에 균일한 막을 입히는 진공증착법(眞空蒸着法)이 개발되어 렌즈의 반사방지막이나 반사경 제조 등 광학공업에 획기적인 기술상 진보를 가져왔다.



또 진공 상태의 물질은 가열하지 않아도 잘 건조되므로, 혈액 보존을 비롯하여 페니실린 등 고온으로 가열하면 효력을 잃어버리는 약품 농축 등에도 진공기술을 응용하고 있으며, 비타민을 파괴하지 않고도 식품을 건조시키는 기술도 개발되어 임상의학·약품공업·식품공업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트랜지스터나 집적회로(IC) 제조 등 전자공업에도 중요한 기술이다. 이는 1930년대에 그 기초를 잡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널리 보급된 기술이다.



현대 물리학에서의 진공

진공은 물질이 전혀 없는공간이지만 중력과 전기·자기력이 전달되는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장(場)의 양자론에 의하면 역장(力場)에 대응하는 소립자의 존재를 생각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진공은 에너지가 최소인 상태, 즉 장(場)의 해밀토니안(Hamiltonian)의 고유값이 최소인 상태로 정의한다.



이론물리학의 진공

이론물리학에서 진공은 에너지가 0인 상태를 뜻한다. 에너지가 0이 아니지만 진공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 상태를 가짜 진공(false vacuum)이라 부른다.



양자 마당 이론

물리학의 양자 마당 이론에서의 진공은 매질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아주 짧은 시간동안 에너지의 요동이 있어 입자가 쌍생성되고 쌍소멸한다. 이 때 지나가는 빛은 영향을 받는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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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一]: 하나, 창조주, 하나님(神), 하늘(天), 근원, 양성(兩性)…



숫자 1은 아주 간단한 수 같지만 알고 보면 무척 신비로운 수입니다. 모든 수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수이자 어떠한 다른 - 양파처럼 모든 수들을 그 안에 품고 있는 특이한 - 수로도 나누어지지 않는 숫자 1, 이런 특별한 수는 숫자에서 0을 제외하고는 유일합니다.



1은 시작을 뜻하며 그것 자체로서 완전해서 그 어떤 다른 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분을 표시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노계집(蘆溪集)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
출처: www.hananim.com


. 우리 한민족 고유의 성호(聖號)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동양 사상에서 하나(一)는 세상의 처음이자 모든 만물의 근원(根源)을 말하는데, 주로 하늘을 상징하며 사람을 포함한 모든 자연물이 하나(一)인 하늘에서 비롯됐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는 위대하고 거대하며, 유일한 것입니다. 하나는 단지 한 개를 뜻하는 숫자가 아니고 하늘(天)이나 신적(神的)인 존재(存在), 그리고 매우 거대한 하나(大)를 뜻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점은 하나(一), 하늘(天), 하나님(神), 한글(큰글, 大文)을 보면 쉽게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란 말은 기독교의 전유물처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란 말은 본디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서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기독교를 전도하기 위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하나님이란 용어를 야훼대신 사용하면서부터 기독교는 급속도로 전파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이란 말은 우리 민족의 3대 경전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통하여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일신이란 一神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
삼일신고 제2장의 하나님은 一神, 즉 한민족의 하나님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한민족의一神은 동서고금의 모든 유일신과 절대적인 신의 사상을 설명한 것입니다. 또한 미래 인류가 추구할 가장 높은 인본주의 개념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이란 말을 가장 처음 한글로 표기한 사람은 조선시대 선조 때 시인 노계蘆溪(1561-1642)의 노계가사 중에 “하나님”이란 단어를 사용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나 언더우드(L.H Underwood)는 선교 보고서에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 왕국에서는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 … 그리고 유일한 신 하나님은 크고 유일한 하나(Only ONE)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기록이 있듯이 우리 민족은 고구려뿐만 아니라 한인천제의 한국시대와 한웅천왕의 배달나라, 그리고 단군시대의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이 경전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서 발견된 솟대 | 출처: 다음 블로그



<엘리아데>는 북극권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종교는 한 가지 일치하는 것이 있는데 종족별로 언어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상계의 대신(大神을) 전능한 창조신으로 알고 있고 그들을 하나님으로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즉 몽골족은 텡그리(Tengri), 부리아트족은 텡게리(Tengeri), 볼가 타타르족은 탱게레(Tengere), 벨티르족은 팅기르(Tingir), 야쿠트족은 탕가라(Tangara) 등으로 부릅니다.

이러한 말의 뜻은 “높은 곳에 계시는 주님”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 터키나 타타르인들은 “추장, 임금, 주님,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기독교가 성경을 한글로 처음 번역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입니다. 그가 1882년과 1883년 누가복음전서를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하면서 하나님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은 <이수정>으로 박영효와 일본에 수신사로 갔습니다. 일본 목사 야스가와에게 세례를 받고 1885년 신약마가복음언해를 일본에서 출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데 대한 내부적인 반감도 적지 않았다는 것을 선교사 보고서 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1887년 서울에 있던 5명의 선교사인 언드우드, 아펜젤러, 알렌, 스크랜튼, 헤론 등이 한국어 성경 번역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언드우드는 하나님이란 용어대신 참신 여호와를 채택하여 사용하였지만 반응은 미미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신의 명칭을 천주와 하나님을 두고 표결한 결과 4:1로 천주를 사용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절대 다수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에 다른 용어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효과적인 명칭은 바로 한국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표출인 하나님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06년부터 더 이상 천주는 사용되지 않고 하나님으로 모든 신의 명칭을 통일하고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들 선교사들(존 로스, 헐버트, 게일, 기퍼드 등)은 한국에서 하나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복음을 위한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땅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하나님이란 명칭을 사용하면서 급속도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들의 보고서 등에는 하나님이란 용어 때문에 선교가 너무나 쉬워졌다는 것을 감사와 경탄으로 숨김없이 나타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하나님과 그들이 이야기 하는 하나님 야훼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그들은 야훼를 하나님이란 명칭으로 한민족의 하나님으로 둔갑시켜 우리 민족을 속이고 지금껏 온갖 권리와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란 용어가 자기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려 무교인들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거부감마저 느낄 정도가 되어 버렸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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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학파는 1에게 모나드(Mona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1을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수라기보다는 다른 모든 수들의 제 1원인으로 생각하였습니다. 1537년이라는 먼 후대에도, 독일의 수학자 코벨은 "이것으로부터 1은 수가 아니며 다른 모든 수의 시초이자 기초가 되는 모량임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기술하였습니다.



기하학적으로 1은 점을 의미합니다. 점은 자신의 차원은 없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통해 하나의 차원을 정의하게 되는 이상한 존재입니다. 1은 현재와 "지금"을 의미하는데 이런 1의 시간적 의미도 이상하기는 공간에서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새로운 "지금"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존재하게 되자마자 사라지게 됩니다. 차원이 없는 점과 같이, 시간의 1은 자신의 차원이 없으면서 모든 영원함을 정의합니다. 이것은 아주 막연하고 극히 추상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현대 물리학은 이 "지금"의 1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15세기의 마법사이자 신비주의자인 네테스하임의 헨리쿠스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는 1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따라서 1은 최고신을 의미한다. 최고신은 하나이자 무수한 존재이므로, 자신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것들을 창조해 내는 동시에 그것들을 자신 속에 포함한다. 따라서 신은 유일하며, 그 유일신의 세계도 유일하고, 그 유일한 세계의 태양도 유일하다. 또한 세계에 존재하는 불사조는 하나뿐이고, 벌들의 왕도 하나이며(고대와 중세의 작가들은 여왕벌을 수컷이라고 생각했다), 가축 무리의 지도자도 하나뿐이다. 짐승 무리의 지도자 또한 하나뿐이고, 두루미는 한 마리의 우두머리를 따라 비행한다. 다른 많은 동물들도 유일성을 존경하며 따른다.



동양의 창조신화는 분명히 1로부터 시작합니다. 동양은 우주 전체가 하나의 혼돈 상태의 물질 형태로 들어있는 작은 알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습니다. 이것은 빅뱅의 기원에 대한 현대 이론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혼돈 상태의 어두운 물질로부터, 반고(盤古)가 생겨났습니다. 반고가 우주의 알을 깨고 열었을 때, 더 가벼운 부분(남성의 힘)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었고, 더 무거운 부분(여성의 힘)은 가라앉아 땅과 물이 되었습니다. 1은 2가 되었고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비주의 연금술사들에게 1은 비(卑)금속을 금속으로 바꾸는 촉매인 “현자의 돌”을 나타내는 수였으며, 신체에서 1은 심장을 의미합니다.



1은 자주성, 집중력, 창조력, 조사 등과 연관이 있습니다. 1은 또한 양성(兩性)과 관련된 수이며(피타고라스 학파 체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적이자 남성적인 수는 1이었습니다), 자웅동체(hermaphroditism)및 중성과 관련된 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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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二]: 태극(太極), 음양(陰陽), 이중성, 여성성, 재창조의 위대한 여성적인 신비…





2는 아마도 자연계에서 가장 널리 찾아볼 수 있는 수일 것입니다. 두 부분으로 분할(흔히 상반되는 성격의 부분들로)은 너무나 흔해서 별로 진기한 일이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 낮과 밤, 암흑과 빛, 높음과 낮음, 젊음과 늙음, 강함과 약함 등이 이런 것의 예입니다. 많은 동식물들(인간을 포함하여)의 형태는 좌우 대칭입니다.



많은 문화(서양)에서 2는 불화, 부조화 또는 분쟁을 의미합니다. 영어에는 2에 바탕을 둔 경멸적인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two-faced(위선적인), double-dealing(표리부동한), 그리고 duplicitous(이중적인)가 있습니다. 이중성이 경멸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문화도 있는데, 동양의 음양(陰陽)이 그러합니다. 좀 더 인격화되고 이원론적인 우주관으로는 조로아스터교의 우주관이 있습니다. 이 종교는 고대 이란에서 번성했으며, 이 종교에서는 모든 밝고 좋은 것은 “아후라 마즈다”라는 신으로 대표되고, 모든 나쁘고 어두운 것은 “아흐리만”이라는 신으로 대표됩니다.




참고: 제 1탄 - 서유기(西遊記)는 태극(太極)의 완성(完成)을 향한 순례기(巡禮記)였다.



. 태극은 우주의 기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우주에는 수많은 은하들이 있으며, 별들의 회전하는 방향을 살펴보면 시계방향(오른쪽)으로 도는 은하도 있고, 반대방향인 왼쪽으로 도는 은하도 있습니다. 이는 어느 것만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습일 뿐입니다. 이는 창조가 있으면 소멸이 있듯이 이 우주를 유지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오른쪽과 왼쪽이 같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지혜롭던 선조들은 우주의 근본을 밝히고자 우주를 관측하기 시작했고, 하늘의 별자리와 그들의 생성, 소멸, 움직임을 통하여 우주의 모습인 음양의 흐름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태극의 모양을 잘 살펴보면 음과 양의 형상이 혜성의 모양 같기도 하고 마치 아기씨인 정자의 모양과도 같이 머리부분이 있고 끝으로 갈수록 꼬리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은하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별의 집단들이 음양의 흐름에 의해 돌며 모이게 되면 빛이 응집되어 가장 밝게 빛이 나는 영태양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렇게 밝은 빛은 역할을 다하면 또다시 소멸로 향하게 되고 흩어져 새로운 은하들이 생기게 됩니다.
모이면 흩어지고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자연의 이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이것이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모습입니다.


출처: 태극의 문양에 대하여…



일신론적인 종교에서는 2는 유일하고 영원한 “하나”의 반대를 의미합니다. 2는 루시퍼 또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중세의 기독교 해석가들은 2의 여성적인 본질(그리고 베누스에게로의 귀속)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2를 성(性)의 수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또한 창세기에서 “또한 그것이 좋더라”라는 구절이 두 번째 날에 빠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의 이유는 두 번째 날에 창조한 것은 물이었는데 이 창조는 세 번째 날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2는 여성을 의미하고 여성은 불완전을 의미합니다.



아그리파는 2의 성서적인 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관찰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시나이 산에서 받은 석판도 두 개였고, 언약궤 위에서 모세를 바라보고 있던 천사 케루빔도 두 명이었으며, 사가랴에서 기름을 흘리는 올리브 가지도 두 개였으며, 그리스도의 속성도 신성과 인간의 두 가지가 있었다. 따라서 모세는 신의 두 모습, 즉 그의 얼굴과 뒷부분을 보았고, 또한 언약서도 두 개가 있었으며, 사랑에 대한 명령도 두 가지이며, 최초의 사람도 두 명이었고, 두 가지의 영혼, 즉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고, 두 가지의 지적인 창조물, 즉 천사와 영혼이 있으며 태양의 지점도 두 가지, 태양의 분점도 두 가지, 지구의 극지방도 두 개, 그리고 살아있는 영혼을 만들어 내는 원소도 흙과 물의 두 가지이다.



신의 <뒷부분>이라는 이상한 언급은 출애굽기 33장과 11절과 20~23절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아그리파의 목록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2가지적인 영역에서는 천사와 영혼, 천체의 영역에서는 태양과 달 그리고 원소의 세계에서는 흙과 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의 현대 수비학적인 속성은 대부분 이런 전통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며 원형적인 여성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감수성, 재치, 감정적인 성질, 수줍음, 포용력, 협력, 인내, 외교술, 수용성 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무신론적인 사조가 발달하고 특히 현대의 마법 숭배가 신과 여신의 이완성과 평등성을 강조함에 따라, 수비학은 이런 전통적인 속성들 중 많은 것들을 버렸고, 대부분의 현대 수비학자들은 2의 특질과 속성을 더욱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남성 우월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비전적으로는, 2는 영혼이 물질로 하강하는 것을 의미하고, 재창조의 위대한 여성적인 신비를 의미하며, 창공 아래의 물이 창공 위의 물로부터 분리되는 것,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것, 가장 내부적인 것, 잠자는 공주, 백설 공주, 레아와 라헬, 마르다와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모 마리아, 프리메이슨 집회의 두 기둥 그리고 야긴과 보아즈를 의미합니다. 1이 머리와 영광을 의미한다면 2는 심장과 수난을 의미합니다. 2는 포용, 빈틈없음 그리고 침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3[三]: 삼태극(三太極), 신성, 완전, 조화, 영원한 순환, 부활, 삼족오(三足烏), 실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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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음님의 댓글

no_profile 아름다운 마음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110.42,

  수에 대한 이해와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열심히 읽고 공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