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기
묻고 답하기

태극 太極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삼룡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0.♡.173.93), 작성일 04-04-03 14:00, 조회 3,789, 댓글 0

본문




taekeukgi.gif

<태극 太極>


혼동. 근원. 하늘. 우주. 공존. 부귀. 명당





163s.jpg 152s.jpg


(음양의 기본원리를 반영한 태극의 기본형태) 십이장무늬(조선시대)







아이들의 가위바위보 놀이와 같이, 서로를 쫓으며 끊임없이 도는 태극 도형은 우주가 음양의 대극 원리로 갈리며 만물을 생성해 나가는 원초적인 상태를 표상한다.

이는 모든 창조신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천지가 개벽하여 혼돈과 무정형의 상태가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지는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주란(宇宙卵)이라는 신화적 상황으로 표현되는 것이 이것이다.


이러한 신화적 사고가 도가의 철학적 관념으로 발전하여, 태극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 실재로서 음양의 대립과 순환을 통해 만물의 생성을 지속해가는 하나의 원리가 되었다.



마치 하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칠 때 강마다 둥근 달이 존재하는 것처럼, 만물이 하나의


태극에서 나왔고 동시에 만물 하나하나 속에 태극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 성리학의 우주론을 표상하고 있고, 지금은 국기를 통해 한민족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굳어졌지만, 사실상 태극 형태는 어느 특정 민족이나 종교에 국한되지 않은 매우 보편적인 상징체계이다.




161s.jpg 154s.jpg 159s.jpg




나전 이층농 장석. 반닫이 투각태함문 둥근 광두 팔괘문경.

고려시대.

19세기초, 20세기초.

이화여대 박물관 소장




아른하임(Arnheim, R.)은 심지어 태극이 기독교나 맑스의 변증법을 표상하는 마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일단 발화를 시작한 태극은 사상(四象), 즉 노양(老陽), 노음(老陰), 소양(小陽), 소음(小陰)으로 나누어지며, 다시 사상은 팔괘(八卦)로, 팔괘는 육십사괘(六十四掛)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며 만물을 관장하는 기운을 이룬다.



또한 무극이 태극(無極以太極)이므로, 모든 원은 곧 태극이 된다. 청동기시대의 거울이나, 고인돌, 암각화에 새겨진 원은 그 자체가 태양이고 하늘이고 우주이며, 태극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형태를 띤 태극 문양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신라 감은사지 장대석에 새겨진 3태극''미추왕릉에서 나온 신라 보검의 칼자루 장식에서 발견되는 3태극'인데, 이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태극 문양이 형상화된 송나라 때의 「태극도설(太極圖說)」보다도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연대이다.


3태극은 하늘, 땅, 사람의 삼재(三材)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이 단군 이래의 삼신사상(三神思想)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하며, 또 혹자는 중앙아시아의 고분에서 발견된 문양과 거의 같다고 하여 한반도와 서역의 태극사상이 연관성을 갖는다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특히 전자의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로 그 기원을 단군세기에서 찾고 있다.



“기해원년 즉 B.C. 2182년에 우리 단군 임금께서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을 불러 신왕(神王)의 치화와 교화의 도(곧 신시(神市)의 치도)를 물으시니, 보륵은 엄지 손가락을 교환하여 오른손에 보태어 삼육대례(三六大禮)를 행하고 왕의 덕(德)과 이(理)로써 세상을 다스리기를 진언하였다.”


- 행촌선생 이암 문정공, 「단군세기」 중에서




양손의 엄지 손가락을 겹치면 태극의 분할선이 눈 앞에 드러난다.

위의 글에서 을보륵이 말하는 삼육대례란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를 지낼 때 초배에는 세 번, 재배에는 여섯 번, 삼배에는 아홉 번 북을 두드리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삼육대례의 표식이 바로 태극 문양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또한 이로부터 제례 의식이나 성전(聖殿), 사묘(祠墓) 등의 건축물과 문비(門扉)에 태극이 새겨지거나 그러한 의례에 쓰이는 악기, 특히 북의 양쪽 면에 태극을 그려넣는 풍속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까지 나타나는 태극은 주로 3태극, 혹은 4태극이다.>



4태극은 주로 고구려와 백제의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완전한 태극 형태라기보다는 파상문, 혹은 선형문에 가까운 모양이지만 부여와 공주의 산성, 또 익산 미륵사지 등에서 발견되는 파상무늬 기와 와당 내부에 나타난 문양은 거의 완전한 4태극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이후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까지는 '3태극보다 2태극이 많이 나타나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다시 3태극이 많이 쓰였다.' 특히 조선시대 충절과 효행, 또는 높은 공을 세운 공신의 무덤이나 집 앞에 세웠던 홍살문에 태극문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태극문에 유교적 관념이 짙게 배어 있음을 알려준다.



예로부터 태극문은 건축물, 민화는 물론 무속, 가구, 장신구 등에 광범위하게 쓰여왔다.

유교가 아무리 태극에 심오한 우주의 이치와 성리학의 세례를 부여했다고 하나 그 이전에 태극은 하나의 길상문이었던 것이다.



역리에 밝지않고 괘(卦)를 읽지 못해도 사람들은 그저 세상사가 음양의 이치에 합당하면 모든 것이 조화롭고 이를 통해 행복과 장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태극의 순환과정]


167s.jpg





148s.jpg 157s.jpg 156s.jpg


엄지 손가락이 계력도(季曆圖), 목인(안사순경전보).

겹쳐져 나타난 태극의 20세기 초 조선시대

분할선






156s.jpg 158s.jpg 153s.jpg


지장첩화(紙粧貼花) 석적(북의 일종), 청화백자점성문면취병

반짇고리.19세기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