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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깨달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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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예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6.♡.33.41), 작성일 08-10-20 15:22, 조회 4,252, 댓글 0

본문


7장. 깨달음의 길



지금부터 이 지구의 30년은 너희들 영혼이 나에게 돌아올 준비가 되어있는지 시험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그 때문에 너희에게 많은 시험이 따르게 될 것이다. 너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험할 것이고, 그 속에서 크고 작은 깨달음을 통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너희에게 닥친 현실은 환란이나 그 또한 너희 영혼을 위한 것이다. 너희는 그것을 통해 너희가 본래 나의 분신이며 그 어떤 죽임으로도 죽지 않는 부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환란이란 연극 무대일 뿐이다.



너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죽지 않는다.



너희의 영혼체인 기몸이 환란의 두려움으로 얼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너희는 죽지 않는다. 너희가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면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의로운 이들이 너희를 보호할 것이니 너희의 사랑이 꽃피어 지구를 덮을 것이다. 너희 안에서 기적이 일어나서 너희의 손과 발로 죽어가는 생명들과 지구를 살릴 것이다. 너희에게 환란은 최고의 기회가 될 것이다.





너희가 이 관문을 넘기 위해서 마음을 키워야 한다. 너희의 사랑의 마음을 키우고 영혼의 몸(기몸)이 강력해지도록 해야 한다. 너희는 그러기 위해 깨달아야 한다. 깨달음만이 너희를 환란의 두려움에 얼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다. 깨달음의 사랑만이 너희를 나에게 이끌 수 있다.





나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는다. 그건 너희를 사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믿는다는 이유로 구원을 원한다면 그건 바른 믿음이 아니다. 나는 오직 스스로를 깨달음으로 구원하는 자들을 도울 뿐이다. 나는 너희가 본래 나임을 말함으로써, 너희가 본래 죽음이 없는 무한한 사랑임을 말함으로써 너희를 도울 뿐이다. 너희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 이상을 바라지 마라. 너희는 어리고 약하지 않다. 너희는 너희에게 닥칠 모든 어려움을 이길 만큼 강력하고 위대한 영혼들이다. 너희는 나의 돌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이제 너희들의 진면목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의 영혼이 이전에 이미 큰 깨달음에 들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지구에 오기 전에 너희가 있던 별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지 않았다면 지구에 태어날 수 없었다.



 



그때 이미 너희는 충분히 준비했다. 이제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그 깨달음을 상기하고 실천함으로써 환란의 시험에서 벗어나 나에게 돌아오는 일이다. 너희가 그 깨달음을 상기하기 위해 의로운 일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너희의 존재를 더 높은 깨달음의 자리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너희가 이미 이루어낸 깨달음을 상기하려면 영혼의 자리에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 너희에게 필요한 일이 있다. 너희가 영혼으로서 너희 자신을 자각하고 느끼기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영혼의 온전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너희는 물질의 장벽을 극복하고 의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환란을 선택한 것이다. 이제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예전에 너희가 깨달음의 길을 걸어 올라갔듯이 다시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너희가 이룰 일은 그것뿐이다.





의로운 길에 들어서면 너희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기도하고 나의 응답을 구할 것이다. 그 기도가 진실할 때 나의 응답을 얻고 나의 힘을 입을 것이다. 그것이 너희를 나의 자리로, 나의 사랑으로, 나의 깨달음으로 이끌 것이다. 그것은 예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기도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나를 모르고 어떻게 본래면목을 보고 우주가 하는 일을 알며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진심으로 언제나 나와 같이 있기를 원한다면 의로운 일을 통해 나를 깨닫는 길밖에 없다. 너희가 나를 깨달을수록 너희는 완전하게 나를 느끼고 체험할 것이다. 너희 삶의 매순간이 깨달음으로 가득 차 있다. 너희 삶은 깨달음의 체험을 위해 너희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깨달음이란 새로운 진실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너희는 그것을 외면해왔다. 그렇지만 너희가 새로운 진실을 보고자할 때 그것은 오랜 먼지를 털고 너희 안에서 일어난다.



 



깨달음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계산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너희 곁에 있었던 진실의 발견이다.



그것은 너희 삶의 뿌리를 영혼의 더 깊은 자리로 옮기는 것이다.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라. 깨달음은 단지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너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을 깨닫는 것은 언제나 너희에게 이로운 것이다. 많이 안다고 깨닫는 것이 아니다. 지식의 일꾼들은 그들의 왕국을 만들지만 곧 허물어진다. 그들의 진실은 곧 허물어진다. 그것은 주춧돌이 잘못된 것을 무시하고 탑을 쌓은 것이다. 그들은 곧 그 탑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깨달음은 무너지지 않는다. 깨달음은 너희가 오르는 산 정상의 경관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너희가 그 산에 올라 그 자리에 서면 항상 볼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길은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다. 너희가 내게 초점을 맞추고 너희 삶을 통찰하기 시작하면 깨달음은 별을 찾는 것처럼 쉽다. 처음에 하나하나 별을 찾듯이 작은 깨달음을 얻고 그것이 결국은 하나의 별무리였음을 알게 되듯이 작은 깨달음들이 발판이 되어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 너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너희는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너희의 깨달음이 길이 거기에 있음을 보이고 너희는 용기를 내어 그 길을 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너희가 오르고자 했던 그 자리에 오를 것이다. 거기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다. 길을 여는 것이 깨달음이다. 길을 열어서 다른 이들을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는 것들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의 끝에서 너희는 나를 온전히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 이 우주의 온전한 삶을 체험할 것이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체험의 세계이다. 지극히 고요하고 지극히 적막하고 끝이 없이 깊고 영롱하며 더 없이 아름다운 체험이다. 그것은 나를 온전히 아는, 나와 하나 되는 체험이다. 너희는 영혼의 나무와 같고 너희 한 삶은 그 한 가지와 같다. 너희가 진리를 구하는 것은 그 나뭇가지에 꽃을 피우는 것과 같고 너희가 깨달음을 얻어 가는 것은 그 열매가 익어 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너희의 깨달음이 완성되면 너희 영혼의 열매도 완성되고 그것은 새로운 영혼의 씨앗이 된다. 이것이 진리의 열매이다.



 



모든 너희 현실은 너희에게 언제나 최상의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고 불안해도 그것은 너희 영혼에게는 최고의 현실이다. 그것은 너희 영혼에게 필요한 현실이며 바로 너희가 원한 현실이다. 그것보다 좋은 현실은 없다. 그렇지만 너희들 대부분은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긍정하라는 것이지 그 현실에 복종하라는 것은 아니다. 너희의 현실은 너희 자신을 창조하는 운동장이다. 그래서 너희 현실을 긍정하면 너희에게 최상의 현실이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면 최악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재창조한다. 그것은 아주 즐거운 놀이와 같은 것이다.





너희의 환경이 나쁘다고 투덜댈 필요가 없다. 나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그런 현실을 선택한 것은 바로 너희들 자신이니까. 너희들이 투덜거림은 자기에 대한 부정일뿐이다. 너희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고 아직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희의 기몸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때마다 영혼에 대한 자기 기억을 잃어버린다. 너희가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이 이 망각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현실이 말하는 진실을 상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자신의 진실을 통찰해야 한다.





자기에 대해 의문을 가져라.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지 못하지? 그런 질문이, 자신에 대한 질문이 너희 자신에 대해 깨닫게 할 것이다. 자신을 긍정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을 보려고 노력해라. 매순간 무엇을 선택하는지. 무엇이 되어도 괜찮다. 매순간 자신을 지켜볼 줄만 알면.



 



너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너희들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희의 삶은 너희 영혼이 선택하고 너희 기몸이 선택한 것이다. 너희 영혼은 너희의 은하와 지구를 선택했고 너희 기몸은 너희 부모와 그로부터 비롯될 너희 인생의 환경을 선택해왔다. 그런 결과 너희는 윤회를 통해 많은 체험을 해왔다. 너희 삶은 영혼이 우주에서 자신의 존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영혼은 너희 삶을 통해 우주의 여러 존재들을 체험하고 자신의 온전함을 실현하려고 한다. 영혼은 너희의 창조와 깨달음을 통해 나에게서 비롯된 자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지금 이 지구에서 거대한 영혼의 완성이 이루어지길 고대하고 있다. 바로 너희들 인간의 삶을 통해서.

너희의 삶은 영적으로 가치 있고 나에게도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 자신에게 의미 있다. 너희의 삶이 없이 우주는 영혼의 목적을 다할 수 없고 기몸은 발전하기 힘들다. 그리고 신인 나 역시 너희를 통해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모두 나를 대신해 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 우주의 많은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너희가 이 우주에서 체험하는 일이 없다면 나는 이 우주를 체험할 수 없다. 너희가 질문을 던지기 전에는 나는 그 일들을 알 수 없다.





너희 생명들은 많은 아이를 낳지만 그들 모두를 완전한 어른이 될 때까지 돌보는 것은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을 너희의 품에서 내보내고 자연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들 스스로 살아남을 기회를 준다. 이것이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영혼들은 모두 나의 아이들이지만 나는 그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뿐이다. 모든 삶에는 기회와 시련이 있다. 이 둘은 삶을 어렵지만 다양하게 창조하도록 한다. 이런 두 성질이 얽혀서 여러 수준의 삶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이런 파동이 수없이 이어진 것이 이 우주이다.





사랑은 우주의 본성이다. 우주는 그 몸 자체가 사랑이다. 우주가 사랑하고 포용하지 않는 어떤 것도 우주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의 사랑 안에 은하들과 태양과 지구가 존재하듯이 너희는 지구의 사랑 안에 존재한다. 인간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너희 안에 존재하는 것은 너희 영혼이 포용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성에 대한 소유욕을 사랑이라 부르지만 이는 욕구의 표현이지 사랑은 아니다. 그런 애정관계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너희 기몸 중의 한 차원의 사랑일 뿐이다. 인간의 사랑은 마음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영혼의 사랑은 인연이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인연은 이미 영혼의 사랑이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의 완성을 도우리라.





너희는 결국 나의 알이고 나의 온전함을 실현할 나의 아이들이다. 나는 너희를 지배하지도 심판하지도 않는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너희의 선택이다. 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이들 역시 그들 자신을 위한 선택이지 나를 위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영광되며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 내가 원하는 세계는 없다. 내가 원한 것이 있다면 이미 실현되어 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지 나를 위해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를 지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너희 영혼들에게 맡겼다.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으니 이제 나는 너희가 선택한 것을 원할 뿐이다.





내가 너희를 대신해서 이 우주를 창조한다면 너희가 보기에는 더 아름다울 것이다. 지만 그런 우주는 내 안에 이미 존재한다. 너희가 그런 세계를 위해 나의 도구가 되기를 자청하는 것은 이미 지어진 우주를 다시 짓는 것에 불과하다. 너희가 진정 나의 영광을 위한다면 너희 스스로 위대한 영혼임을 보여라. 그것이 너희의 깨달음이며 너희 안의 나를 보는 것이며 너희가 부처에 드는 것이다.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큰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영혼들이고, 그 깨달음을 상기하고 당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지금과 같은 현실과 앞으로 올 환란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 기몸이 얼어서 망각한 것이지만 바로 우리 영혼들의 선택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최상의 현실이고 그 안에 우리가 상기해야 될 깨달음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영혼으로 자각하기 위해 의로운 일들이 필요하고 큰 사랑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앞에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건 너희를 위한 것이다.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은 너희 영혼이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두려움이란 감정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두려움은 극적인 감정이다. 그것은 앞으로 올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기몸의 보호본능이다. 그것은 여러 결로 되어 있다. 그 바깥의 결은 죽음이나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만 그 안쪽의 결은 명예나 자존심이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더 안쪽의 결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자신의 믿음이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영혼들은 자신의 삶이 의미없이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지만 똑같은 삶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사라진다. 그게 너희의 부처 자리의 진실이다.



두려움은 시간이 만드는 거군요. 항상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니까요.



그렇다. 그것은 앞으로 올 일들을 미리 예상하고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너희에게 의미있는 일이다. 그 일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너희를 돕기 위해서다. 너희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마라. 그 안에 깨달음의 기회가 있다.



모든 것들을 지켜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죠!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죠.



그것이 너희의 부처이다. 그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 진실을 바라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 부처는 시간을 초월해있는 건가요?



그렇다. 그리고 너희와 같은 시간을 체험하기도 한다. 너희 삶은 부처의 삶의 일부이다. 그는 진실을 바라볼 뿐이고 너희는 두려워한다.



그럼 선택은 어떻게 하죠?



삶이란 끝없는 선택이고 그 선택을 위해서는 끝없이 의심하고 판단해야 되는데요.



우리의 두려움은 그 속에서 생긴 부산물 같은 감정이잖아요?



그 또한 너희의 두려움이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기 시작하면 굳이 판단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 일의 진실을 알게 된다.



아! 알았어요. 초점이 다른 거군요. 우리는 매순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해요. 무엇인가 이익을 보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거죠. 그런데 부처는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인 거죠. 무엇이 진실인가? 이 선택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는 지켜보고 체험 속에 자신을 맡기는 거죠. 고통이든, 행복이든.



그렇다. 너희가 두려워하는 그 순간에도 너희의 부처는 그 진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 우리에게는 온전한 눈과 온전하지 않은 눈이 있는 거군요?



그렇다. 그것은 기몸의 여러 층들이 다른 눈을 갖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눈이 있나요?



그것은 모든 눈이다.



모든 눈이 너희 것이다. 모든 체험이 너희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체험이, 전생과 후생의 모든 체험이, 너희와 너희 아닌 모든 체험이 너희 것이다. 그것이 진실의 온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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