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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 --프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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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 마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180.136), 작성일 09-01-04 20:38, 조회 4,2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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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이는군요. 이 행성에 살고 있는 인류 의식의 성숙이 그만큼 빨라지고 있다는 증거이군요. 여러분의 사회구조는 매우 계획적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의 정부나 여러분의 사회, 경제 구조 속에는 항상 계급이 있습니다. 이제 그 계급은 여러분의 사회 속에서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교육에도 계급이 있고, 경제에도 계급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 내에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파워 게임을 벌입니다.









사실 그들은 법으로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위 뉴에이지에 속하는 여러분 같은 사람에게도 계급이 있습니다.



 벗이여, 여러분 모두가 마음속에서 자신은 누구만큼 진보되지 못했다고, 혹은 누구만큼 알지 못한다고 상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여러분의 영적 영역에 있어서는 전혀 계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는 모두 영적 존재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몇몇 분은 나 같은 존재를 구루나 예언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간의 모습을 했던, 혹은 이 같이 인간을 소위 전화기로 사용했건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예배의 대상 비슷하게 숭배하려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는 여러분과 똑 같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다 전체성의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계급이나 서열은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나 같은 존재나 여러분의 스승 역할을 하고 있는 다른 어떤 사람들을 높이 받들어야 할 것처럼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죠. 여러분 자신은 나라는 존재에게 있어 위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하고 있는 일은 에너지를 서로 나누는 일입니다. 요즘은 의식의 확장을 도와주기 위해 온 나 같은 존재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은 그저 단순한 의식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위대한 영적 존재로서 이러한 차원의 현실을 경험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통의 공명 상태 속에서, 다시 말해 인류의 집단의식 속에서, 바로 이 순간을 선택한 것이며, 이 행성에서 수많은 경험을 해오는 동안에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어버린 겁니다. 그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육체와 존재는 여러분 자신의 그 위대함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했으면 좋을지, 혹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누누이 말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 자신은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할 일이란, 자기 자신의 힘, 자신의 주인 됨을 깨달아 다시는 자신의 정서적 행복을 위해, 자신 외에 다른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움조차도 누구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각자의 숨결마다에는 우주 전체의 앎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벗이여, 우리 이야기의 귀결점은 언제나 같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잘 알게 되면 될수록, 여러분이 존재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시작할수록, 여러분은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곧 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일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곧 신성을, 전체성을, 위대한 근원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하는 가운데 여러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사랑의 빛을 내뿜게 되고, 그 신성한 빛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며, 우주로 우주로 울려 퍼질 겁니다.









인류의 가슴 밑바닥에는 가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가치 없음의 문제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고 믿음으로써 그것을 생활 속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신의 숨결이 스며 있는데 어떻게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보다 더 고귀한 존재는 없습니다.









우리가 보다 높은 주파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린 그저 기술적인 얘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다 높은 주파수란 보다 높은 단계를 의미 한다기 보다는 보다 폭 넓은 안테나라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전 은하계로부터, 실은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지식과 에너지를 포착하는 안테나 말입니다. 안테나가 포착하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앎도 많아지고, 앎이 많아지게 되면 안테나는 더욱 폭넓어지게 됩니다.



 안테나는 나선형 소용돌이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일종의 에너지인데 그 나선형 안에는 에너지가 모이는 볼텍스가 있습니다. 그 볼텍스는 바로 신성한 근원 자체입니다. 정말 매우 간단합니다.









호주대륙이 특별한 의식이나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고,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론 특별한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집단 공명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린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요약해 드리죠. 모든 원자와 분자는 집단의식이라는,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집단의식은 모든 유사한 원자와 분자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몸 안에서 원자와 분자가 모여 세포를 이루게 되면 그 세포들은 그와 유사한 모든 세포들에 대해 자기들끼리의 울림을 갖게 됩니다. 세포들이 모여서 몸의 기관이 되고, 그 기관은 다른 모든 유사한 기관에 대한 기억과 앎을 갖게 됩니다.



 그 세포와 기억들이 한 인간의 몸을 이루게 되면 그 몸은 다른 모든 인간과 더불어 공통된 울림을 갖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보이지 않는 의식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어느 한 가정에서 태어나게 되면, 그 가정은 공통된 울림, 하나의 집단 공명을 지니게 됩니다. 일종의 주파수지요. 그 가정은 마을이나 도시에서 살아가고, 그 마을이나 도시의 집합체는 그 자체의 공통된 울림을 지닙니다. 일종의 의식을 지니게 되는 겁니다. 특정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공통된 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호주도 그 자체의 공통된 울림을 가지고 있고, 그건 호주에만 있는 독특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구요. 자, 물론 모든 집단 공명은 인류라 불리는 공통된 울림 속에 함께 어우러 듭니다.



여러분의 지구, 여러분의 위대한 여신도 그녀만의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모든 것, 모든 광물질, 모든 바위, 모든 나무와 꽃은 그 여신과 더불어 공생하는 공통된 울림을 갖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정말 위대하고 놀라운 영혼입니다. 고대인들도 물론 그랬고요.









유럽인들이 여기 오기 전에 이 나라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구 여신과 놀라운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별나라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공통된 울림이 아직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 당신들에게는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더 쉽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여기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 그러나 다른 곳에서 태어나 이곳으로 오게 된 사람들은,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가슴속에 이러한 앎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의 보다 위대한 영혼, 보다 위대한 부분, 내면의 그 앎이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왔고, 그래서 당신들이 의도한 것이든 우연이든, 가슴속의 그 열망을 채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나라는 가까운 장래에 지구를 변혁시키는 위대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네 나라의 바로 그 지역(호주 북부의 퀸스랜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매우 현명합니다.



이곳은 진실로 부드럽고 온화한 에너지가 충만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중에는 이곳이 아틀란티스 문명보다 더 장구한 시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과연 그럴 만도 합니다. 이곳은 정말이지 매혹적인 곳입니다. 위대한 치유의 장소입니다.









저는 저 자신의 느낌과 만나는 게 버겁습니다. ‘느낌을 느끼는 것’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사람 전부가 마찬가지 입니다. 인류가 느끼지 못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자, 당신은 그 비법을 알고 싶은 거죠?









네 









당신은 어떻게 느낌을 느낍니까? 음.. 비법의 첫 번째 단계는 애쓰는 걸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귀에 익은 말입니까? 우리는 여러분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걸 상당히 어려워한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면 오히려 그걸 두려워합니다. 그것이 정상이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좋습니다. 당신에게 평온에 이르는 법을 알려드리죠.









당신은 나무 아래 앉아 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겁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그렇게 해보십시오. 매일요. 꼭 나무일 필요는 없습니다. 바다라도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야외에 나가 명상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프타아, 그건 너무 따분해요.” 하고 말하는 분도 있지요. 그렇다면 하지 마십시오. 아무쪼록 당신들의 가슴이 노래 부르는 일을 하십시오. 기쁨 속에서, 웃음 속에서 존재하십시오.









적어도 매일 한 시간씩 해보십시오. 가만히 앉아 생각을 멈추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밖에 나가 나뭇잎이든, 작은 동물이든, 바닷조개든, 거기에 집중해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바라보세요. 거기에서 신을 발견할 때까지 말입니다.



 당신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될 때 그때 무슨 느낌인가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 느낌을 껴안을 수 있게 되고, 좋은 느낌을 껴안을 수 있게 되면, 나쁜 느낌도 껴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느낌은 느낌일 뿐임을 알게 되는 겁니다. 느낌이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좋고 나쁜 것을 지어내는 것은 판단입니다.









의심이란 두려움과 같은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의심이 두려움과 사뭇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바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의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라고자 하는 소망을 감정에 담아 띄워 보내면 그 생각은 이미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심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의심이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힘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매일매일 표출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삶 가운데 조화롭지 못한 상황을 창조하고 있다면,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당신이 무얼 믿고 있는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생각이라도 그것으로 인해 무엇이 야기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은 그런 말을 혼자 중얼거립니다. 그 생각과 더불어 당신은 이미 그런 상황이 실재하는 감정 속에 빠져든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그것을 잊어버리지요. 그런데 맙소사,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말하죠. “얼마 전에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이렇게 실현되다니!”









하지만 그건 행운도 우연도 아닙니다. 바로 당신이 창조한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당신이 이 경이로운 머리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떻게 해서 그런 상황이 일어났는지를 느낌으로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땐 당신 자신의 현실을 뜻대로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심이란 자기에게는 자신의 현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믿는 마음일 뿐입니다. 그러니 의심이 곧 두려움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신체적, 정서적, 심리적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벗이여, 에너지는 당신이 생각하듯 그렇게 공급량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사실, 에너지는 끝없이 공급될 수 있습니다. 그건 마치 사랑과도 흡사합니다. 에너지의 공급량은, 에너지에 대한 당신의 믿음, 풍요로움에 대한 당신의 믿음에 관련됩니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의 목록표를 작성해 보십시오. 한 페이지에 각각 하나씩 적어 넣습니다. 중간에 줄을 그은 다음, 한쪽에는 긍정적인 신념을 적고 다른 쪽에는 부정적인 신념을 적습니다. 당신 자신이 믿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신념들이 뜻밖에도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체계를 돌아보면서 그것들을 무가치하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한 신념체계가 더 이상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지적으로 진리라고 여겼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것을 감정적으로 품게 될 것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들을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우리들의 오라를 보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사랑하는 이여. 오라란 그저 에너지일 뿐입니다. 여러분도 오라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방에 있는 몇몇 분은 실제로 오라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벗이여, 편히 쉬세요. 나는 당신의 물리적 신체를 봅니다. 그것 역시 매우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물리적 신체를 갖고 있음을 아십니까? 여러분 모두, 매우 아름답습니다. 물론 나만큼 아름답진 않지만, 매우 아름답습니다. 농담입니다. 당신들은 진실로 당신들의 빛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발광체입니다. 질문하세요.









오늘 밤은 달이 심상치 않네요. 우리 문화권에서는 대체로 달을 여성적 에너지로 바라보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렇습니다, 벗이여. 어떤 문화권에서는 달이 남성적인 경우도 있음을 아십니까? 하지만 당신네 문화권내에서는 대체로 태양을 남성적인 것으로 보고 있고, 소위 양성적 에너지라고 합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태양은 빛을 내보내어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태양이야말로 당신네 행성에 사는 식물의 발육자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 달은 많은 문화권에서 여성적 에너지, 음성적 에너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양성적, 음성적이라고 말할 때, 그건 좋다거나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서로 반대되는 양극일 뿐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달은 사실상 태양의 부드러운 측면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달은 밀물과 썰물을 창조합니다. 달에 근거하여 식물을 재배하는 문화권이 많습니다. 음력이 바로 그것이죠. 그러므로 달은 당신네 행성의 심장 고동을 관장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직관적이고 수용적인 에너지라는 것은, 그것이 남성 속에 있든 여성 속에 있든, 인류의 심장 고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벗이여, 이러한 창조적이고 직관적인 에너지가 없었더라면, 당신들은 여기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꽃피어 남을 허용하는 건 바로 이러한 측면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네 행성의 낡은 문화, 낡은 문명권에서는 더 이상 달, 즉 여성적 에너지에 경의를 표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 둘 다로서 존재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은빛의 아름다운 달을 바라보고 명상하면서, 그것이 당신 자신의 멋진 반영임을 알도록 하세요. 그리고 여러분들 중 남성의 육체를 지니신 분은 가만히 앉아 달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명상해 보세요. 당신들 내면의 그 고요한 아름다움을 깨달을 때까지.



감사합니다. 당신은 혹시.. 저는 당신이 수많은 세월 동안 예술과 기예의 수호신이라고 들었는데요.









벗이여, 나라는 존재는 사실 많은 이름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걸 아셔야 합니다. 당신이 작은 육체 속에 수많은 인간 경험의 모든 측면들을 담고 있듯이, 이 에너지 역시 당신만큼이나 다차원적인 존재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여러분 각자가 갖고 있는 본질의 서로 다른 측면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며, 언제나 다양하고도 장엄한 신성의 표현입니다. 바로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여러분 자신이기도 합니다.









프타아, 저는 당신이 말씀 하신 고통, 저항 에너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유연성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죠. 당신은 거기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였습니다. 과학은 딱딱한 물질이 딱딱한 상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은 유동적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거기에 비추어 마음가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저항을 덜하게 되면 될수록 우리들의 생각이 진동을 하게 되고, 우리들의 몸도 진동하게 될 것이라고요. 우리는 더 유동적으로 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물질을 통과하는 환상적인 일들이 가능한지요..









벗이여,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십니까?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실제로 존재합니다. 여러분의 우주는 바로 그와 같이 유동적인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당신이 소망을 품거나 상상을 하여 감정으로 감싸 안은 생각을 내면, 당신의 우주는 스스로 재정렬하여 당신에게 그것을 제공합니다. 상당히 유동적으로 들리지 않나요? 실제로 그러합니다



. 여러분은 지구를 딱딱한 물질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앉아 있는 방바닥은 실제로는 딱딱하지 않습니다. 물질이란 생각이나 빛보다 주파수가 낮을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당신들의 세계는 유동적으로 존재합니다. 단 하나의 지구, 단 하나의 현실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당신들의 제한된 이해 상자가 그것을 고정 불변의 딱딱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제한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굳어버린 당신의 이해 상자의 벽이 허물어질 것이고, 그리하여 광대하고 무한한 전망을 펼쳐 보일 것입니다. 당신은 결국 이런 식으로 은하계를 탐험하게 될 것이고요.









프타아, 우리의 제한된 의식이 전환되어 모든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빛을 보기 시작하려면 아직도 오랜 시간이 남아 있나요? 식물을 둘러싸고 있는 빛이나 그 빛 자체를 볼 수 있게 되려면 말에요. 우리는 결국 볼 수 있게 될까요?









물론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렇게 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줄 아십니까? 눈 깜짝할 사이죠. 장담합니다. 시간은 시간이 아닙니다. 초의식이란 당신들에겐 아직까진 가 닿을 수 없는 관념의 세계이지요. 당신을 본래의 자기로부터 분리시켜 놓은 것은, 오직 당신의 신념뿐입니다.



 내가 본래의 나와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 진정한 변혁이 있습니다. 그건 얇은 베일과 같아서 단 한번의 숨결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 몇몇 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슬쩍 훔쳐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세요? 여러분 모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모두가 이미 그곳에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들이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에도 당신들은 이미 그곳에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패러독스이지요. 그토록 간단한 겁니다.









당신 자신을 사랑하세요. 당신이 신임을 진정 알도록 하세요. 그게 전부입니다. 당신들 모두 위대한 영적 존재로서 이 같은 차원의 현실을 스스로 선택한 겁니다. 당신은 신의 생각입니다. 당신은 장미 향내 풍기는 신입니다.





물질적 현실 속에서 수많은 삶을 거듭나는 동안, 사람이라 불리는 이 감각적 경험의 강렬함에 빠져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잊어버린 건 오직 당신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선 자기 자신의 본질을 잊지 않은 수백만 수천만의 존재가 있습니다. 3차원의 인류가 분리가 없는 그 영역으로 들어오기를 진정으로 기다리는 수많은 존재들 말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신성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있고 나면 여전히 물질적 현실 속에서 경험하기는 해도 그것은 예전과는 다른 현실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 현실은 보다 높은 진동주파수로 이루어져 있고, 그곳에선 모든 원자와 분자가 그 자체의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프타아, 제 삶 속에 기회가 다가올 때, 저는 제 안에서 두 가지 면을 봅니다. 하나는 두려움이고, 또 하나는 확장하고 성장하려는 욕구입니다. 양쪽을 다스리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어느 길로 다가가야 할지를 알려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음 저는 그 사실을 믿기가 아주 어려운데요. (웃음) 그러니까 한쪽 손에는 확장에 대한 흥분과 갈망,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있고, 다른 쪽 손에는 그렇게 되도록 놓아두는데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죠? 제대로 설명했나요?









그렇게 되도록 놓아두는데 대한 두려움뿐만이 아닙니다. 그건 마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아요.









그렇습니다. 그건 당신들의 표현에 의하면 ‘궁극적 놓아버림’이죠.









네 













 



음, 궁극적 놓아버림이 진정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 3차원의 세계에선 오직 두 가지만이 존재합니다. 두려움과 사랑이 그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사랑의 표현이 아닌 것은 전부 두려움의 표현입니다.



자, 이제 어떤 식으로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이미 말씀 드렸죠? 잘못된 결정 같은 것은 없노라고. 두려움을 선택한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껴안지 않은 것은 다시 끌어들이게 되어 있으니까요. 다시, 또 다시, 또, 또 다시, 당신이 껴안을 때까지 계속. 그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는 걸 당신이 알아차리면, 이미 반 이상은 나아간 셈입니다. 그 사실이 당신에게 다소 위안이 되나요?









벌써 여러 차례 말씀드리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왜냐하면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지세요. 판단과 하나가 되세요. 머리는 겨드랑이 밑으로 집어 넣어버리고 느낌을 느끼세요. 그것이 바로 변형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두려움에 대하여 엄청난 판단을 내립니다.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이든 말입니다. 무엇이 두려워할 대상인지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인류는 두려움으로부터 몸을 숨기는 데 아주 능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도 얘기했습니다만, 사회가 당신의 두려움을 조장할 때 당신은 두려워하는 걸 괜찮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괜찮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음, 괜찮아 그게 당연한 거야”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유효한 것이고, 당신 자신의 신성의 일부분입니다. 그것을 껴안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유효한 것임을 이해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두려움을 껴안고 당신 자신의 빛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는 항상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바람을 내보내세요. 당신 존재의 신성이 바라는 바라고 말하세요. 당신은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상황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껴안음 속으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벗이여, 껴안음으로써만 변화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두려움을 껴안고 한 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점점 더 의식 확장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제한된 신념 체계로부터 한 걸음 내딛는다는 것이, 굳어버린 이해상자로부터 한 걸음 성큼 내딛어 허공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이, 당신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해합니다. 그것도 소위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그건 당신이 진정으로 안전한 우주에서 살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풍성하고, 자비롭고, 쾌활하고, 창조적인 위대한 완전성 말입니다.









당신 몸속의 모든 세포는 창조적이고 강력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진실로 흠이 없습니다. 우주는 정말이지 안전하다는 걸, 당신이 바라는 것은 조화 속에서 나타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당신 자신에게 상기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항상 안전하답니다. 벗이여, 그 어떤 것도 당신을 해칠 수는 없습니다. 항상, 항상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뢰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안전하다는 믿음입니까?









사랑하는 이여, 진아(眞我)에 대한 믿음은 어떻습니까? 그럴 때가 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때로 저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그리고 믿음이라는 것이 진실로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리죠. 당신은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군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가 무엇입니까? 죽는 것인가요? 전멸되는 것? 죽음은 단지 일시적인 상태라고 지성적으로 생각하기는 쉽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머나먼 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생애에서 생애로 건너뛰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 깊이 박혀 있지요. 하지만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되고, 안전한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 속에 들어서면 설수록, 그러한 신뢰감, 그러한 믿음을 회복하기가 쉬워질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안심이 되지 않나요?









정말 멋지군요.









그렇습니다. 벗이여.









우리가 의식 확장의 과정 속으로 계속 나아가게 되면, 미래 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몸을 갖게 되나요?









벗이여,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군요. 내생의 문제부터 출발해볼까요? 진실을 말하자면, 미래란 없습니다. 오직 지금이 있을 뿐이죠. 당신이 과거, 현재, 미래라고 말하는 이 시공 연속체 밖에서는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당신이 변화되면 모든 것이 변할 겁니다. 지금 이 순간순간마다 두려움을 변형시키는 일이 가능함을 이해하게 되면, 당신은 이미 당신이 전생이라고 부르는 것과 내생이라 부르는 것의 변화를 창조하고 있는 겁니다. 벗이여, 진실로 분리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하여 인류와 동식물과 당신네 행성의 모든 존재가 4차원 밀도에 들어서게 되면, 과거나 미래의 삶이라고 이해했던 모든 것이 당신과 동행하게 됩니다. 정말입니다.







4차원의 밀도가 무얼 뜻하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실, 그건 그저 이름일 뿐입니다. 소위 ‘뉴 에이지’에 속하는 이들은 차원을 가지고 숫자 놀음을 하느라고 매우 바쁘더군요. 당신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차원이 이것뿐이므로 무엇이라고 부르던 상관없습니다. 464차원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4차원 밀도라는 것의 과학적 의미는,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류가 주기적 변화에 들어서고 있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뉴 에이지는 이 모든 변화를 다루려고 합니다. 변화에의 간절한 바람과 추진력, 뜨거운 열정이 뉴 에이지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서클과 같아서 당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뉴 에이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여러분 모두의 본질인 진동주파수가 높은 비율로 진동하게 될 겁니다.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당신네 과학자들은 빛이 가장 높은 밀도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질은 가장 무거운 밀도죠. 바위라든가 당신네 지구는 무거운 밀도로 되어있습니다. 순수의식(당신네 용어로는 가장 높은 주파수)과 가장 낮은 주파수의 차이는 의식입니다. 물질을 창조하는 것도 의식이고, 물질을 변화시키는 것 역시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다가올 이 시대에는 지구가 이동과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 시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인류의 의식은 확장되고 확장되어, 소위 높은 밀도를 지닌 수준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몸이 가벼워지면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빛의 몸이 되는 겁니다. 지구 자체도 빛 속에서 정화될 것인데, 전에 말씀 드렸듯이, 모든 원자와 분자가 그들 존재의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4차원 밀도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 올 그러한 변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프타아,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면, 정말로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겠네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너무 아름다우니까요.









궁극적으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 이순간도 그렇습니다. 미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래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모든 것이 더 좋아지기를 기다려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언제쯤이면 행복해질까 하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미래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지금뿐입니다. 내일이란, 지금이라는 순간순간이 모여서 지어가는 겁니다. 닥쳐올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위에 내일을 쌓아간다면 무엇이 나타날까요? 무엇을 가져올까요?









고통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절묘하게 아름답다는 걸 앎으로서 두려움을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당신의 본래 모습은 절묘하게 아름답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은 신성의 표현입니다. 당신 자신의 모든 면, 모든 생각이 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뿐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거라는 굴레를 현재에 끌어안고, 안전한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가운데 기쁨과 웃음으로 내일을 창조해야 합니다. 어떤 것도, 그 어떤 누구도 당신을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당신은 주권을 가진 존재입니다.









판단을 통해 병을 창조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병을 창조한 판단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알아내고 싶어도 그 판단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어떻게 그 판단을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사실 그 병을 사랑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거기에 대한 지식을 신이 당신에게 쥐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돌에 새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병을 창조하는 데 들어간 모든 감정을 의식적으로 일일이 규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단지 하나의 감정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거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단순화시켜서 고통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고통이란 하나의 상황에서만 창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곧 고통이지만, 고통을 만들어 내는 상황은 아주 많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러 가지 상황이 얽히고 설켜서 인류는 고통의 늪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흔히 그렇게 되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에 당신은 더욱 더 힘을 부여합니다. 매우 교묘한 일이 아닌가요?









엉클어진 실타래의 모든 실마리를 다 물어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육체의 병이란 고통과 번뇌가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질병을 무가치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병은 사실 가치 있는 것이고 그것 또한 신성의 표현입니다. 그 안에 지혜라는 진주가 들어 있음을 앎으로써 껴안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껴안을 때까지는, 결코 연꽃 속의 보석을 찾아 내지 못할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치유의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런저런 조잡스런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들쑤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그렇다고 인정하고, 그것 역시 가치 있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자기 자신과 더불어 기쁨과 평안과 조화 속에 있게 되면 그땐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임이 끝나 헤어질 때면 여러분 모두는 평화도 함께 가져갑니다. 가슴속의 빛도 함께 가져갑니다.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에너지로 발산하세요. 그다지 조화롭지 못한 내면의 공간 속에 들어서게 되면 약간의 시간 여유를 갖도록 하세요. 그래서 당신이 달빛 나무 아래나 나무 아래에 앉았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도록 하세요. 그리하여 이러한 기쁨의 느낌, 평정과 조화의 느낌, 가슴속의 빛에 대한 느낌이 되살아나게 되면 가슴속에 있던 불편함을 껴안을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러면 당신 자신의 빛 속으로 녹아들게 되고 당신은 위대하고 영광스런 존재가 됩니다.









우리들은 늘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세요. 이 모든 건 결코 심각한 게 아니란 걸. 기쁨과 웃음으로 나아가세요. 어린아이처럼 즐기세요. 가슴속에 경쾌함을 지니고,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서, 당신의 아름다운 달과 지구에 감사함을 표하세요. 진실로 그건 당신 자신의 반영임을 알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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