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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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의 카르마 소멸의 키워드는 '용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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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광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205.6), 작성일 22-10-07 16:55, 조회 1,8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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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글의 주제가 카르마 소멸인 만큼,

고등학교 때부터 몇 년 동안의 입시 논술로 인해 강박으로 남아있는 '가독성'이라는 글의 형식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제가 담고 싶은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최대한 담아보려 하였습니다.


머카바 불과 연구회 물은 6월 말부터 계속해서 접하고 있고

제 최고의, 최적의 수련장인 마트에서 근무하며 느낀 점들을 곁들어 적어보겠습니다.



1.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내면의 진아'를 마주하다


9월 어느 날, 계산대로 끊임없이 다가오는 손님들을 보며 공황 증상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빨리 마트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과 남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통받으며, 

결국 1시간 동안 꼼짝없이 손님들의 계산을 도와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손님들이 조금이라도 계산대에서 지체를 하게 되더라도 

그 때의 감정이 올라오면서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말 이틀 연속 연장근무를 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제 불찰로 인해 금전적인 손실을 겪게 되자,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정신줄이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내가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 이틀동안 28시간을 근무해봤자 제 실수를 만회할 수가 없더군요.

제가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했을 뿐인데 

마트에서 고생했던 시간들이 공중분해되는 경험을 하고나니 

돈이란게 참으로 무겁고 무섭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허망하더군요.



'왜 내가 이런 경험을 수 없이 해야하고, 왜 내가 계속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지?'라는 질문을 수차례 던지니

'현재가 돈과 물질이 중요한 자본주의 세상, 곧 말세니까'라는 대답이 나오더군요.


그리고나니 자연스럽게 이 질문을 던지게 되더군요.

'그렇다면 내가 왜 태어난거지?'

4년 전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던 당시에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대답할 수 있겠더군요.

'미뤄왔던 숙제를 끝내야되니까'



그동안 저는 좋든 싫든 물질을 쫓도록 강요받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왜 삶이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듣지도 못한 채 20대 초반까지는 어찌어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20대 중반,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지만

제 마음 속에 숨어있던 '원인도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이 갑작스럽게 작동하면서

감히 취직을 도전할 생각도 못한 채, 결국 4년 간 회계사 고시생으로써 제 스스로를 사회에서 격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공부에 전념하다가 중요한 한 과목에서 계속해서 좌절을 겪게되자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셨던 돈과 함께 잃어버린 세월을 한방에 메꾸고 인생역전을 해야겠다는 헛된 욕심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코인 투자로 시작해서 코인사기를 당하고, 심지어 2018 월드컵 때는 스포츠 도박까지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모았던 돈의 대부분을 순식간에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자,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 속의 공허함'이 크게 번지면서  

삶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태어난 이유는 먹고 자고 싸고 박고 애 키우고 늙어 뒤지기 위함인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전혀 기대감이 들지 않는데, 왜 굳이 고통받으면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정신과에 가면 깊은 우울증이 해결될 줄 알았지만

약을 주는 것을 제외하면 결국 제 스스로 생각을 바꾸고 극복을 해야하더군요

그나마 없는 돈도 날리면서 받았던 상담들은 '공허함의 원인이 우울증이다'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우울증의 원인은 공허함이다'가 맞았지만요


아무튼 철저히 혼자서 고민을 한 결과 끝에, 제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은 딱 하나 남더군요

'남들과 행복하게 지내면서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이렇게 장황하게 과거에 대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한번쯤은 제 과거에 대해 밝히고 싶었기도 하지만,

과거의 실패와 최근의 손실에서 느꼈던 공통점을 말하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결국 현재 사회에서의 삶은 '외줄타기'와 같이 느껴지더군요.

완벽하게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기술과 운이 필요한 반면에

실수 한 번이면 떨어지기 쉽상이고 그것은 삶에 있어서 굉장히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시험, 면접, 투자 등 현재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은 

죄다 실수 1번에 최소 1년이라는 시간적인 대가, 혹은 몇 개월 노동의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하곤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태어난 이유를 연구회를 접했기 때문에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신의 의식을 가졌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내면 의식에 잠들어 있는 카르마를 소멸하기 위해서'

혹은 '여러 전생을 거쳐서 지금까지 얽혀있던 인연들의 여러 빚들을 청산하기 위해서'

또 다른 표현으로는 '수 많은 생을 거쳐오면서 번번히 실패해왔던 본래의 빛을 되찾고 태초로 돌아가기 위해서'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 한 켠에서는 분노, 답답함, 두려움, 버거움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꿈틀거리더군요.

'아니 왜? 내가 뭘?'

'기억도 안 나는데 뭘 빚졌다는거야?'

'그럴거면 내가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여라도 주던가' 

'내 전생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내가 뭘 잘못해왔다는거야?'

'왜 하필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게 한거지?'

'그래 나만 잘 먹고 잘 사는게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도 베풀테니 돈이라도 좀 주던가'

'머릿속이 복잡한 에고 덩어리 겁쟁이 성격으로 뭘 할 수 있겠어?'

'이번 생이 마지막이라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잔뜩 들다가 마지막에는,

'나란 미친 놈이 도대체 왜 이런 카르마를 쌓아 온거야? 지금처럼 하나도 감당 못하고 하나도 기억 못할거면서....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었던 내가 너무 싫다'

이렇게 제 자신이 너무 밉고 제 자신을 부정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생각을 전환해보니 제가 드디어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끝판왕을 마주한 것이 었습니다.

바로 '내면의 진아'입니다.

업장, 카르마, 빚과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로 포장되었던 '그것'은

사실은 모든 감각기관이 차단된 채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하는, 정말 연약한 아기같은 '내면의 진아'가 그동안 어쩔 수 없이 벌여놨던 사고들이었습니다.

이 사고들은 그 동안 아무도 이 아기를 돌봐주지 않고 바로 잡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졌던 일들입니다.

근데 이 아기를 누가 돌볼 수 있을까요? 현재의 저 말고는 없습니다. 

각자의 '내면의 진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각자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진아'를 바라보게 되니

이번 생에서 수 없이 자책해온 저를 용서하게 되고, 

전생에서 수 없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고를 쳐왔던 과거의 제 모습들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군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과거로 흘러가고 있고,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제 자신'만 생각한다면 과거를 후회하고 원망하거나 마냥 꼴리는 대로 살아도 상관없겠지만, 

아기와 같은 모습의 '내면의 진아'를 돌봐주려면 매 순간 현재의 저를 바로잡아야하고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는 너무나도 오래 방치되었던 이 불쌍하고 여린 존재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갑자기 누군가를 책임지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된다는 생각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긴 합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속으로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내면의 진아' 또한 똑같이 외로웠을거고 이제서야 안도하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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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처음 본 순간, '태초'라는 단어가 떠올랐었습니다.



2.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다


마트에 8월 초에 들어온 신입 직원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2개월 동안 일했던 경험이 있고, 기존에 일하던 여사님이 데려온 사람이기 때문에 

저희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 사람을 믿고 방치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그 누구보다도 정말 최악이더군요.

업무 센스도 없고, 업무 속도도 느리고, 진열도 대충하고, 계산대에서 손님들한테 성질내기 일쑤이고, 눈치없이 말만 많고, 행동도 느리고, 몸에서 영가냄새도 나고, 툭하면 한숨이나 쉬고...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언을 해주던 직원들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질 않자 하나둘씩 포기하고

결국 저와 다른 직원, 이렇게 둘 만이 막내에 대해서 끝없이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남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자

인내심을 잃은 저는 다른 직원들에게 막내 뒷담을 까기 시작했습니다.

그 정도와 빈도는 9월이 되면서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앞서 제 개인적인 불찰로 금전적인 손실을 보게 되었던 시기에 제 분노가 터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막내, 몸이 아픈 직원, 저 이렇게 셋이서 마트에 들어온 물건들을 진열하고 창고를 정리하는데,

각자 셋이 맡은 칸 진열이 끝나고 몸이 아픈 직원이 냉장창고, 제가 냉동창고를 정리하고 있을 동안

막내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생각도 안한 채 여유롭게 천천히 상자나 까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하필이면 주말 이틀 연속 14시간 연장근무의 두번째 날이었기 때문에 제 몸으로 느껴지던 피로도나 스트레스는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냉동창고에 들어갈 물류가 평소의 1.5배였지만 그 친구는 너무나도 꾸준하게 상자만 까고 앉았고,

저는 입에서 욕을 뱉어가면서 냉동창고 정리가 끝난 뒤에 몸이 아픈 직원의 냉장창고 정리를 도왔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열이 받았던 저는 

뒷담만 까는 것도 너무 머저리 같이 느껴지기도 하여

결국에는 그 친구를 불러서 30분간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화를 꾹꾹 누르며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은채 지적을 쏟아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얘기가 다 끝나가기 시작하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직원들이, 적어도 내가 이 친구에게 최선을 다한게 맞는가?'


사실 아직까지도 마트 근무에 적합하지 않은 성격을 가진 이 친구가 왜 여기 들어올 선택을 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얘가 이렇게 일할 바에는 나가는게 낫다, 얘는 진짜 답이 없다'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가득했지요.

하지만, '어쨌든 인연이 되어서 여기에 들어온 것인데, 최소한 나라도 이 친구가 여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나서 불평을 하는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그 친구한테 너무나도 미안한 감정이 올라오더군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얘기를 마무리 지었던 것 같습니다.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한 저희도 잘못이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던 방법대로 업무에 임하신다면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업무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제가 용서를 구하고 나니, 그 친구도 감명을 받았는지 태도가 많이 바뀐 것 같더군요.


현재 시점에서 아직도 업무 센스와 속도는 저희 기대에 한참 못 미치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래도 언젠가는 개선될 수 있다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