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기
묻고 답하기

[re] 북두칠성에 관하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조문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6.99), 작성일 03-02-18 20:30, 조회 9,230, 댓글 0

본문


언제나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세요.



이 종철님은 북두칠성과 인연이 많군요. 지구에 오기 전 살던 별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달리 북두칠성에 친근감이 가며, 현재의 사고방식이나 성격, 추구하고자 하는 성향속에 북두칠성에서 행했던 습관들이 상당부분남아 작용을 합니다.



북두칠성은 7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 3개의 별이 다른 별들과 다르게 신선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꿈꾸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향기로운 음식과 풍악이 흐르고, 수염이 하얀 노인이 젊은 동자와 여인들에게 시중을 받으며 인생을 즐기는 곳이지요.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얻어지는 그런 세상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신선들이었습니다.

한번쯤 절에 가보신 분이라면 절 위에 있는 삼신각을 보셨을 겁니다. 사당 안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면 신선들이 풍류를 즐기고, 호랑이 등에 올라타 권위를 보여주는 형상들이 있습니다. 무릉도원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불교의 색깔과 전혀 다른 이런 전각이 절 속에 자리한 원인은 한인들에게 있었습니다.

불교가 처음 들어와 포교를 하자니 우리민족에게는 이미 서낭당이나 칠성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지요. 이를 배격하고는 불교를 퍼트릴 수가 없었으므로 토속신앙을 존중해 주는 의미에서 삼신각을 모시게 된 겁니다. 부처님의 형상을 모신 곳을 불전이 아닌 '대웅전'이라 합니다. '웅'자는 '곰'을 뜻하는 것으로 단국신화에 나오는 단군의 어머니이지요. 이 모두 북두칠성에서 온 한인들의 흔적이 그대로 불교 속에 스며들게 된 겁니다.

북쪽 하늘을 보고 소원을 비는 관습이나 삼신할머니가 자손을 점지해준다는 신앙의 뿌리를 보게 되면 북두칠성에서 온 한인들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 삼성의 대표의식들이 모여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정은 깨달음의 길을 잘못 이해하고 신선의 세계에 머물고 있던 북두칠성인들을 수행성이었던 지구로 보내게 됩니다. 그들이 이른바 삼신할머니라고 잘못 알려져 있던 삼성의 대표의식이었습니다.

진정한 깨우침이란 한가지만 추구하여 고정됨이나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전능한 신적인 의식으로 각성되는 것이었으므로 신의 의식이 이들을 보기에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빠져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삼성의 의식은 이들에게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즐거움이 다하면 고통이 오게 된다는 것을 경고한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놀라고 말았습니다. 곧 자신들에게 닥칠 운명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신의 의식에 따르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고, 여러 수행성중 지구를 선택하여 입식을 하게 된 겁니다.

지구에서는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갔고, 그 만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빠른 공부를 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쪽에만 빠져있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우주의식으로 성숙시키기 위하여 일부로 고난과 고통을 주었고, 선과 악의 마음을 극대화 시켜 고통과 즐거움을 맛보게 하였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며 하나의 통로로 열려 자신을 바로 알았을 때 끄달림 없이 근원 의식으로 깨어남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데로 깨달음을 이루어 고향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지구에 깨우치지 못한 불쌍한 인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버려 두고 떠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번엔 스승의 입장으로서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자신들의 신적인 의식(제3의 눈)을 닫아 버리고 맙니다. (모가에테 의식) 다시 한번 힘겨운 윤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신의 의식으로 각성되어 있을 때는 한 생각만 하면 모든 것이 통하여 알게 되고, 가게 되는 신의 능력이 있었지만. 의식이 닫히고 나니 모든 것이 깜깜해지고 막히고 말은 겁니다.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북두칠성에 있었을 때 했던 것처럼 단(丹)을 만들고 기를 모으기 시작한 겁니다. 이로서 서로 처절하게 죽이고 죽으며, 배신하고 괴로워하며 윤회의 고리 속에서 해메이게 되었으며 그 습성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현재 기를 모으는 수련법이 아직도 성행을 하고있습니다. 이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계속 윤회를 하겠다는 의미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이젠 한인들이 다시금 신의 의식으로 깨어날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 우리 내면의 근원의식과 하나로 일치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껏 자신이라고 믿고 애지중지하던 거짓된 모습, 허상을 버리고 참나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는 겁니다.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즐거운 일이며 나의 영혼을 평화롭게 만드는 일입니다. 내 안에 지정한 신적인 사랑과 기쁨이 넘쳐야 나보다 못한 고통받는 사람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것이며 도와 줄 수 있는 겁니다.



이 종철님의 몸상태를 보면 머리가 묵직하고 오른쪽 가슴에 따가운 기운이 있군요.

가슴이 막혀 답답하고 전체적인 기의 흐름이 흘려버리지를 못하고 정체되어 있습니다.

기가 뭉쳐있게 되면 몸도 고달프지만 생각이 막혀 여간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모으지 마시고 버리는 공부를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