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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의 길 기쁨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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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예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2.♡.59.165), 작성일 08-12-27 17:33, 조회 4,613, 댓글 0

본문


2. 사랑의 길, 기쁨의 길









벗들이여, 좋은 저녁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 현실의 토대는 신념 체계입니다. 그것은 벽돌과 같아서, 여러분은 그 벽돌로 나날의 현실을, 여러분이 알고 있는 우주를 지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소위 근본적 진리라는 것에 대해 많은 말을 들어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의 많은 부분들이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적으로 아무리 훌륭하게 이해한다 해도 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의 현실을 짓는 것은 신념입니다. 당신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신념이 당신들 존재의 건물을 짓는 재료들이고, 이런 작업은 태어나자마자 시작됩니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지를 배웁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가르침들은 그다지 긍정적인 것들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당신들 문화가 내세우는 과거의 역할들은 곧잘 당신들 자신과 거리감을 느끼곤 합니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를 보십시오. 이제 와서는 당신들 문화에서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기성 종교를 다르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위 여러분들의 집단의식 속에도 그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구세주라는 예수 벤 요셉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당신들은 배우기 시작합니다. 예수는 악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노라고.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는 본래 자신을 위한 경험으로서, 일종의 본보기로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인류에게 죽음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바로 그런 왜곡된 가르침 때문에, 당신들 모두가 죄책감을 느끼면서 자라게 되었고, 그리하여 심판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신이 이러한 신념들, 즉 어린 아이 때부터 지녀온 이런 신념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념이 겉으론 드러나지 않더라도, 당신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런 신념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마련입니다.









당신들은 자신이 가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을 받을 가치도 없고, 우주가 자신에게 마련해 주는 온갖 경이로움을 누릴 가치도 없고, 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도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숨쉴 가치조차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숨쉬기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개는 자신들이 살 가치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육체가 끝나는 곳에서 당신들도 끝난다고 믿고 있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가 둥글다고 믿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이란 머리 속에서만 머무는 어떤 것이고,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는 상관없다고 믿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자신이 무얼 믿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무얼 믿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 대해 무얼 믿고 있는지, 당신의 행성에 대해 무얼 믿고 있는지, 식물과 동물에 대해서는 무얼 믿고 있는지, 우주에 대해서는 무얼 믿고 있는지..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신의 신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성적으로는 터무니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정작 믿음의 체계는 그와 다르기 때문이죠. 당신은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신/여신의 일부임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가슴 속 열망은 전체가 되고자 합니다. 그 열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이 곧 전체입니다. 가짜의 자아와 본래의 자아가 따로 있다는 것은 당신을 위해, 아니 인류를 위해 비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분리의 슬픔을 겪고 있습니다. 자신이 전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전체가 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가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현명하지도 않고 충분히 아름답지도 않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계속해서 분리 속에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당신 밖에 있는 모든 것은 거울이고 당신의 반영입니다. 당신이 다른 누군가를 혹독하게 비난할 때도, 당신은 당신 자신의 반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벗이여,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정원으로 가서 하늘을 보십시오. 나무를 보고 달을 보십시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순간의 아름다움 속에서 그것 또한 자신의 반영임을 아십시오. 당신은 놀랄 만큼 아름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뜰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과 경이로운 사랑을 나누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나요? (긴 침묵) 진실로, 진실로,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나요?









거울을 들여다보십시오.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임을, 인류라는 보석의 한 면임을 깨달으십시오. 그럼에도 당신은 스스로를 고통과 절망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진실로 변화의 시간입니다. 인류와 우주는 소위 남성 에너지로 작동합니다. 남성 에너지란 행동하는 에너지입니다. 인간은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존재하는 인간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남성 에너지는 투쟁하고 조직하고 추진하는 에너지입니다. 여성 에너지는 양육하고 수용하고 자신을 내어주는 에너지입니다. 당신의 성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혼에는 성별이 없습니다. 인류와 남성 에너지는 남성 에너지로부터 왔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는 에너지로부터 왔습니다. 당신 행성의 여성들은 소위 여성 운동이라는 것을 흡족하게 여겨 왔습니다. “이젠 우리가 남성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지. 이번엔 우리가 너희를 이겼어. 나쁜 자식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겠죠. 하지만 그 여성들도 실은 남성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네 문화에서는 여성 에너지가 경시되어 왔기에, 살아남으려면 여성도 남성 에너지를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역사에서 남자가 울거나 수용적이면 용서 받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남자가 아이를 양육하는 것도 금기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변화가 몰려오고 있고, 그 바람은 더욱 더 거세어질 것입니다.







 



남성 에너지를 비방하자는 게 아닙니다.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마치 비둘기의 양쪽 날개와 같습니다. 비둘기는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지요. 자기가 누구인지를 받아들이는 것,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되면 자녀 교육에도 대단한 변화가 올 것입니다. 머지않아 그런 변화가 올 것입니다.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는 자녀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건 전혀 다른 학습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런 균형이 생기면, 그 바람이 지구 전체에 퍼져 나갈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끔찍한 불협화음으로 지구가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듯이, 변화의 물결이 닥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전율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하지만 벗들이여, 당신들이 여기 있기로 선택한 것이고, 그 변화를 목격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 변화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촉진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겁니다. 진실로, 진실로 죽음 같은 것은 없음을 이해하기 위해 여기에서의 이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죽음 같은 것은 없다고 믿게 되면, 당신들의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되면, 모든 실체가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면, 그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당신이 사물을 바꿀 수 있음을,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알게 될 때 당신은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쳐주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는 올바른 질서라 불릴 것입니다. 대변혁은 ‘기회’로 불릴 것이고, 긴박한 사태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기쁨과 축하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로써 새로운 질서를 위한 변화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믿음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됩니다. 당신이 믿고 있는 것, 당신 자신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의 모든 것이 실은 자신의 반영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더욱 더 화합하게 되고, 더욱 더 확장된 의식에 이르게 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비추는 거대한 반사경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현실을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창조합니다. 우연한 사고는 없습니다. 우연의 일치도 없습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벗이여, 오직 당신뿐입니다. 당신은 경이로운 낙원을 창조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이런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당신의 삶에 대해서, 당신 자신 안에서 어떻게 변화를 창조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 나갈 것입니다. 번뇌와 고통을 어떻게 껴안을 것인지, 육체의 불편함을 어떻게 고칠 것이며, 어떻게 화합하여 전체가 될 것인지, 그리하여 어떻게 더욱 더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풀어 나갈 것입니다. 자, 이제 질문 하십시오.









새로운 질서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정치인들이 말하는 신세계 질서와 같은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만 확실히 알고 싶습니다.









인류의 새로운 질서, 사실상 우리는 새로운 종(種)의 사람들을 말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고 되어온 3차원에서 4차원으로의 변화를 뜻합니다. 우리도 사실은 이런 용어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이러한 변화가 현재 당신들의 의식 수준을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중 상당수가 그러한 변화를 흘깃 넘어서 본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에도 말했듯이 벗이여,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묘사하는 것은, 자궁 속의 태아에게 삶이 어떠한지를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미 그것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표면의식적 앎을 넘어서서 당신은 이미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게 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의식적 이해 안에서도 자신이 빛의 존재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당신은 위대한 테크놀로지의 세계로 들어가 모든 것이, 진실로 모든 것이 하나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 안에서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든, 분리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당신들 모두가 근원에서, 분리가 없는 신성한 근원에서 왔음을 알게 됩니다. 당신 자신이 물리적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게 될 것이고, 자신이 신의 생각임을 알게 될 것이며, 그러한 이해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은하계를 누비며 여행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어떤 모습, 어느 장소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나타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저기에 있는 당신 영혼 에너지의 분실들과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법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원자나 분자의 빛 에너지를 해독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것이 바로 새로운 질서입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기쁨으로 가득 차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벗이여, 또 다른 질문 있습니까?









(남자) 그러니까 그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는 지켜보면서 그것이 펼쳐지도록 허용하는 일만 남았군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벗이여,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일이란 없다는 걸 아세요? 지금만이 있을 뿐입니다. 저마다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순간의 충만함 속에서 사는 겁니다. 설령 기쁨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벗이여, 어떤 형태든 존재의 충만함 속에서 살도록 하십시오. 슬픔이나 고통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슬픔과 고통을 온몸으로 껴안으세요. 이런 방식을 통해서만 내일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의 시간 개념은, 정말이지, 한정적입니다. 이러한 시공 연속체 밖에는 다른 시간이 존재하며, 그 시간은 오로지 지금뿐이고, 그것은 또 어떠한 시간도 될 수 있습니다. 내일이란 없음을 다시 한번 상기 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과거 속에 살면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를 살 수가 없습니다. 내일들이 그 자체의 아름다움 속에서 충만케 하려면, 지금 현재를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수용은 위대한 여성 에너지요, 극도로 확장 시키는 에너지입니다. 받아들임으로써 다음 순간을, 그 다음 순간을 창조하는 겁니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까 걱정하면서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원하고,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일어나기를 원하며, 이러저러한 때까지 일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라고 말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수백만의 가능성들을 즉각 차단하고 있는 셈입니다. 위대한 창조기술을 발휘하려면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나는 내 존재의 신성으로부터 이러저러한 것을 원한다.” 그러한 생각을 우주에 띄워 보내고, 그것이 이미 일어나고 있음을 아십시오. 현실이 되어 나타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당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정으로 품은 소망을 띄워 보내면 그 즉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독단적으로 이러저러할 것이라고 결정해버리면, 당신은 즉시 가능성들을 바꿔버리는 셈이 됩니다. 수백만의 변수를 차단한 셈이 되어 버립니다.









(여자)의식을 고양 시키는 데 있어서 육체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요?



그리고 그 육체는 어디로 들어오나요?









육체는 진실로 경이로운 탈 것입니다. 영혼이 거주하는 사원입니다. 당신의 육체는 수백 년,수만 년을 견디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요. 당신의 육체는 이러한 차원의 현실을 경험하기 위한 탈 것입니다. 육체는 그 자체로 완전하며, 스스로 세포 차원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의 육체는 당신의 행성과 더불어 놀라운 공명을 일으킵니다. 당신의 육체가 없이는 이 행성이라는 옷감도 짜여질 수가 없습니다.





 



당신들은 육체를 경멸하곤 합니다. 매우 영적인 사람들 중에도 육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육체를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가 낙원에 도달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육체를 선택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합니다. 육체 또한 신성의 표현입니다. 육체가 없다면 많고 많은 기쁨들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육체는 정말로 놀라운 도구이고, 경이로운 실체입니다. 탄력 있고, 창조적이고, 야성적인 창조성을 가진 실체입니다.









세포적인 차원에서도 육체는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육체는 겉으로 표현된 영혼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만약 당신이 육체를 지니지 못했다면 이 3차원 세상은 매우 따분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육체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나요? 당신 자신을 반추해 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육체와 당신 자신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당신의 육체는 항상 당신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바로미터 같은 것입니다. 육체의 질병은 자아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육체가 불편을 호소한다면 그 부분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못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해 알면 알수록 당신의 육체는 당신의 상태에 대해 더 많은 말을 들려줄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더욱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가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몸은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그리 쉽사리 쓰러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기쁨 속에 있다면, 당신의 몸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설령 독을 먹었을지라도 당신의 몸은 자동적으로 해독 작용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들은 당신들 삶에서 배운 것과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들은, 사실 인류의 집단의식과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눈부신 도약을 기해야 할 때입니다.









꿈에 관해서인데요, 때로는 꿈이 다음날 일어날 일을 예시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나요?









벗이여, 잠을 자면서 당신은 다차원의 세계를 경험합니다. 가르침을 위해서 일뿐 아니라, 위대한 모험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자고 있는 동안, 당신은 여행을 하기도 하고, 육체적 접촉이 없었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기도 합니다. 이 행성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으로 가기도 합니다. 꿈꾸는 동안 당신은 매우 바쁩니다. 꿈이 없다면 당신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꿈은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진정한 현실입니다. 꿈은 실재하며 유효합니다. 다른 의식 상태에 있을 때를 당신은 꿈이라고 하는 겁니다.









깨어있을 때도 그런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벗이여,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의식의 다차원성을 이해하려고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리감을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이 있기는 합니다. 잠자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그런 일 중의 하나입니다. 당신이 만약 6시간을 잔다면, 그 시간을 3시간씩 쪼개어 자십시오. 새벽 시간을 잘 이용한다면 현실의 분리감이 더 줄어들게 될 겁니다.









새벽마다 의식의 다른 상태로 들어가 모험도 하고, 의식적으로 몸을 떠나는 여행을 해보세요. 당신들은 그것을 유체이탈의 경험이라고 부르죠. 이런 경험은 특히 새벽에 이루어집니다. 몸을 충분히 이완 시킨 다음 잠들기 전에 “나는 3시간만 자고 놀고 싶다”고 요청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 놀라운 의식 상태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꿈을 기록하는 습관도 도움이 되지요. 3시간씩 쪼개어 자는 것이 습관이 되면, 꿈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놓치지 말고 기록해 보세요.









적어도 21일간 그렇게 해보세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꿈의 노트를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습관이 되면, 꿈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잠재의식이 의식에게 말을 거는 꿈의 언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건 굉장한 모험이고,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유체이탈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는 것이 육체적 감각으로도 느껴집니다. 어제 밤에는 대기권 밖까지 올라갔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현실의 지구 안을 여행할 때는 멀리까지 올라갔다는 느낌이 올 리 없지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의식할 수 있는 깨어있는 상태라면, 자신의 의식을 지구의 어느 부분에라도 투사할 수 있습니다. 불시에 친구들을 방문할 수도 있지요. 물론 현실의 지평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신의 표현대로라면, 지구를 떠나는 거지요. ‘유체이탈’이 시작된다고 느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요청해 보십시오. 꿈속에서 유체이탈을 경험하든 깨어있는 상태에서 경험하든, 기억에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염원을 하십시오. 자신의 육체를 돌아보고 여행을 떠나는 유체이탈의 경험을 할 때는, 특히 현실 차원을 벗어나 여행할 때는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경험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표면의식에서만 모를 뿐입니다. 하지만 꿈을 꾸고 있을 때는 이를 지시할 수도 있고, 꿈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 모험들에 대해 알고 싶다.”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꿈 상태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꿈속에서 꿈을 의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 나면 마치 치유를 받은 듯 마음이 매우 편안해집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여행을 하면서 다른 차원의 현실에서 온 형제자매와 사귈 때, 위대한 지혜와 기쁨의 문을 두드릴 때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합니까? 벗이여, 그로 인한 혜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겁니다. 요청하십시오. 그러면 당신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애쓰지는 마세요. 요청하고 나서는 아무 기대 없이 받아들이세요. 이미 말씀 드렸듯이, 기대는 가능성들을 차단해버립니다. 실현의 마당을 축소 시켜 버립니다.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육체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나요? 그런 위험은 없나요?









위험 같은 것은 없습니다.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당신들은 안전한 우주에 살고 있다고, 어느 것도 당신을 해칠 수 없으며, 당신은 결코 죽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당신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의 어느 곳을 여행하든 당신은 안전합니다. 당신 자신의 신성 안에서 당신은 안전합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아프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어찌하여 정상 궤도를 이탈하게 되나요?



아마도 우리의 생각이겠죠?









사랑하는 이여, 생각 때문이 아닙니다. 감정의 불편함 때문입니다. 신념체계의 반영이기도 하지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 자기 주변 환경에 대한 신념 말입니다. 당신이 안전한 우주에 살고 있지 않다고 믿으면, 그땐 우주의 모든 것이 당신의 그런 믿음에 맞춰 재배열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자신을 희생자라고 믿으면 당신은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인류는, 자신들의 몸이 아픈 것은 자신들이 고통을 반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삶을 부조리한 것으로 믿으면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러워 하고,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믿으면 삶은 그러한 믿음을 당신에게 반영합니다. 삶은 그러한 상황을 창조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뭔가 결여된 인간으로 판단하도록 유도합니다. 삶 자체를 모순으로 가득 찬 것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삶 속에서 고통이란 이겨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넘어설 수 없는 벽 하나를 만들어 낸 것이죠. 누구나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겁니다.









불가항력을 느끼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를 격리시킵니다. 슬픔에 대한 두려움은 언젠가 당신에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을 멀리하게 만드는 겁니다. 불가항력의 벽을 만들어 그런 느낌을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런 벽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스스로가 만든 분리의 장벽 때문에 두려움과 감각을 꼭꼭 가두어두려 하고, 감정 따위는 병에 담아 코르크 마개로 막아두려 하지만, 그렇게 담겨 있을 리 없습니다. 당신이란 존재는 감정을 품고 있는 생각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표출되지 않으면 몸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하라고 촉구하고자 불편함을 초래합니다. 그리하여 불운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되는 겁니다.









당신 시대의 가장 큰 질병인 AIDS를 예로 들겠습니다. 자기 스스로 이 병을 창조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아무도 질병에 걸릴 수는 없습니다. 병이 그런 식으로 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몸이 약해지면 지구를 떠돌던 아주 작은 물질이 사람들의 몸에 들어오는데, 이 더럽고 작은 바이러스에게 공격당한다는 것이 당신들의 보편적인 믿음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희생자가 아닙니다. 당신이 창조한 겁니다. 그런 상황을 창조한 것도 당신이고, 거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감정을 표출하는 것도 당신입니다.









당신네 사회에서는 동성연애자를 굉장한 흠집을 가진 사람들처럼 받아들이는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 안에는 여성적인 면과 남성적인 면이 나란히 짝하여 들어있고 그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그것이 당신들의 감정적 진실입니다. 자신들의 몸에 화학물질을 주사하는 사람들 또한 이 끔찍한 바이러스에 의해 쉽게 공격 받는다고들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죄의식에 대해여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과 기쁨이 없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질병이 오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지요. 에이즈는 이 행성의 정부들 중 하나가 영혼을 말살 시킬 목적으로 창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정부의 대리인으로 하여금 배포하게 한 것이지요. 그것이 가져다 준 결과를 보세요.









유년기의 질병으로 분류해 놓은 것도 있지요. 이 질병을 막는답시고 모두가 예방접속을 하려고 분주히 뛰어 다닙니다. 의학계라는 것도 있고요. 임신한 여자들에게 한 달에 한번씩 신체검사를 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현명한 처사라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병을 찾기 위해 검사한다고요?









자신의 현실은 자신이 창조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감정을 품은 당신의 생각이 물질을 창조하고 물리적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말입니다. 그때는 여자들이 매달 병을 알아보려고 신체검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현명치 못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겠죠. 세상에 만연한 질병에 대항하기 위한 예방접속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격려하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일뿐입니다.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당신들도 아시다시피, 집단의 현실, 집단의식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약을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건 나름대로 효과가 있는 인류의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더욱 더 조화를 이루고, 현실과 더욱 더 편안한 관계를 이루고,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 창조하는지 보다 잘 이해하게 되면 될수록, 점점 더 약이 필요 없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약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약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벗이여, 이 점에 대해서는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약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현실과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지적했을 뿐입니다. 약 또한 유효한 것이며, 신성의 표현입니다. 신성의 표현이 아니라면 여기 존재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당신의 몸이 불편하다면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으십시오. 몸의 질병 뒤에 도사리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가를. 그런 다음 그 감정을 껴안으십시오. 실제로는 육체적 질병이 되겠지요. 병이란 단지 가르침을 위해 거기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껴안음으로써 당신은 변화를 창조하게 됩니다.









다른 행성 사람들은 어떤가요? 우리 지구인들처럼 분리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말씀드리죠. 물론 다른 행성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기술적으로는 진보했습니다만, 영적으로는 그다지 진보하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깨달음이 없으면 분리가 있기 마련이지요.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도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 행성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들이니까요. 오늘날엔 기술적인 진보에 대해 관심이 높은데, 기술이 발달하면 많은 변화가 몰려오게 됩니다.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이 시대의 특징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걸 크리스탈 테크놀로지라고 부르는데, 그 힘, 그 연료는 바로 생각입니다. 크리스탈 테크놀로지는 엄청난 증폭 능력을 자랑합니다.







창조의 힘엔 두 가지가 있는데, 이 행성의 현실들뿐 아니라 모든 행성의 현실에 두루 적용됩니다. 하나는 두려움이고요, 또 하나는 사랑이지요. 영성의 눈뜸이 없이 기술적으로만 눈뜨게 되면 두려움이 뒤따르게 됩니다. 기술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그 두려움은 수백만 배로 확대되어 결국은 황폐와 파멸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을 품은 생각으로 기술을 발휘하면 증폭되는 것은 바로 사랑이지요.









인류가 생각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는, 자신이 신성의 표현임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는, 그리하여 우주가 어떻게 운영되는가를 이해하게 될 때까지는 기술은 오히려 여러분의 행성을 황폐하게 만드는데 쓰여질 것입니다. 하지만 벗이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들은 이미 선택했으니까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진실로 이 멋진 꿈이 결실을 맺도록 여러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이 위대한 기술을 이루도록, 이해와 조화와 깨달음에 이르도록, 그리하여 인류가 소위 영혼들의 위대한 모임에 합류하도록 도와주려는 것입니다. 당신네 행성이 올 곳은 자리를 찾아 바로 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노예처럼 지배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자연 속에 묻혀 살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런 일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아픕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런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류가 이해의 차원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를 원치 않는 사람들의 저항 또한 자라나는 겁니다. 여기에 걸려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저항하고 또 저항하면서 공포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옳습니다. 벗이여, 변화를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껴안는 것입니다. 사랑의 표현이 아닌 것은 모두 두려움의 표현임을 진정으로 아는 것입니다.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은, 실은 그들에게 힘이 없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세상의 부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재산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면서 영적인 풍요로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신을 노예로 부리려는 자들은 자신들이 노예가 될까 봐 두려운 겁니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을 껴안읍시다. 변화가 창조되는 것은 그러한 껴안음 속에서입니다.









그들이 나를 노예로 만들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내가 그들을 노예로 부리려 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노예가 될까 봐 두렵다면, 벗이여, 당신이 두려워하는 그 상태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우주에는 심판관이 없습니다. 당신이 두려움으로 품은 생각을 내든, 사랑으로 품은 생각을 내든, 우주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그것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슨 일을 하던 다 괜찮고,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슬퍼할 것도 없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당신이 무엇이 어떻게 창조되는가를 이해하게 되면 소위 관조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살피는 거지요. 그러면 행성의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분투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보일 겁니다. 욕망 충족을 위해서라면 그들에게는 노예화이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이 생각을 내면, 당신은 정확히 그 생각 그 감정이 품고 있는 바를 자기 자신에게 끌어당기게 됩니다. 당신은 바로 진동 주파수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것이 당신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위대한 것입니다. 당신은 진동 주파수이고, 감정을 품은 생각도 진동 주파수입니다. 당신이 안전한 우주 안에 살고 있고, 당신이 곧 군주이며,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당신은 자신의 존재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배우는 방식입니다.









당신은 안전한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당신 자신이라는 것, 다양한 우주의 가장 큰 힘은 사랑이라는 것, 당신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알려진 것이든 아니든 모든 현실은 전체성의 표현이라는 것, 이 모든 것을 참되게 이해하게 될 때, 당신은 세상의 빛이 되어 당신들 모두가 바라는 변화를 창조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기쁨을 바라는 만큼, 평화와 고요를 바라는 만큼, 당신의 아름다운 행성 위에 낙원을 창조하기를 바라는 만큼, 당신의 현실도 그만큼 달라집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파괴될 수 없습니다. 파괴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가슴 깊이 이해하여야 합니다. 당신은 신성하며, 당신의 행성도 신성하며,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진실로 제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사랑하는 이여,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십시오. 자기 자신의 모든 면을 신성의 표현으로 알고 받아들이십시오. 모든 것이 당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잘못된 것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신성의 표현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런 깨달음 가운데 존재하기만 하면 됩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됨에 따라, 당신은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주인정신이요, 참다운 자유의 정신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빛으로 가는 길이요,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의 귀향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시간은 충분합니다. 사랑과 기쁨 가운데로 나아가십시오.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존재하십시오. 그리고 아침에 거울을 바라볼 때면, 두 눈을 들여다보며 말하십시오. “사랑하는 이여, 진실로 당신은 신성의 표현입니다.” 라고. 진실로 그러합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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