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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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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옮긴이 이름으로 검색 (211.♡.200.136), 작성일 03-02-06 13:36, 조회 7,4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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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傳 서유기④

손오공 미후왕에 등극하다




이규행 언론인·玄妙學會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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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맛을 한 번 보게 되면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된다. 손오공은 먹을 거리를 찾아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는 원숭이 신세가 되었다. 화과산 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원숭이 무리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들처럼 주민등록증이나 출생지를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어느날 원숭이 무리들과 폭포 근처에서 놀다가 한 마리의 원숭이가 폭포를 쳐다보고 내려다보면서 “누구든 이 폭포속에 무엇이 있는지 가보고 올 친구는 없나. 그럴 수 있는 자를 우리들의 왕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모두가 “그거 대찬성이오”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럼 내가 가보고 올까.” 그때까지 구석에 있던 돌원숭이가 나서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손오공은 두 주먹을 쥐고 한동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 순간은 단숨에 왕이 될 수 있는 갈림길이기도 했다. 물론 그런 도전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도외시하고 결단을 내려 행동해야만 성공의 길이 열리고 왕좌(王座)가 보장되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닌가.


손오공은 조용히 감았던 눈을 뜨고 폭포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폭포속에 들어가서 본즉 의외로 거기에는 물이 없어서 그들 살림집으로 이상적인 훌륭한 동굴(洞窟)이 보였다. 그리고 동굴로 가는 다리 옆에는 화과산복지(華果山福地) 수렴동동천(水簾洞洞天)이라고 새긴 표석이 서 있었다. 복지라는 말은 길지(吉地) 또는 명당(名堂)이란 뜻이다. 화과산에서 제일가는 명당이 바로 이곳이라는 뜻이다. 수렴동이란 폭포의 떨어지는 물로 발을 친듯한 좋은 장소라는 뜻이다. 특히 동천이란 신선이 노니는 곳 또는 선인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곳임을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대궐 같은 장소를 발견하였구나. 옳지 이 동굴로 살림을 옮기자.” 돌아가서 일동을 데리고 와서 보이니까 여간 좋은 곳이 아니라고 모두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약속대로 돌원숭이인 손오공은 왕의 자리에 올라 명실공히 원숭이 세계의 임금이 되었다. 미후왕이라는 호화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후라는 한자는 원숭이를 뜻하는 글자다. 흔히 원숭이라면 원(猿)이라는 글자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숭이를 나타내는 글자로는 오히려 ‘후’자가 더 자주 쓰인다.


이것은 옛 문헌에도 그렇지만 현대 중국어에서도 그렇다.

동물 명칭에 대한 이런 구별은 개를 나타내는 구(狗)자와 견(犬)자에서도 알 수 있다. 문헌에선 대개 ‘구’자를 쓰고 있다. 한데 개를 나타내는 글자에 ‘크다’는 뜻의 대(大)자가 원용되고 있다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대’라는 글자는 큰 사람의 모양을 상징하는데 ‘대’자 위에 점이 붙으면 개를 뜻하는 글자가 되고,‘대’자 밑에 점이 붙으면 큼을 나타내는 태(太)자가 된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가운데 큰 사람, 즉 높은 사람 가운데 개 같은 사람이 많아서 ‘대’자 위에 점을 붙여 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거니와 ‘태’자는 큰 사람의 양물(陽物), 즉 성기의 큼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이설(異說)풀이도 있다.


아무튼 왕좌에 오른 미후왕은 기고만장했다. 무리들위에 군림하면서 낮에는 화과산 근처에 나가 놀고 밤이면 수렴동에서 단꿈을 꾸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3백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하는 일도 별로 없이 날만 보내던 미후왕도 차차 철이 나고 세상의 물정을 알게 되자 인간 같으면 ‘인생문제’와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어느날 심각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나는 지금 아무 것도 무서운 것이 없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느 때 한 번은 염라대왕한테 호출을 당해 죽지 않을 수 없다. 아, 그것을 생각하면 세상이 허무하고 산다는 것이 슬프구나.”


그러자 신하 원숭이 가운데 하나가 “이 세상에 염라대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세 부류가 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염라대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네, 그렇습니다. 부처와 선인(仙人)과 신(神)은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만물윤회(萬物輪廻)의 틀을 벗어나 있고, 생사흥망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영원히 장수하고 향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 세상 속의 선산(仙山)이나 고동(古洞)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다. 선인을 찾아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비술(秘術)을 배워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