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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무엇입니까? - 바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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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바바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46.176), 작성일 12-09-22 00:43, 조회 4,824, 댓글 0

본문


진리는 무엇입니까!"

 

"네 아트마(영혼, 자아 혹은 의식)가 내는 소리다."



창조계에는 방대하고 많은 교리가 존재하지만 진리, 단순, 사랑이라는 하나의 원칙에 충실하라.



 

 

진리와 단순과 사랑 속에서 살면서 카르마 요가를 실천하라.



우주의 기본법칙은 운동과 활동, 변화인데도



우리는 자신이 집착하는 상황과 사람과 사물을



언제까지나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사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슬픔, 분노, 증오는 인간의 이런 헛된 집착에서 생긴다.



 

 

모든 것이 늘 변화 하는 무상한 우주에서 자연법칙에 따라 흘러가는 것을

 

붙잡아 두려고 애쓰는 인간은

 

항상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처럼 힘겨울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바지는 '육신은 사라지고 말지만 말씀은 영원하다'.고 한다.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부실 없다.

 

여기에는 실체가 없다.



 

 

진정한 실체는 '진리의 길'을 따르는 것,



거룩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 하지만 '사라질 운명' 이라고 해서 육신을 업수이 여겨서는 안된다.



바바지는 영혼이 인간의 육신을 얻기는 어려운 일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영적 성장을 이룰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따라서 육신을 깨끗하게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나타나 다르마(영원한 법)의 기본 원리는 개별 영혼이 창조 우주에 발현된 '최고영혼(형상없는 신)'의 일부라는 것이다.

 

 

 

여러 생애를 거치며 물질 형상으로 구현되는 개별영혼은 물질 형상을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면서 '최고영혼'과 하나라는 참된 정체성과 실재성을 잊고 만다.

 

하지만 인간 육신에 내재하는 진정한 힘인 영혼을



형상없는 영혼'이 온갖 방식으로 자신을 체험하기 위해 내 보내는 '신성'의 불꽃이자 체험자이다.

 

 

 

이에 비하면 인간의 육신은 영혼을 감싸고 있다가 '죽음'의 순간에 벗어 던지는 옷과 같다.

 

이처럼 영혼은 무한하고 육신은 유한하다.

 

 

 

개별영혼은 생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보편 지식을 얻는다.



전생의 육신들을 통해서 쌓인 체험은 현생에서 겪는 다양한 체험에 그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규정한다.

 

 인간은 생의 여러 체험을 통해 더 높은 인간성으로 갈 기회를 갖기도 하고 더 낮은 인간성으로 갈 기회를 갖기도 한다.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영혼은 누적된 체험과 지혜가 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다고 미리 결정 지어지지는 않는다.



 

 

영원에 대한 환상과 물질 우주의 '현실성'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물질 대상과 욕망, 감각의 희비에 '집착'하는 삶으로 인해 탄생과 죽음의 끝없는 순환을 불러온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 영혼을 물질 삶과 그 '고난의 학교'로 다시 끌어오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육신의 욕망에서 벗어나 물질 대상들에 초연해질 때



그때서야 비로소 신성을 항상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음과 오감을 통제할 수 있을 때라야만,



개별 영혼과 신성의 참된 합일을 불러오는 신성 체험으로의 문을 열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합일이 마침내 삶의 바탕을 이루는 진리가 될 때까지



많은 생애에 걸쳐 그것을 되풀이하여 경험하고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강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즉 신과 '다시 하나가 되어' 탄생과 죽음이 반복되는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바지는 진정한 안정 또는 안전은 인간의 내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임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 같다.

 

외부의 물질적인 것들은 변화하고 소멸하기 마련이다.



안정에 대한 그의 이런 생각은 신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욕망에 사로잡히거나 끌려 다니지 말고



즐거움이나 고통에 흔들리지 않으며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것들을 초연한 관찰자의 위치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균형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균형이 있는 곳이라야 진리가 자유로이 작동할 수 있다.



즉 마음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된다.

 

반면에 분노와 미움, 탐욕, 욕정. 혼란 또는 공포가

 

균형을 무너뜨리는 곳에서는



진리가 떠나고



내면의 조화(안정)가 이루어지지 않아



명확하고 강력하며 의미있는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없다.



 

 

카르마 요가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면 이러한 안정성이 개발되고 강화된다.



그리하여 이것을 획득한 이는 주위의 어떤 소용돌이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안정과 안전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모든 부와 제곡은 건물, 만물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모든 창조물은 무상하다.



너희는 오직 해탈하는 것이 목적. 내 두뇌에서 업이 멈추는 날,



바로 그날이 지구 소멸의 날이 될 것이다.

 

신의 이름을 암송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너희 마음과 정신은 정화될 것이고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너희는 자신에게서 신을 찾게 될 것이다.



너희 마음을 씻어줄 물은 신의 이름이다.



그러니 모든 이에게 어디에서든 신의 이름을 암송하고 가르쳐라



신의 이름을 암송하는 것은 마음속의 모든 불필요한 생각들을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정화 과정이다.

 

명상이란 결국 일종의 정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신을 경배하고 매순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신의 이름에는 무한한 힘이 있다.



신의 길을 가는 순례자는 그것을 항상 마음에 담아두는 것으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



 

 

신의 이름이 최상의 권능으로 마음속에 있을 때 행복이 가득 차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을 기억함으로써 신이 마음속에 머무르게 되니



추종자는 모든 노력의 결실을 즉석에서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소아가 신성한 자아에 녹아들기 시작한다



신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자는 개아에서 초자아로 변형된다.

 

끊임없이 신을 기억하는 것으로 그분과 같아지는 것이다.

 

 

 

가장 좋은건 일하고 선한 생각을 하며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것 자기 인생을 헌신하는것



마음속에서 움직임이 시작될때 카르마로 시작된다.

 

카르마를 멈추기 위해서는 마음을 침묵과 공의 상태로 가져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숨쉬고 있는 한 카르마를 만들게 된다.

 

신성에 대한 강력한 집중과 지속적인 실천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완전히 길들였을때



마침내 영적성장의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

 

욕망에 사로잡히거나 끌려 다니지 말고



즐거움이나 고통에 흔들리지 않으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것들을 초연한



관찰자의 위치에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