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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계획만이 지구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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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 마음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3.♡.184.195), 작성일 08-12-14 19:09, 조회 3,199, 댓글 0

본문


1. 스페이스 커맨드(우주인)의 활동은 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오늘 밤은,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 설명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 이 지구는 대단한 시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이 “지구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자, 지구가 빨리 상승할 수 있도록 지구에 사랑을 보내자!” 이런 분위기로 지구를 향한 봉사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만큼의 행위를 보면, 무엇하나 잘못된 것은 없고, 지구에 있어서도 필요한 것이며, 우주에서 볼 때라도 훌륭한 일인만큼, 그것을 믿고 여러분은 여러 가지 워크를 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들의 생각은 그러한 활동에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이제 그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플레이아데스가 생각하는 계획은 자신들의 업을 해소하기 위해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 지구에서 그들이 과거에 행한 인간에 대한 조작이 업을 만들게 되었고, 그들은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수복하기 위해서, 지구에 찾아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선 자신들의 업을 해소하는 것이 대전제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지구가 파괴되거나 지구 인류가 괴로움을 맞이하는 것은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단지 지구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 모든 인류가 상승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업이 해소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업의 해소를 대전제로 하면서, 여러분에게 메세지를 주고 있습니다.





시리우스는 시리우스 나름의 계획이 있습니다. 시리우스는 과거에 자신들이 지구인에 범한 잘못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업과는 다른 레벨로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대로 다른 혹성의 존재들이 계획을 진행시켜 나가면, 시리우스 자신에 있어 매우 중대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어 버립니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는 다른 스페이스 커맨드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이 대전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선 플레이아데스나 다른 스페이스 커맨드의 계획 자체를 가능한 한 제대로 진행되지 않도록 방해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최저한 필요한 일입니다.



 



오리온은 그들 자신의 혹성의 에너지들을 지구에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이 지구에서 체험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필요한 에너지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이것은 오리온 자체에도 커다란 테마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밖에도 여러분이 모르는 혹성의 존재들이 몇 백 개도 넘게 이 지구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신들만의 계획을 만들어 이 지구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다른 혹성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지구에 찾아온 존재들도 있습니다. 이것들이 나머지 몇 년 안에, 이 지구상에서 모두 현실로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 때 이 지구는 어떤 상태가 되어 버릴까요?



 



플레이아데스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세력, 그들은 플레이아데스와의 에너지적인 투쟁을 끝없이 계속하겠지요. 시리우스의 계획, 이것을 저지하려는 존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리우스는 시리우스 나름대로 자신들의 계획을 아무쪼록 성공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지구 인류가 스스로 지상에서 연출하게 됩니다. 인간끼리 이것을 지상에서 연출합니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계획을 만들어 그것을 실행하려 하면, 다른 사람이 방해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곳에 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누군가 그것을 부수어 갑니다, 이러한 흐름이 몇 번이나 반복되게 됩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도 누구나 어떤 스페이스 커맨드가 반드시 관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이런 장소에서 모두가 사이가 좋게 하나의 일을 하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어떤 곳에 가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각자 완전히 별개의 흐름을 에너지적으로 연출합니다.



 



인간의 의식으로는 잘 느껴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우주의 레벨에서는 모두 보이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러한 흐름을 연출하고 있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인간이 그룹이 되어, 이른바 “파워 있는 성소(Vortex)”에 여행을 떠납니다. 언뜻 보기에는 모두가 즐거웠고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배후에 있는 스페이스 커맨드들이 각각 별개의 에너지 조작을 하고 있어, 여러 가지 상황이 그 배후에서 연출되어 서로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서로 부딪친 에너지를 그 장소에 넣은 후,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이 지구상에서 재연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인지…?” 그렇게 느끼고 있겠지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에 대한 대안을 여러분에게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신과 하나 되어 걸어가려는 마음이 있을런지... 정말로 신의 계획을 성공시키고 싶다는 소망이 있을런지... 우선은 이것이 커다란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영혼의 레벨에서 아직 헤매이고 있는 사람이 여러 명 있습니다. 무엇이 일어나는 것인지, 영혼 자신도 모릅니다. 여기에 있는 약 절반의 사람은 아직껏 스페이스 커맨드의 계획을 그대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 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거나 예기치 않은 사건이 터지거나 하는 것은 모두 스페이스 커맨드의 에너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단순하게 여러분이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는 한마디로 우리들의 동료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후에 일련의 테스트 기간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거기에 적합하게 통과한 사람만이 우리의 동료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즉 그 테스트 결과 우리의 기준에 맞지 않았을 경우, 유감스럽지만 이 지구로부터 떠나 주시는 것이 되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터럭만큼의 틈이라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일각의 방심도 해서는 안됩니다. 스페이스 커맨드의 개입을 일절 허락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불과 몇 푼이라도 마가 끼게 되면, 우리의 계획은 지극히 어려워져 버립니다. 정말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맡기겠다는 다짐을 한 사람, 그러한 사람부터 우리는 계획 속에 포함시키게 됩니다.



 



이미 그 동안의 스터디 그룹에서 몇 명의 사람은 우리와 약속을 주고 받아, 벌써 우리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아직 그 테스트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해 두세요. 아무래도 곧바로 틈을 만들어 버리는 사람, 그러한 사람은 상대에게 이용당하기 쉽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매우 위험합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행동 한다는 결의,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정말로 자각해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금 우리가 지구 인류와 어떻게 서로 협력하여 우리의 계획을 진행시켜 나가는 것일까요? 우리로부터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정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와 연결되어, 직접 우리의 생각을 받아들여 행동해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로부터의 생각과, 스스로 마음대로 믿어 버린 생각과의 구별이 거의 안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나 자신은 신이다.’ 이 의미가 아직도 이해되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여러 가지 어드바이스를 받아,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연습을 거듭해 왔습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우주와의 연결이 조금씩 이해되어, 스스로의 성장이 기쁨이 되어 배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면 좋은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 아직도 이런 기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거나 “모르겠다”라는 말을 내고 있는 한, ‘자신은 신’이라는 진심이 아직 이해되고 있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 두세요. ‘자신이 신이다’고 하는 진심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직 완전하게 우리의 일원으로서는 인정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하면 좋은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입으로부터 발한 바로 그때, 아직 “우리들의 동료는 아닙니다.”라고 하는 메세지가 도착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해 두시기 바랍니다.





’나는 신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입니까?



 



 



 



2. 자신만의 오의(奧義) (창조주)



 



 



여러분이 나에 의해 만들어졌을 때, 여러분의 본질 안에 나의 모든 요소, 유전자와 같은 것, 그러한 것을 넣음과 동시에, 자신만의 훌륭한 오의(奧義)가 각자에게 모두 들어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전혀 다른 오의(奧義)가 들어가 있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다른 사람보다 무엇인가 자신이 훌륭하다고 느껴지는 것, 그것을 꽤 어릴 때부터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오의의 일부분이 느껴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그것으로 의기양양해지거나 다른 사람 보다 위에 오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구인 전원이 저마다의 오의를 몸에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의에만 의식을 향해 그것을 활성화 시키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은 ‘나 자신은 신이다’ 고 하는 본질을 빨리 몸에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지금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지금 자신은 무엇을 배우려 하고 있는가?



 



자신이 신으로서 지상에서 역할을 행한다, 이것이 어떤 현실을 만들어 가는 것인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오의에는 지금까지의 현실을 바꾸어 버리는 능력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그 오의를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개념을 모두 놓아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을 근본으로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신의 오의가 어떤 것일까를 하나 하나 말로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신의 생각이 통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아직 일체화가 끝나고 있지 않은 동안에, 사고(思考)로서 개념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할 수 있으면 나머지 몇 년 안에 마스터해 주었으면 하다. 자신이 지구에 공헌할 수 있는 최대의 것, 그것이 바로 신과 연결되어 오의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에 빨리 눈을 떴으면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각각의 오의를 서로 인정해 주도록.





머지 않아 확실히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자신감을 가져 두도록. 자신은 ‘아직 할 수 없다 라든가, 아직도 멀었다’ 라는 인식은 버려 두도록. 여러분에게 이제부터 커다란 신들로부터 오의를 전해 간다…



 



여러분에게 축복을…나는 언제나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다



 



 





3. 다만 사랑을 빌면 그래서 좋은 것인지

그러면 마지막에 약간 설명을 하고 휴식하기로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해진 내용이 여러분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여러분이 지금까지 상상하고 있던 방식으로 정말로 지구가 좋아질 수 있을까요…? 정말로 지구가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요…?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난 10년, 20년 동안 나는 열심히 타인을 사랑하고자 했다.’ ‘타인을 인정하고 허락했다.’ ‘타인과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사랑이 얼마나 몸에 익혀졌는지… 똑같이 지금부터 10년, 20년 동안 노력하면 어디까지 사랑이 몸에 익혀지는 것일까요? 정말로 지구는 그래서 사랑으로 가득 흘러 넘치는 혹성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지구의 여기 저기에서 전개되고 있는 수많은 분쟁, 이것이 정말로 사랑으로 사라져 가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생명이 차례로 사라져 가는 이 상황에서 다만 사랑을 보내면 그들은 소생하는 것일까요? 정말로 잘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4.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테마를 가지고 있다



앞서의 이야기에 대해 조금 보충을 하고자 합니다. 지금, 스페이스 커맨드로 분류되어 있는 존재들의 활동 가운데, 우리들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은 플레이아데스뿐입니다. 아직 다른 대부분의 스페이스 커맨드는 우리와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플레이아데스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된 이유는, 방금 전에 설명한대로 그들의 업과의 균형으로, 어느 정도 우리와 협력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업에 대해서도 우리가 어떠한 대처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플레이아데스가 전면적으로 우리를 돕는다, 그리고 그래서 잘 될 경우에는 그들 자신의 업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서로 노력한다는 약속이 성립되었습니다.

 



다만, 다른 스페이스 커맨드에 대해서는 그러한 조건을 통해 서로 납득하는 상황에는 이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 완전하게 우리의 계획 속으로는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가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들이라도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의 계획에 들어가 있지 않은 스페이스 커맨드는 스스로의 계획을 계속해 나가겠지요.



 



예를 들어 새로운 지구를 위해서 DNA를 만들고 있는 그룹, 이 지구의 이곳 저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활동입니다. 다만, 그들을 무시해도 좋은가 라고 묻는다면, 반드시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만약 이 그룹이 머지않아 우리의 계획 안으로 전면적으로 들어 오게 된다면, 그들이 만들어 낸 DNA를 몇 가지 활용할 수 있게 되겠지요. 다만, 그들이 우리의 계획에는 일체 들어 오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러한 에너지를 우리가 사용하는 일도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단계에서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해해 두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여러분의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는 것인가를 여러모로 분석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의 방법을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신이다.” 그렇지만, 어디에선가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페이스로 인생을 걷기 시작했을 때에, 주위의 사람과는 어떤 흐름이 되는 것일까? 타인은 타인대로 자신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놔두어도 좋은 것인지… 아무쪼록 사랑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 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공연한 참견인가… 가족이나 직장 동료와의 관계, 자신은 자신의 세계의 어느 부분까지 책임 지면 좋은 것일까… 이런 부분에서 각자 여러 가지 생각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여러분에게 이해 받고 싶은 것은, 기본적으로 여러분 각자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역할이 있고, 자신의 테마가 지금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테마라는 것은 거의가 인간 관계입니다. 인간과 접하지 않는 테마라는 것은 그다지 없습니다. 반드시, 인간 관계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사랑을 키워 갑니다. 그러한 인간 관계를 통해 역할을 행해갈 때에 어디까지가 자신의 세계이고, 어디까지가 상대의 세계인가… 이것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의 구성원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가끔 모두가 함께 무엇인가를 하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무엇인가 규칙을 정하거나 방식을 정하여, 가족 전체가 잘 되어가는 것을 궁리해 나가게 됩니다. 만약 그와 맞물리지 않는 사람이 나오면, 모두가 맞추어지는 방향으로 가져가기 위해, 여러 가지 사건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에너지적으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해 나갑시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테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 다 함께 무엇인가를 한다(“역주: 예를 들어 함께 나들이를 간다”)면, 그 때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자신의 테마가 그곳에 나타나게 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경제적인 사정이나, 가족 전체의 즐거움과 기쁨 등을 생각해, 잘 되어가도록 유도해 갈 것입니다. 그 때 가족 개개인의 즐거움을 어디까지 생각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어디까지 생각하여 전체적으로 잘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을까, 이런 테마를 배우고 있는 경우가 때때로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전체를 관리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에, 그러한 테마(“역주: 자신의 형편에 맞게 상대를 끌어가는 것”)를 가지고 배우고 있는 경우도 많음을 잊지 말아 주세요. 그런 경우에, 다시 한번 그것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바깥 일정의 조정하면서, “가능한 한 자신은 편하게, 다만 붙어 가고 싶다” 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참여합니다. 이때 자신은 어디까지 한사람 한사람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생각해 전체를 북돋아 갈까, 이것을 테스트하고 있는 경우가 때때로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각각 자기 나름의 테마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끼리의 장난이나 감각적인 것, 혹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에너지를 몸으로 느끼기 위해 출발하는 등,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족 구성원 각자 자신의 테마를 가지고, 그 가운데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가족 전체로 무엇인가를 하려 할 때, 이런 방식으로 한사람 한사람마다 자신의 테마가 주어지고, 자신이 그 중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배워 갑니다. 자신의 테마를 알고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만큼을 행하고 있으면, 별로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를 억지로 관리하려 하면, 관리하는 에너지가 만들어져 버려, 머지않아 자신이 누군가에게 관리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한다, 강제적으로 무엇인가를 시킨다는 에너지를 만들 경우에는, 자신도 머지않아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상대가 상대 나름의 과제를 가지면서,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는 상황이 명확하게 보여 올 경우, 솔직하게 상대가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 줍니다. 다만 상대가 그 테마를 열심히 연기하고 있으면서, 해결 방법을 알지 못하여 곤란한 상황에 있을 때에 자신은 어디까지 협력할 수 있을까요?



 



보통은 간접적으로 어드바이스를 주거나 힌트를 주는 것으로 제한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눈치채, 본인이 깨달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명백하게 “아무래도 이것이 답인 것 같다” 와 같이 표현하는 것은 꼭 바람직한 대응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힌트를 받아 자신이 답을 찾아낸다.” 그러한 연습을 몇 번이나 거듭해가면, 그 요령을 점차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신과 상대가 접하는 방식도, 어디까지가 그 사람에 대한 좋은 어드바이스를 줄 뿐이고,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그 한계를 넘고 있는지, 그것이 점차 보여 옵니다. 때문에 항상 힌트나 어드바이스만으로 상대가 스스로 눈치채는 방식. 그것을 의식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인간 관계를 영위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어디까지가 좋은 충고이며, 그 이상은 간섭이 되어 버리는지를 잘 알게 됩니다.



 



자신이 그러한 여러 가지 방식을 몸에 터득해가 여러 사람 사이에서 힌트나 어드바이스만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게 되면, 주위의 사람으로부터도 항상 힌트나 어드바이스가 자신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됩니다. 항상 자신의 성장을 위한 어드바이스가 주변으로부터 주어집니다. 항상 자신을 성장시키고자, 여러 가지 어드바이스가 오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타인으로부터 건네 받는 말이 모두 자신의 성장을 위한 어드바이스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것만으로, 그 자체가 성장에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영역이 되면, 하나 하나 “좋다, 나쁘다”고 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가치감도 없어져버려, 어느 말을 받더라도 모두 성장에 연결되어 갑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말에 매우 신경이 쓰이고, 그 말에 따라 마치 자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느낄 경우, 자신도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현실에 안주해 버려, 어느새 성장을 멈추어 버린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경험해 왔을 것입니다. 무심코 환경이 즐겁고 편하게 되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만 거기서 응석부려 버려, 가능한 한 거기서 안주하려 합니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의 마음이 성장을 거절하고 있는 존재들에게 지배되어 버리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케이스가 종종 있습니다.



 



락(快樂)을 누리려 생각한 순간에, 성장을 거절하는 에너지가 비집고 들어 옵니다. “조금이라도 편해지고 싶다.” 이런 기분이 성장을 방해해 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약간 쉬고 또 언젠가 노력하면 괜찮을 거야, 가끔씩은 쉬는 것도 필요해.” 이렇게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육체적인 휴식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마음의 발동에 있어서는 항상 성장하는 것을 방향성으로서 명확하게 만들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성장하는 것을 멈춘 순간에 이미 성장을 거절하는 에너지가 들어 옵니다. 어느 새인가, 자신은 그것이 본래의 자신이라고 믿어 버려, 성장을 하지 않는 자신이 어느새 진정한 자신인 것처럼 믿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항상 성장을 의식화하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 항상 무언가를 눈치채자, 다른 사람과 만났을 때에도,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이 테마일까? 나 자신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지금 나 자신은 무엇을 공부하고 있을까? 지금 지구는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이런 기분을 항상 가지고 있는 한, 자동적으로 성장하는 에너지가 흘러 옵니다. 따라서 항상 성장을 의식해 두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여러분은 아직 그것을 몸에 댄 체험이 없고, 자신의 것으로 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 감각을 모를 뿐입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괴로운 것이 아니고, 차라리 즐거운 일입니다. 순간 순간, 항상 새롭고 즐거운 발견이 있고, 기쁨이 있으며, 성장이 있습니다. 성장하는 것을 괴롭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 우선 이것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본연의 자세를 조금 궁리하는 것만으로,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아가고 있다”는 인식이 가능합니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해, 항상 자신이 우주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몸에 익혀 두세요.



 



 





5. 인간 관계가 귀찮기 때문에 편함(樂)을 요구한다

 



방금 전에 이야기 되었듯이, 우주의 공부를 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어렵고 괴로운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가장 편한 삶의 방식은 우주적인 성장을 몸에 익힌 방식입니다. “항상 무엇인가 새로운 발견이 있고, 무엇인가 기쁨이 있어, 그것을 알고자 살아간다.” 실제로는 이것이 가장 편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다만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기를”을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장한다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불가능합니다. 체험하는 것에 따라, 성장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체험하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금 전 말씀 드린 것처럼, 대부분의 체험은 인간 관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은 인간 관계가 귀찮은 것입니다.



 



“사람과 접해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이것이 귀찮습니다. 남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받는 것, 이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으로부터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는 고통을 느낍니다. “남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받는 것, 이것이 나 자신에게 가장 편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받는 것만을 생각하고, 다만 가만히 꼼작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틈이고, 타락인 것입니다.



 



왜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입니까? 인간과 접하는 것으로 정말로 지치게 됩니다. 하나 하나 상대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다만 무엇인가를 받는 것을 기대합니다. “상대를 정말로 기쁘게 해 주자. 상대를 즐겁게 하자”는 기분이 처음부터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사람은 좀 더 이렇게 되면, 즐거워질 것이다. 이 사람은 좀 더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한 기분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이것을 해 주면, 나는 즐겁다. 이 사람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해 주면, 나는 고맙다.” 이것으로 바뀌어 버리고 있습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 즐거운 것을 해 주자” 이것이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 관계가 귀찮습니다. 현실 그것이 귀찮습니다. 체험하는 것이 귀찮습니다. 따라서 성장하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이제 이러한 것은 끝내도록 합시다.



 



눈 앞의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위해 왜 자신이 행할 수 없는 것인지…. 근처의 사람이 미소 짓는 것을 위해 왜 자신이 행할 수 없는 것인지…. 정말로 인간 관계를 즐겁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기분이 우선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변의 사람과의 관계를 즐겁게 해 나가자. 눈앞의 사람과 함께 이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가하자.” 이런 생각이 우선 끓어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눈 앞에 사람이 있으면, 벌써 싫은 느낌이 일어나 버립니다.  여러분 모두는 인간 그 자체를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인간이면서,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 지구에서 체험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인간이 무서워지도록 개조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인간 관계를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불안하게 되도록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근본으로부터 바꾸기 위해서는, 플레이아데스의 본래의 유전자를 우선 앞으로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관여한 혹성의 인간들의 모든 흐름을 앞으로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에 관여한 혹성의 수가 50개 정도 됩니다. 그 동안 정작 그들은 여러분에게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당신은 아직 사랑이 충분하지 않다」와 같이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몸에 완전하게 스며들고 있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 지금 플레이아데스의 힘을 빌려, 그것을 원점으로 돌리도록 여러분의 육체를 바꾸어 가기를 바랍니다.





「이 육체의 유전자는 더 이상 걱정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다. 나는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서로 즐거운 장소를 만들어갈 수가 있다. 나의 육체여, 소생하도록.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나의 육체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나의 육체는 신이 머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신과 함께 있다…」.



 



「인간들은 몇 만년도 넘게 인간 관계를 고통 속에서 영위해 왔다. 이제 그러한 경험을 이 육체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의 육체는 이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우리는 사랑과 함께 지금부터 활동해 나갑니다. 머리로 기억한 사랑이 아니라, 정말로 주변의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 지상에서 역할을 행하고 있는 동료라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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