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약 1주일 후 사촌형님이라는 분이 문사장님을 대동하여 사무실로 들어서는 것이 아닙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사촌형 : 원장님 고맙습니다. 큰 도움을 받았으면서 사례도 못하고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직접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저 오늘 퇴원하자마자 바로 온 겁니다. 동생이 다른 날도 있으니 집으로 가자는 것을.. 제가 고집이 좀 있거든요.
병원에서 뵐 때의 마르고 검푸르던 병색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화색까지 도는 밝은 얼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원장 : 이 사람 얼굴 뭐 볼 거 있다고요. 코 큰거 밖에 없는데요, 볼 거 없어요. 무엇보다 기쁜 소식을 먼저 전하겠다고 찾아오시니 제가 더 고맙지요.
사촌형 :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원장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원장님께 기를 받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전부터 기(氣)에 대해서는 동생한테 귀가 따갑게 들은 적은 있지만 먹고 살기 바쁜 사람이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도 없고, 꼭 배부른 사람들 하는 짓거리 같아서요.
그런데 제가 급해지니 별 생각이 다나는 겁니다. 사실 원장님 얘기를 하는데 의심이 갔었습니다. 원장님도 이해하시죠? 아, 의사도 밝히지 못하는 것을 기계장비도 없이 어떻게 병을 알아내요. 하지만 의사도 손을 못대니 겁이 덜컥 나게되고.... 그래서 막무가내로 떼를 썼지요.
막상 기를 받고도 무덤덤하고 멍멍하기만 한 것이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원장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웬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믿음이 갔습니다. 제가 여러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약간은 사람을 볼 줄 압니다. 이젠 확실히 원장님을 믿습니다. 가끔 원장님을 귀찮게 할지도 모릅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분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자신이 살아온 인생 행로에 대하여 무언가 말하고 싶어함이 느껴졌습니다.
사촌형님은 우리나라 대그룹에서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갓 입사한 신참내기였기에 유난히 우여곡절이 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이 하기 나름이 아닌가 하는 소신을 가지고 운명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했고, 회사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지요. 어느새 명예퇴직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회사로부터 그동안의 노고가 인정되어 대리점을 할당받게 되었지요. 하지만 경영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지라 운영의 판단 미숙함으로 고생하기가 여러 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이끌고 가다보니 서서히 고객도 늘게 되어 본 괘도로 올라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손에 잡힐만하니까 몸이 북망산천이더니... 또 다른 시련의 복병이 소리도 없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별다르지 않은 감기증세가 있어 동네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따라 큰 병원에 가서 한번 종합검진을 받아보라는 의사의 말에 괜시리 짜증나고 불안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검사결과는 중증의 위암으로 몇 개월 살기 힘들다는 어이없는 판정이 나왔지요. 그렇게 허망하고 힘이 빠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자꾸 극단적인 생각만 나고 내 삶의 마감을 어떻게 해야되나 하는 한탄만 나왔습니다. 그 순간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단 며칠만이라도 시간이 남아 있다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잘 마무리 짓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겠지요.
그리고 의사에게 물어봤겠지요. 수술을 하여 경과가 좋으면 1년 정도 살수가 있고, 그나마 시기를 놓치면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거예요. 주저없이 수술을 받았지요.
이젠 시한부 인생으로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단지 1년 만이라도 살아있다면 하고 매달리던 마음은 사라지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희망이 생기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