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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문맹 예언가 타라빅이 본 21세기 미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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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바바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147.230), 작성일 18-09-13 17:13, 조회 4,29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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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90% 

이상의 적중률을 보인 예언가 미타르 타라빅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예언자 타라빅은 동양의 현자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 예언이 현실화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우리는 과연 현자들을 보는 일반인의

시선은 어떨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어질고 총명하여 성자에 다음가는 사람 현인 (賢人)이라는 뜻

보통 사람은 범자 = 범인(凡人)

군자보다 한단계 높은 의미로 쓰인다.

성인>현자>군자>철인>대인>범인>소인배 정도라 볼 수 있다.

은자라는 유의어가 존재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은자는 속세에서

벗어났다는 인상이 강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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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형식에 얶메이지 않고

표현하는 글입니다. 다소 거친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부처다.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말과 행동이 똑 같지 않으면 사기,거짓이다.

우리의 믿음은 과연 안전한가? 를 기초해 시작합니다.)

 

현자들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권의주의에 반감과 멸시를 갖고 있는 것과

개인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현대의 사회에서

맹목적인 믿음은 더 이상 힘을 잃을 것이다.

현자들의 현재 모습과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이 표면으로 드러난 결과일가?

본인이 일반인들 보다 우수하다는 착각이 지나쳐

자기 관점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어리석은 짓은

장님이 길 안내를 하는 격이다.

 

현자라는 단어에만 속한 애기는 아니다.

성자,성인,군자,대인,대현자 등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꼰대들의 애기다.

 

한 예로 명품은 비싸다. 그래서 평등하지 않고

특별하다는 괴상망측한(자본주의) 논리가 생겨난다.

명품논리로 발생된 파급효과로 인해 인류의식을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결과를 생각해 보면

비싸면 무언가 다르겠지 하는 보상심리처럼

현자라는 단어 하나로 남들과 다를 것 이라는

논리로 파생된 괴상한 의식들이 사회전반에 걸쳐 있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남을 내려다 보는 행위는 잘하는 자가 정말 현자 일가?

 

일반적으로 현자는 현명한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현명한 자 일수록 전체는 하나이고

남과 나가 둘이 아닌 하나로 돌아가는

원리를 본인 스스로 알고 삶 속에 확고히

자리 잡혀 언행일치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기본기 조차 없이 가슴은 콱 막혀

양심을 가리는 비양심에 딱지가

너무 두터워 어둡다 못해

악취를 동반하는 형국이다.

이런 모습을 숨기기 위해 그럴싸한 포장으로

지식 위주의 사고 방식만 주구장창

암기 하고 본인 스스로의 체험은 없고

단계를 논하고 견성이 어쩌고 저쩌고

아라한이 어떻고 하는 남 애기만 하고 있으니

본인도 답답하고 보는 사람도 답답하다.

과거의 수행법을 현재에 적용해서 성공한 사례가

과연 얼마나 있을가? 예전 방식이 맞다면

지금쯤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을 직시 해야만 한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남의 죽음을 통해 종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수 있다. 일반적인 수행자의

삶일 뿐인데 죽은 사람은 말이 없어서 일가?

종교 단체들은 죽은 사람을 내세워 자기 입맛데로

만드는 기획사 같은 느낌을 지울수 없다.

우리의 삶은 생명의 탄생 = 죽음의 순환으로 볼수 있다.

성자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과연 안전한가 살펴보아야 한다.

 

부처님은 자신이 만든 법으로 돌아 가셨다.

신도가 건넨 음식을 거부하지 말라 하셨기에 신도가 건넨

음식이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드시고 죽음을 맞으셨다.

부처님은 거대한 비만인 체구라고 전해진다.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받아 죽을 때의 예수의 죄명은 바로 로마 제국에 반역하는 민족 지도자라는 의미인 '유대인의 왕'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 총독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있었고, 사형을 내릴 수 있는 기관도 총독부여서, 사형 제도가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형에 처해질 만큼의 죄는 무자비한 살인이나, 쿠데타 정도가 되지 않고서는 사형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는 당연히 살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쿠데타를 한 정치범으로 몰아서 처형했으며 그 처참함을 기독교에서는

성물로 취급하고 있다.

 

강증산 또한 죽음 당시에는 순탄치 않았다. 이후 내용 참고

https://namu.mirror.wiki/w/%EA%B0%95%EC%9D%BC%EC%88%9C 발췌

강일순(강증산)은 가뜩이나 건강이 상했으면서도 음력 610(양력 726일 월)부터 밥도 먹지 않고 그저 소주만 마셨다. 이 시절 소주는 증류해 만들어 도수가 30도를 넘는다. 강일순이 소주에 꿀을 타 마시느라 김형렬 집안에서 꿀을 많이 준비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연히 명을 재촉하는 짓이라 당장 몸에 영향이 왔다. 강일순은 어디에 누워도 불편했는지 이곳 저곳 장소를 바꾸어가며 누웠는데, 자기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여 김형렬을 불러 업혀 다녔다고 한다.

 

소주만 마신 지 꼭 2주일째 되는 음력 624(양력 89일 월), 동곡약방 혹은 김형렬의 집에서 사망하였다.[34] 향년 만 37(한국나이 39), 대원사에서 도통했다고 주장한 지 만 611개월, 고부 경무소에서 풀려난 지 만 15개월만이었다.

 

꿀 한 동이를 마시더니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소와 돼지를 잡아 제사를 지내는데 불경한 짓을 하니 신벌을 받아 피를 토하고 죽었다.

어느 이야기를 따르든 고운 죽음은 아니다. 강일순 교단의 문헌에서도 미화하는 구절들을 한꺼풀 벗겨 객관적으로 보면 결코 편하게 죽었다고 볼 수 없다. 죽기 전 강일순은 황달ㆍ내종(內腫)ㆍ호열자(콜레라) 증상을 보였고 죽기 직전에는 위아래로 피를 쏟는 등 온갖 병증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