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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선원 대행스님 법문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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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나가는 이 이름으로 검색 (61.♡.5.84), 작성일 02-12-14 17:47, 조회 7,59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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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살아가는 물주머니에 대한 부분이 있더군요.

유사범님의 수련일지와 너무 비슷한 부분이라 생각이 듭니다..

 

--<출처:한마음선원 홈피>-----------------------------------------

회보64번 법문일:1993.01.17 마음은 보이지 않는 용광로 중..

 

(상략)

 

남한테 이익을 주려면 지혜로워야 되겠죠.

남에게 어떤 말을 전하려고 할 때는 이 말을 전해서 좋을까, 나쁠까를 잘 생각해서 말을 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남한테 이익 되게 하는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에요. 망할 놈이라고 욕을 했어도 칭찬을 하더라고 얘기를 하게 되면 욕한 사람도 자기는 욕을 했는데 거기서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참회를 하면서 자비로운 마음이 돼버린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다스리는 것도 천차만별이죠. 거짓말도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진짜 거짓말이 있는 것입니다. 하여튼 착은 두고 살지 맙시다. 착을 두면 오히려 거리가 생기고 참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착을 두지 않아야 조건 없는 사랑으로 믿고 맡기죠.

 

사람이 오래 살고 늙었다고 해서 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판단에 의하고 기준에 의해서 애들을 나무라는 일은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사랑도 무엇인지 알고 정말 뜨거운 사랑을 자식들도 알 수 있고 부모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진짜 사랑을 하거든 놔줘라. 부부지간에도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진짜 사랑한다면 놔줘라. 붙들고 있는 게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죠.

 

여러분들도 진실로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아, 모자라는 것도 봐야 내가 모자라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니까 그것도 내 스승이다'하신다면 하다못해 풀 한 포기를 보고도 스승이라고 믿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아만과 아상이 많아서 내가 나라는 거를 놓지 못하고 있으면서 비구니가 알면 얼마나 더 잘 아느냐고 합니다. 그러니 이 비구니, 비구는 모습입니다. 화가가 그림을 어떻게 그려놨느냐에 따라서 모습이 주어지고 그 그림에 의해서 모습이 다를 뿐 마음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불생·불멸하며 근본 그 자체는 우주의 근본과 더불어 같이 돌아가니까 이 모습 저 모습 나눌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물에서 와서 물줄기 가는 대로 돌아갑니다. 지구도 물주머니 속에서 살고 있지요. 우리도 역시 물주머니에서 나와서 물주머니에서 살고 있고, 공기주머니도 역시 물주머니나 한가지입니다.

 

이런데도 영원한 길을 알지 못하고 가신 데서야, 옷을 벗는 데서야 어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말도 안됩니다. 그래도 인간까지 진화를 시켜서 이날까지 끌고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죠. 여자 남자를 비유해서 따지지 마십시오. 근본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다못해 풀 한 포기, 지렁이 한 마리도 스승 아닌 게 없는 걸로 알아야 할 진데 비구 따지고 비구니 따지고 속인 따지고 이런다면 어찌 하나도 버릴 게 없이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이만하고 질문하실 분들 있으면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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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보94번 법문일:1995.09.17 모두가 으뜸인 도리

 

(상략)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미생물에서부터 수 없는 생명들이 짝을 짓죠. 인간까지 말입니다. 부모가 됐다가 자식이 됐다가 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수억 겁 광년을 거쳐서 이렇게 인간 세계까지 돌아가고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없이 말입니다.

 

지금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런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를 하며, 밖에서 찰나찰나 닥쳐오는 문제들, 마음 속에서 찰나찰나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하며, 수 없는 겁을 지나오면서 누적된 문제들, 즉 부모가 되었다 자식이 되었다 하면서 착을 버리지 못한 채 관습에 의해서 끄달리는 습이 그대로 남아 누적되어 돌아가는 이 모두를 어떻게 해야만 녹일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부처님 마음과 더불어 아시고 계신다면 아마 이와 같이 생각하실 겁니다. 어떻게 보면 광대하고, 어떻게 보면 도깨비 장난 같고, 어떻게 보면 아수라장 같고, 어떻게 보면 아주 묘한 이치에 도달해서 신비하게 느껴지는 문제들을 어떻게 합류화 시켜서 우리가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한번 쳐다보고 웃고, 한번 내려다보고 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 공부를 안 한다면 세세생생에 끝간 데 없이 그렇게 굴러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은 물주머니에서 사는 삶과 같습니다. 지금 바닷속에서 광대하게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과 같이, 생명들이 물 속에서만 살 수 있고 물 속을 벗어나면 곧 죽듯이,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물주머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겁니다. 벗어나야 어떻게 해보죠.

 

그런데 말입니다.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면서 수없이 찰나찰나 돌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육신을 낳아준 이 생의 부모만이 부모인 것이 아닙니다. 수억겁을 돌아 걸어오면서 자식이 됐었고 부모가 됐었는데 어떻게 이 생에 육신을 낳아준 부모만이 내 부모라고 하겠습니까?

 

둘이 아니라는 도리가 그래서 나온 겁니다. 부모도 둘이 아니요, 자식도 둘이 아니요, 나 자체도 둘이 아니요, 일체가 다 고정됨이 없기 때문에 공했다고 하고 그대로 여여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대로 여여한 줄을 안다면 이렇게 고생도 안 해요. 고생이라고 할 건 없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