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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의 과학자 테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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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고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9.♡.229.247), 작성일 09-07-27 21:18, 조회 4,78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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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유고슬라비아 태생인 테슬라는 28세 때인 1884년 미국으로 이주해 수많은 중요한 발명과 선구적 업적을 이뤄냈다. 교류전압 송신, 다상 교류 시스템, 무선통신, 고압전원을 만드는 테슬라 코일, 형광등, 라디오 등의 발명자로 그는 기록되고 있다.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자기력선속밀도(磁氣力線束密度)의 기본 단위 T는 그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것이다. 그는 에디슨에 필적할 혁혁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생전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테슬라 초전도 자석형 자성측정시스템





1. 모델명: MPMS-7(Quantum Design, U.S.A)





2. 원리 : 초전도 양자간섭 측정소자(SQUID)를 이용하여 최고 7테슬 라의 고자기장과 가변온도조절기를 사용하여 400K에서 1.8K까지의 저온 그리고 오븐을 사용하여 상온에서 최고 800 K의 고온 환경하에서 자화율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



 



 











테슬라가 만든 2상 교류방식 발전기는 웨스팅하우스사(社)에 의하여 1895년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력 발전에 최초로 이용되었다. 교류가 직류보다 열 손실이 적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테슬라의 2상 교류방식 발전기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수력발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에디슨의 전기회사는 직류를 사용했는데 에디슨 자신도 교류가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신이 갖고있던 직류의 시장 점유율을 포기할 수 없어서 자신의 사회적 권위를 이용해서 교류를 대중에게 부정적으로 인식시키기로 마음을 먹고는 사형에 교류전기를 이용하기로 한다. 전기의자 역시 에디슨의 발명품으로 대중들에게 교류가 위험하단 이미지를 주기 위한 일종의 흑색선전용 발명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디슨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교류의 우수성이 널리 입증되었다.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 발명 업적은 에디슨의 사회적 명망에 묻혀버린 셈이다.



 



 





니콜라 테슬라는 1857년 7월, 구 유고슬라비아의 세르비아에서 태어났다. 테슬라의 아버지는 집안의 오랜 전통대로 그리스정교 성직자가 되어 마을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서 지역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한편 테슬라의 어머니는 발명가로서의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집안의 가구 등을 비롯한 여러 발명품을 고안하였다. 또한 기억력도 월등하게 뛰어나서 상당히 긴 책의 내용을 암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12살 때 불의의 사고로 죽은 테슬라의 형도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천재였다.



 



 





이처럼 집안의 천재성을 물려받은 테슬라는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수(水)차를 발명하였고, 친척들에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에너지를 얻는 계획을 설명했다고 한다. 결국 테슬라의 이 계획은, 1895년에 테슬라의 특허를 이용하여 웨스팅하우스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교류 발전소를 만듦으로써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그 후 전기 공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헝가리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교류 모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발하였으며 친척의 소개로 파리에 있는 에디슨의 유럽 지사에서 전기 기술자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교류 모터에 대한 생각을 계속 발전시키던 중,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교류 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1884년 6월 미국으로 이주하여 에디슨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테슬라와 에디슨은 여러모로 다른 형태의 인물이었으며 그 다름은 서로에게 불화를 갖고 오기에 충분했다.



 



 





그럼 이제 테슬라와 에디슨이 벌였던 이른바 "전류전쟁"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추악한 사업가로서의 에디슨의 모습과 거기에 맞섰던 테슬라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실 에디슨이 일방적으로 테슬라의 교류를 공격했던 것이지,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맞섰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갔을 뿐이었다. 밑에 푸른 색으로 처리 된 "인용 글"들은 마가렛 체니가 쓴 테슬라의 전기傳記 "니콜라 테슬라" (이경복 옮김/도서출판 양문, 1999)에서 발췌한 것이다.



 



 





-테슬라 머리속에서 시각화하면서 연구하는 방법이 정신적인 면에서 테슬라에게 희열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잠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발명품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무리 단계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런데 테슬라는 이 과정을 절약하고 발명품들을 한쪽으로 치워놓은 경우가 많았다. 에디슨은 결코 이런 일에서 실수하지 않았고 발명품을 상업화하기 위해 많은 직원을 거느렸다. 사실 에디슨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갖고 특허청으로 달려가는 데에도 특별한 솜씨를 발휘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훔치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 말은 에디슨의 격언이 되었다. 50p





-"나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훔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훔쳤는지를 모른다."





여기서 그들이란 웨스턴 유니온사 사람들을 말한다. 75p



 



 





실제로 에디슨의 많은 발명 중에서 순수하게 에디슨이 스스로 해낸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자신의 발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발명을 재빨리 특허신고를 내는 장기를 갖고 있었다. 물론 먼저 특허 신고를 한 사람에게 특허권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고 누가 먼저 발명을 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에디슨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따라 발명을 하는 사람이었다.



 



 





-에디슨은 벌어들이는 달러의 액수로 자신의 발명품을 평가하길 좋아했고 그 외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줄리앙 호손은 "만약 에디슨이 발명을 그만두고 소설에 뛰어들었더라면 위대한 소설가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75p



 



 





테슬라와 에디슨의 차이를 그의 전기 "니콜라 테슬라"에서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에디슨과 테슬라 두 사람의 개성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좋지 않은 운명을 내포하고있었다. 에디슨은 테슬라의 지적이고, 이론적이며 세련된 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멘로 공원의 마술사라는 호칭을 얻었던 에디슨은 99%의 노력을 하는 천재는 실수를 통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했다. 나중에 테슬라는 이런 그물식 실험 방법을 전해듣고 재미있어하면서 말했다.





"만약 에디슨이 건초더미 속에서 바늘 하나를 찾아야 한다면 아마도 꿀벌들처럼, 부지런하게 한 번에 하나씩 지푸라기를 들어내면서 바늘을 찾을 때 까지 조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이론과 계산으로 99%의 노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 광경을 안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81p



 





-얼마 되지 않아 테슬라는 직류시스템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에디슨이 만든 원시적인 발전기를 좀더 효율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발전기들을 다시 만들 것을 제안했고 새 발전기가 서비스 개선에도 좋음은 물론이고 많은 비용을 절약하게 해줄 거라고 말했다. 철저한 사업가였던 에디슨은 돈을 절약할 수 잇다는 말을 듣고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테슬라가 제안한 프로젝트는 규모가 크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에디슨은 말했다.





"만약, 자네가 이 일을 해낸다면 5만 달러를 보너스로 약속하지." 80p





-테슬라는 발전기를 다시 설계하면서 그 해의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있었다. 마침내 테슬라는 작업을 끝내고 나서 에디슨에게 성공적으로 일을 마쳤다는 것을 보고했고 언제쯤 5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에디슨은 책상 위에서 굽이 놓은 검정색 신발을 내리면서 입을 약간 벌린채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테슬라!"





에디슨이 소리쳤다.





"자네는 우리 미국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테슬라는 에디슨 회사에게 다시 한번 속고 말았다. 화가 난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에디슨은 주당 18달러 하던 테슬라의 급료를 10달러 더 올려주겠다는타협안을 제시했지만 테슬라는 모자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 일에 대해서 에디슨측에서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테슬라가 자신의 교류 특허를 5만 달러에 사줄 것을 에디슨에게 제의했고, 에디슨이 그 제의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83p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에디슨은 노동자인 테슬라를 비열한 거짓말로 착취한 것이다. 물론 내가 인용한 이 책은 테슬라의 전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밑에 등장하게 될 에디슨의 행동들을 볼 때 개인적으로는 에디슨이 충분히 이러고도 남았으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에디슨 측에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으며 저자는 에디슨 측의 이야기도 싣고 있다. 누구의 말이 사실이냐를 떠나서 테슬라는 결국 에디슨에게 환멸을 느끼고 에디슨을 떠난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산업계에서 비주류였던 교류에 대한 자신의 기술을 팔 곳을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웨스팅하우스사와 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에디슨은 교류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한다.



 



 





-에디슨은 테슬라가 웨스팅하우스와 교류와 관련된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마침내 전선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곧 멘로 공원에 있던 에디슨의 선전 기계들이 교류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담은 자료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교류 때문에 발생한 사고를 찾아낼 수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에게 그 위험을 경고해야만 했다. 이 전쟁에는 돈뿐만이 아니라 한 천재의 개인적인 자존심까지도 걸려 있었다. 94p



 



 





에디슨은 자신이 이미 거대한 규모의 돈을 투자한 직류의 시장점유율을 고수하기 위해서 테슬라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주로 자신의 유명세와 뇌물을 동원한 로비였다. 그러한 사업가들의 비효율적인 고집을 당시의 과학자인 푸핀은 이렇게 비판했다.



 



 





-푸핀도 테슬라처럼 뛰어난 과학자였다. 그러나 푸핀은 산업계의 거물들이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에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불만이었다. 사업가들은 자신들의 직류 시스템이 교류 시스템에 의해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걱정만 하고 있었다. 푸핀은 비난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비미국적인 태도다. 최적의 방식으로 두 시스템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편협되지 않은 전문가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95p



 



 





그리고 에디슨의 테슬라의 교류에 대한 비열한 음해공작은 점점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있었다. 물론 자유로운 경쟁을 허용하는 자본의 논리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어디 있겠는가? 에디슨은 자신의 행동을 비열한 음해공작이라고 비난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시장경쟁은 이기려고 하는거야. 자선사업이 아니라구. 정당한 패배보다는 어찌됐던 이기고 나서 욕 먹는게 훨씬 낫지." 할 말 없음이다. 계속해서 에디슨이 벌이는 방해공작에도 역시 할 말 없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