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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스승과 함께 "신시개천시대"의 역사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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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민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61.♡.137.42), 작성일 03-02-10 13:23, 조회 5,6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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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림출판사에서 출판된 "여인왕국(무린바타)"이란 책에서

일부 발췌해온 글 입니다.)





그들 한인들이 신시개천시대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그 배경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한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밝히기를 원치 않고 있다. 그것은 역사라기보다 역사 시작 이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기간이었다. 인간이 필요로하는 모든 지식....천문,지리,의술,문자,그 밖에 관한 수많은 이론들, 쇠를 다루는 연금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던 때였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도 시작되던 시대였다.



모든 이론이 신시개천에 이미 정립되어졌다. 이같은 방대한 이론과 실체는 모두가 한인들의 마음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한인들은 이와같은 것이 필요없었지만 그래도 만들수 밖에 없었다.

지식의 이론은 다의발 한웅 이전에 완성이 되었다. 그 후 한인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인들은 대륙을 횡단하고 바다를 건너서 인간이 살아가는 곳은 어디에든 찾아가 그들의 머리를 일깨웠다.



신시시대의 한인들은 모두가 신통력의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 신으로 추앙받기도 하며 남겨지기도 했다.



이것이 신시개천시대의 한인들의 발자취이다.

신시시대의 모든 일들, 이것은 하나의 역사적 열쇠라고 이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한인들은 밝히기를 거부했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흐른뒤

에 그들 스스로가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많은 세대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한인들의 마음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신시시대의 한인사회에서 마지막 한웅이자 영혼의 스승이신

"단웅시대"에 이르자 한인은 더이상 한인이 아니었다.

고요한 한의 의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이들은 이제 명상

그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이 흐를수록 고요했던 마음은 파도가 밀려오듯

번뇌와 방황의 감정이 한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신시시대가 끝나는 바로 그 시대에 크나큰 신통력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들이 믿었던 단웅에 의해 제3의 눈과 능력에 일순간 흑막이 쳐진 사태는 한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들은 이제 더이상 스승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저마다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세우고 있었다.

고요하였던, 그리고 위엄스러웠던 한인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이를 좋아라한 민족이 있었으니, 그것은 중원의 민족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드넓은 강역과 기름진 옥토는 모두 한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인들에게 새로운 또 하나의 위대한 스승이 이 땅에 태어나셨으니, 그가 곧 왕검이다.





*BC 2513년(왕검 개국60여 년전).....

그로부터 300여년후 모든 나라에 스승의 집도 아래 "제3의 눈"이라는

"송과체"를 막아 버렸다.

그것은 한인들과 이민족과의 의식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