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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란 무엇인가? (2)-천도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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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 마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224.85), 작성일 08-03-07 16:32, 조회 5,66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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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엉치에서 허리 사이가 너무 무겁다고 하셨는데, 원장님께서는 어머님이 아버지를 그 부분에 업고 다니는 형국이라 하셨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천도재는 무덤이 있는 경우는 무덤용 히란야를 무덤 주위에 묻고 나야 천도재를 지낸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조상님 무덤들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파묘를 하여 모두 한군데에 납골로 만들어 모셨고, 다른 후손들 가묘까지 함께 되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납골을 만듦으로써 합장에 가묘까지 써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원장님께서 가장 걱정하시는 무덤 형태가 되어있었습니다.


납골에 모셔진 모든 영가님들을 위해 무덤용 히란야를 샀지만, 7월 한여름 더위에 장마까지 있어서 묻으러 가기 까지 며칠 더 시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히란야를 사다 놓고 제 명치 부위가 너무 답답하고 기운이 막혀있어, 평상시 소화기능이 약했던 저는 또 소화불량인가 하여 혼자 침도 놓고, 사혈도 해봤지만 답답한 것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어요. 원장님께서는 영가님들의 기운때문이라고 하시면서 무덤에 묻고 나면 괜찮아질거라고 하셨습니다.


제 직업은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는 과외선생님입니다. 토요일 아침에 보충수업을 하러 두아이가 왔는데. 무음 시디와 방석코팅 히란야에서 좋은 기운이 나온다고 하기에 무음 시디도 틀어놓고, 방석 히란야는 칠판에 붙여 놓고 수업을 하려고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A라는 아이가 갑자기 배가 아프고 토할 것 같다고 하더니 왼쪽 얼굴이 마비가 오는 것 같다고 하며 칠판을 바라보고 , 히란야방석을 치우라고 하고, 등뒤로 무언가 타고 올라가 어깨에서 자기를 누르고 있다고하며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하고 왔습니다.

B라는 아이는 한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더니 그 다음엔 다른 쪽 눈에서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너무 희한한 일이라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을 보니까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고 대답을 했어요.


두 아이 모두가 힘이 빠져 있고 수업을 할 수 가 없었습니다. 오후에 유사범님과 통화해보니, 에너지 장이 달라서 아이들 속에 있는 존재가 불편해 하면서 드러나는 기운작용이라고 했습니다. 원장님 기운은 맑고 차원이 높아서 아이들 속에 있는 존재 기운이 파장이 다르니까 불편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라구요.

이런 것이 에너지 작용이란 것이구나! -코팅 히란야 방석을 보고 어떻게 얼굴에 마비가 오는 것 같은 현상이 드러나나?


그렇다면 무덤에 이런 동히란야를 묻으면 좋은 에너지 때문에 파장이 안맞아 무덤에 다른 귀신이 들어오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보충을 온 아이들은 무속인집 남매였는데, 두아이도 무척 힘들어하고, 졸려하며 뭔가 전과 다르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 A라는 여학생은 평상시 정말 저를 많이 힘들게 했는데, 공부하러 골목에 들어서기만 하면 기운이 쪽 빠진다고 하면서 수업시간에 정말 조용하고 기운없어했습니다. 갑자기 변한 아이 모습에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B라는 아이는 울고 간 다음날 집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코피를 흘렸고, 배가 답답하고 아파서 밥을 못먹고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연구회에 들렸습니다. 원장님께서는 A는 전생이 양귀비였고,B는 퀴리부인이라고 하셨습니다. A는 연구회에 가서도 파장이 안맞아 너무 힘들어했고, 원장님이 기를 넣어주시고 나서 10분 정도 지나면서 좋아졌습니다.나중에는 피라밋 속에도 함께 들어가 있었고, 본래의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빙의 된 조상기운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생이 양귀비여서 그런지 같은 여자인 제가 봐도 예쁘고, 6학년때부터 가르쳤는데, 처음 왔을때 대학생이라고 해도 될만큼 치장하는 거며, 악세사리를 좋아했습니다.

그래도 정이 많고, 애교도 많고,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학생입니다.


장마가 잠시 멈추자 그야말로 한여름 땡볕에 작은오빠 부부와 함께 히란야를 납골주위에 묻으러 공주로 갔고, 다 묻고 나니 정말 가슴 답답한 부분이 풀렸습니다.

며칠후 , 어머니와 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근원인 빛으로 가시라고

천도재를 지내주시는 원장님, 유사범님과 함께 마음을 냈습니다.


다음날 , 평상시 맥섬석으로 날마다 찜질을 하러 가시면서 돌아오시는 어머니께서 오늘은 내가 집으로 오는 길에 다리가 안아프더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원장님께 들리니, 원장님께서는 천도재를 하고 바로 괜찮아지시는 분이 있고, 좀 시간이 걸리는 분이 있다며, 아버지 돌아가시고 혹시 어머니가 어떤 마음을 내시며 사셨냐고 물으셨습니다.


돌아가시고, 자식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못하셨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 아프시며 돌아가셔서 안스러운 마음으로 눈물짓고 하셨다고--물을 쏟아 부어도 물이 담겨 있었던 흔적이 있듯이 아직 그런 흔적이 에너지 장에 남아있다고 100일 천도를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천도재만 지내면 다 나아지는 것으로 알았던 저는 100일 동안 또 고생을 하셔야 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답답했습니다.

100일 천도는 또한 전생과 현생에 인연들과의 업장도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는 말씀에 저도 함께 어머니와 100일 천도를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100일 천도 지내는 방법을 설명해주시는데, 너무나 놀랐습니다.


나와 인연 지어진 일체 모든 조상님 영가들. 조상과 인연 지어진 일체 모든 영가들, 전생에 악업을 지어진 일체 모든 영가들, 나와 인연 지어진 일체 모든 외계인 영들- 절에서 천도재를 지낸다 할땐 시댁과 친정의 아버지쪽 조상님들만 모시니까 - 이렇게 친정과 시댁쪽 모두 그것도 부계 만이 아니라 모계까지, 정말 엄청난 영가들을 모시는 것이구나!!!


이렇게 하면 업장 정리는 훨씬 많이 되겠다고 생각하며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저는 100일 천도에 관해 연구회 사이트에 있는 글이며, 또 게시판에 올려진 회원님들의 글을 통해 어떻게 마음내며 천도에 임해야 하는가 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올케 언니가 제가 연구회에 인연 맺기 전에 아버지께서 꿈에 어머니 집에 오셔서 집수리를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시간이 얼마 없다고 서둘러 하자고 하는 꿈을 꾸었다고 하더니 , 아마도 천도 되어 가실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그리고 천도재가 끝나고 이틀후 언니 꿈에 많은 조상님들이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신다고 한차 가득 타셨는데, 가장 최근에 돌아가신 3째 아버님 모습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이렇게조상님들을 천도재를 지내드려 왔던 별로 보내드렸으니,더 이상 제사를 모시지 말자고 제가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우리가 이렇게 몸 받아 나온것이 한철 여행나와 공부하는 것이라는 대행스님 말씀도 해드리면서, 못다 해결한 업을 정리하기 위해 가족으로 , 부부로 인연 맺은 것인데, 저도 아버지께서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은혜야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어머니도 이젠 더 이상 가신 분 붙들지 말자고, 남은 사람들끼리 열심히 마음공부 하자고 설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원장님께서 이젠 더이상 제사를 드려도 조상님들은 오시지 않고 떠도는 다른 영가들이 들어와 음식을 먹고 조상인 척 하려 한다는 말씀에 어머니도 그러쟈고 하셨습니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이젠 어쩔 수 없이 이런 의사를 말해야 했고, 물론 이해못하는 큰오빠 내외나 막내 동생이 어떻게 아버지 제사까지 모시지 않느냐고 반발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것에 관심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라 하루 아침에 관습을 끊기가 쉬운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저는 다른 사찰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집에서 제사를 모실때에도 이 젯상에 어떤 조상님들도 안오셨기를 바라며 제사를 지냈다고..말을 하며 설득하였습니다.

어쨌든 이젠 어머니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엄마집에서는 더이상 제사를 모시지 않으니 모시고 싶으면 큰오빠나 막내가 모셔가라고 했습니다. 둘째 오빠는 이민을 갈 예정이었구요.. 그런데 어느 올케도 그러겠다고 나서질 않아서 이제 저희는 더이상 제사를 모시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정말 조상님 제사나 차례는 극진히 정성된 마음으로 모셨습니다. 한번도 막내인 내가 이렇게 제사를 모셔야 하느냐고 투정도 없으셨고, 몸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며칠씩 여기 저기 시장 쫓아다니며 준비하셨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야 마트에 가서 한꺼번에 차로 장을 보고 끝낼 것을 , 일주일은준비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아래층에 이사오고 지켜 본 어머니 모습입니다. 또한 저도 불교에 인연 맺고는, 살아있는 우리야 괴롭고 힘들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애쓰며 살겠지만, 영가들은 자손의 도움 없이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는 스님들 말씀에 경제적인 여유가 가장 없는 제가 혼자 마음내서 천도재를 지내드리고 극락왕생하시길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제사를 모시지 말자고 하니, 어이 없는 소리로 들리고, 원장님이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동생은 어머니 병이 낫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분노를 터트리기도 했죠.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7-17 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