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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제니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11.♡.245.30), 작성일 03-02-06 23:01, 조회 8,55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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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찬은 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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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정말 있는가?

신의 실체는 정말 보이고 들리는가?

신이 보내는 음성 신호는 정말 신계에서 들려오는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것 은 아닌가?

신에게서 음성이 들려올 때 가까이서 들려 오는가?

멀리서 들려 오는가? 그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가?

우리는 신의 실체를 면밀히 검토하고 정밀하게 조사해가며 파고 든 적이 있었는가?



남녘 아래지방에서 행해지는 신의 이야기, 굿판에 대해 들리는 이야기는 참으로 끔직스런 일들이다.

어떤 이는 신을 희롱하고 신을 능멸하며

어떤 이는 신을 받고자 있는 금전 없는 금전 끌어다가 다 날리고도 신을 찾기위해 동주서주하는 가운데 눈보라 비바람 맞아가며 산천으로 계속 찾으려 다니고

어떤 이는 자신의 나이도 잊은 체 신은 마냥 찾아오는 줄 알고서 신을 맞아들이기위해 노력을 하고



무엇이 이토록 이들을 끈질기게 잡고 있는건가?

신의 길을 가야하는 절대의 사람이 있는가하면 안가도 무방한 상대의 사람이 있고 아예 그 길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신의 길을 가야하는 절대자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무당은 인간으로서 신이 배려한 최고의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 인간계의 업과 윤회의 삶의 질곡에서 해탈하는 길을 깨닫게 하여 신의 오묘한 섭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라고 내리는 신의 엄중한 계율을 받는 사람으로 아무에게나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



이 길은 앞서가야하는 깨달음의 길이라서 환경의 지배와 인간의 존엄성 온갖 장애물과 고난을 이겨내는 훈련을 하는 까닭에 무당의 길은 불운을 타고난 사람처럼 고달프고 고통스런 인생 여정이 된다. 하지만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의 편견과 몰이해 냉대와 차별등을 받아야 하는 무당은 어느 순간까지는 너무도 힘든 과정이며 그 한계를 뛰어넘을 때 비로소 자신의 빛을 발할수 있어 뭇 사람의 존경으로 인정을 받는다.



상대적인 무당은 자신이 그길을 선택하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다. 노력의 의해 찾아오는 신령들은 영매나 빙의처럼 무당의 근원이나 원리를 모르는 체 그 기이한 능력을 돈벌이에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며 신의 엄중한 계율이나 그 뒤에 오는 신의 벌이 얼마나 무서운 줄을 모르고서 우선 달콤한 재물의 유혹에 빠져 희희낙낙거린다.



무당은 신이 내리는 내림굿을 한 그 날로 다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날이 바로 아가로 태어난다. 그리하여 나날이 배우고 익혀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무당으로서 완벽한 기능과 임무를 수행할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림굿을 하면 완벽하게 태어난 무당인 줄로 알로서 그에게 완벽한 걸 요구를 한다. 우리가 흔히 무속인이라 칭하는 그 언어는 무당을 비하시키는 일본인의 계락으로 따라간 무지의 부산물일 뿐이다.



신의 언저리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먼가 베일에 쌓여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 존재가 자기를 주시하며 있는 것을 알고서 그 실체를 찾으려 하나 쉽게 찾을 수 없고 그 알쏭달쏭한 존재의 실체를 한번이라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버릴 수도 멀리 할 수도 없이 마음의 끈끈한 끈에 묶어 잡아 당기니 참으로 난감한 사태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제나 저제나 하며 보내버리는 허송세월의 시간은 기다려주지를 않고 마냥 흘러가며



한편으론 그 존재만나려고 찾아나선 산천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꿈속같이 달콤하고 그런 꿈같은 일 자신도 해보고 싶으니 그들이 말한 꿈같은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기이한 영능력으로 쉽게 돈을 벌면서 살아가는 것만 들리고 보이니 그 속에 맴돌며 헤어나지를 못한다.



무당의 길은 앞서가며 겪어가는 고통과 고난의 윈인이 되는 인과 연을 짓지말고 그 인연의 결과로 따라오는 업과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을 일러주고 가르치는 길이며 보이지 않는 존재가 보일듯 말듯, 알듯말듯, 비밀스레 자신의 주변 언저리를 맴도는 이유를 가르치며



기이한 능력으로 사는 무당의 일이 하는 일이 그게 전부가 아니라 실제는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겪는 업과 윤회의 틀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삶의 질곡을 벗어나 영혼의 자유로움을 찾는 해탈의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죽어서 영원히 자유로운 것을 찾는게 아니고

살아있는 지금이 자유롭게 고통없는 편안함을 가르치는게 무당이 해야하는 신이 내린 임무요 임무를 완성해야하는 임무수행 능력을 준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죽어서 극락가고 천당가며 하느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낙원을 누리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지상에서도 낙원을 누릴수 있음을 가르치는 게 무당이다.



이런 무당이 얼마나 있을꼬



초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