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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지도자의 진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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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크리스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14.1), 작성일 05-01-15 22:19, 조회 4,26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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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지도자의 진실성[펌]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제 딸은 이따금씩 전화를 걸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고민거리를 털어놓곤 합니다. 본래 예민한 몸을 타고났고 또 지난해에는 큰 영적 체험을 한 터인지라 자기 나이 또래보다는 훨씬 성숙한 사고를 하지만, 주위 친구들의 거짓과 가식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지만, 정직하지 못한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크게 나무랐습니다. 그 덕분인지 사춘기를 지나 대학생이 될 무렵부터 제 딸은 놀랄 정도로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변모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진실성이 주위 친구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지기는 커녕 오히려 어리석음 혹은 현명하지 못함으로 인식된다는 사실 때문에 이따금씩 분노하고 가끔은 좌절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진실성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도를 일컫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실성은 언행의 일치는 물론 자신의 속마음이 말과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진실성은 예로부터 많은 성인들과 영적 스승들이 강조해 온 것이고, 또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하나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혀 왔습니다. 하지만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짓과 가식이 때때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게 처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물질 세상만을 인식하고 물질적 성취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신뢰성과 물질적 성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언행의 일치’ 즉 좁은 의미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항상 유념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언행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 혹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 기껏해야 대책 없이 순진한 사람으로 간주되거나, 아니면 교양 없고 성질 나쁜 사람으로 간주되어 자신이 추구하는 물질적 성취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에게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교양과 예절이란, 제가 보는 시각에서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느낌을 감쪽같이 감출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거짓과 가식을 보다 세련되게 포장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교양과 예절이 대중들에게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거짓과 가식에 중독된 채 그것이 습관화, 생활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세련된’ 매너와 교양을 갖춘 사람을 훌륭한 사람, 존경할 사람으로 평가하는 문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쟁이, 가식쟁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관점에서, 진실성은 물질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가장 중요한 배움의 과제입니다. 무한히 펼쳐져 있는 고차원의 우주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 차원에서 존재하고, 그 세상에서는 의사전달이 말과 글을 통하지 않고 마음의 파장을 통해 직접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렇게 텔레파시(telepathy)로 통하는 세상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거나 속이려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거짓이란 물질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따라서 거짓을 극복하고 진실성을 배우는 것은 물질적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든 지구상의 존재들에게 특별히 중요한 과제인 것입니다.


사실 인생에서 겪게되는 체험의 대부분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인간관계로 말미암은 마음의 고통, 슬픔, 분노 등은 자신과 상대방의 진실성 부족에 기인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거짓과 가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갈등하게 만들고 또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며, 때로는 극도의 배신감을 경험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가장 큰 괴로움이 자신과 상대방의 거짓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있지만, 오늘도 습관적 혹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거짓된 행동을 합니다. 거짓을 하나의 필요악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거짓된 말과 행동은 비단 물질 세상만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만연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인식하고 도(道)를 추구하는 수행자들에게도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삶의 가치가 마음을 닦는 것 혹은 의식의 상승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중에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물론 자신에게조차 진실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인생에 대한 가이드로서 활동하고 있는 영성지도자 및 종교지도자들 중에도 진정으로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드문 것으로 느껴집니다.



영성지도자의 진실성은 정치지도자와 같은 현실 지도자의 진실성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행사하는 영적 권위를 이용하여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다수의 영성단체 혹은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아는 것을 과장하거나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혹은 깨닫지 못한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영성지도자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물질적 차원의 거짓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 밝혀지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거짓은 그 특징상 오랫동안 쉽게 드러나지 않은 채 수행자들에게 인생과 우주에 대한 잘못된 틀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진실성의 결핍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감의 결여에서 초래되는 경우가 많으며, 의식이 고양될수록 진실성은 회복됩니다. 거짓된 삶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여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인생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정도로 내면의 힘이 생기지 못한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인생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자각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여 자신을 감추려는 마음은 자연히 없어지고,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게 됩니다.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은 자신도 모르게 진실성을 회복시켜 줍니다.


사람들은 영성지도자가 지닌 영적 능력이 자신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영적 능력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한 성급한 판단입니다. 영적 능력자들에게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특별한 정보들은 그 자신의 마음의 틀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이 어떠한 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정보는 달라집니다. 마음이 닦여져 있지 않은 영능력자가 말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왜곡되고 부정확한 정보일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진실성을 갖춘 영능력자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식이 우주에까지 확장되지 않았다면, 정확한 우주의 정보는 입수될 수 없습니다. 우주를 직관하는 제3의 눈이 완전히 열리기 전에는, 소위 영능력자들이 제공하는 우주의 정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정도의 왜곡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직 제대로 마음이 닦여지지 않은 영성지도자라면, 차라리 영적 능력이 없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영성 지도자의 으뜸가는 자질은 진실성입니다. 다른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지도자는 결코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어 줄 수 없습니다. 진정한 깨달음이 없이도 외부에 널려있는 정보들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종합해서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할 수는 있지만, 깨달음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자신의 마음은 물질에 대한 집착과 분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따라서 마음과 언행이 하나된 진실된 삶을 영위하지 못합니다. 일부 영성지도자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하여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감추는데 한동안 성공할 수는 있지만, 감추어진 진짜 얼굴은 순간 순간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영성지도자의 진실성을 의심하면서 그를 따르거나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실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우주의 진리를 기대할 수 없고, 진실하지 못한 마음에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영성에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특정의 영성지도자가 진정한 각자(覺者)로서 진실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수행자 자신의 선입관 등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한다면, 이 역시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일단 어떤 사람을 의심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가슴에 있는 네 번째 차크라가 닫혀서 더 이상 에너지 교류가 일어나지 못하며, 따라서 그 분이 전달하는 어떤 진리, 어떤 진실에도 감동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도의 세계에서는 영적 스승 혹은 영적 지도자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 중요성을 지닙니다.



반면, 영성지도자에게서 진실성은 느껴지지만, 그의 언행이 자신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는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거부감이 생기는 원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지식, 그리고 습관 등과의 충돌 때문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책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를 펴낸 후 많은 분들을 만나 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강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가진 거짓과 불신입니다. 아무리 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어도 그것을 진실로서 수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심지어는 왜 자신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호의를 베푸느냐고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내온 이메일의 답글을 통해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한 경우도 있었고, 자신의 신분은 물론 이름조차 감추고 보낸 글들도 많이 받아 보았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홈페이지 게시판 중단사태 역시 제게는 큰 체험이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어떤 단체를 비난하거나 비방한 적이 없었고 또 그런 마음조차 없었으며,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단체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는 이야기들이 자신들의 추구하는 바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 홈페이지는 모 단체의 조직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제 마음이 아팠던 것은 홈 페이지에 대한 공격 그 자체가 아니었고, 홈페이지 접속자들 중에는 제가 하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공격이 워낙 교묘해서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제 홈페이지에 접속해 있지 않은 분들의 경우 그들의 조직적 개입을 눈치채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그동안 <명상록>의 글들과 Q&A의 답글 그리고 모임 등을 통해 제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공개해 왔고, 또 누누이 진실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심지어 “도인이 왜 저러냐?” 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는 것조차 그대로 드러내어 왔지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저까지도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성을 추구하는 분들에게 진실성은 으뜸 되는 가치 기준이고, 영성지도자에게 진실성은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성지도자가 진실하지 못하다면 다른 자질들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영성지도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가 진실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거나 거짓된 언행을 한다고 생각되시면, 이 사이트에 접속하여 제 글을 읽는 것을 당장 중단하시는 것이 바람직 할 것입니다. 제가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바를 이야기한다고 느끼신다면, 제 글을 통해 아무런 영적 자극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순전히 정보적 차원에서 제 글들을 읽는 분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의미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깨달음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모든 영적 지식은 그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영적 성장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일부 독자들은 제 자신의 변화가 감지된다고 말씀하시고,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거의 모습이 더 좋았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저는 그동안 일어났던 제 마음의 변화와 그로 인한 제 글의 변화를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의견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지난 6-7년 간에 일어났던 몸과 마음의 변화가 제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최근의 내면적 변화, 즉 수행자적 자세에서 사명자적 자세로의 전환 역시 제 의도와 아무 상관없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실 제게는 수행자적 자세를 유지할 때가 훨씬 더 평안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체험을 하고 있고, 모든 일들은 우주적 조화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은 상태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그냥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평안하고 평화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런 의도나 노력 없이 점차적으로 사명자적 자세로 전환되었고, 모든 것을 “그럴 수 있지!“ 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소승적 혹은 방관자적 자세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저와 인연이 느껴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고 그냥 바라보던 과거의 자세에서 벗어나, 뭔가를 지적해 주기도 하고 또 이따금씩 그들을 죽비로 내려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역할은 제게 익숙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결코 수월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저의 언행을 상대방이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함을 느낄 때, 얼마 전까지 머물던 그 절대적 평안함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제가 자주 언급하는 두 성인들 중 석가모니는 평생을 수행자적 자세를 유지하셨던 분이고, 예수님은 사명자로서의 자세를 보여주셨던 분입니다. 특히, 예수가 성전앞 장사치들을 매몰차게 몰아내는 모습은 사명자의 전형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됩니다. 얼마 전까지 제 언행이 석가모니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의 제 언행은 예수와 그것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제가 수행자적 생활을 했던 것도 제 의도와는 무관한 일이었고, 또 현재 사명자적 자세로 바뀐 것 역시 제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지난 몇 년간 글을 통해 저를 지켜본 수행자들 중에는 저의 변화된 모습에 안타까와 하고 또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인생의 목표를 깨달음 혹은 해탈에 두고 수행자적 자세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실망감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알고 보면 자신의 3차원적 의지와는 관계없이 진행되는 것이고, 따라서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역할을 기꺼이 그리고 감사하며 하느냐 혹은 툴툴대며 마지못해 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인생의 본질과 우주의 원리를 자각한 사람이라면, 3차원의 자아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혹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불치병에 걸려서 혹은 사형 선고 등 특별한 이유로 자신의 죽는 날을 미리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원망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동안 물질적 성취에 바빠 등한히 해 왔던 것들의 가치를 새로이 인식하고,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이기적 언행으로 멀어졌던 사람들과 화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동안 육체적 본능과 욕망과 감정에 짓눌려 잠자고 있던 영성이 비로소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육체적 죽음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옆에서 좋은 친구인양 기다리고 있음을 잊고 있을 뿐입니다. 특히 지금 여기에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는 이번의 삶이 물질 지구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이 될 것이고, 따라서 지금의 한 순간 순간은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대변혁 이후 지구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화할 것이고, 따라서 그 변화 이후 지구에 계속 머무르게 될지 여부와 관계없이, 물질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기간은 불과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물질 지구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극히 고달픈 것이었지만, 그래도 모든 영혼들에게 그 삶들은 너무나 아쉽고 소중한 것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향후에 전개될 엄청난 물질적 변화는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음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줄 것이며, 그러한 자각을 통해 사람들은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물질 너머에 있는 본질적 세상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물질 지구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자각은 많은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2004년 10월 31일


<출처: 장휘용 교수 http://www.fortruth.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