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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삶이라는 교향악, 프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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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애랑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121.♡.112.135), 작성일 09-01-13 20:35, 조회 3,77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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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삶이라는 교향악









오늘 밤은 소위 비법을 밝히는 밤이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당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어떤 식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잠시 얘기할까 합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정말 간단하지요.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 건, 3차원의 현실에서 매순간마다 당신들이 만든 창조물의 진동 속에 휩쓸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스스로 창조한 이 3차원의 현실은 너무나도 흥미롭습니다. 생동감이 넘치지요. 아시다시피, 당신들은 당신들의 세포차원에서 이러한 진동과 창조성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 있듯이, 당신들은 매순간마다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물리적 신체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이토록 생동감 넘치는 삶에, 당신 자신들의 드라마에 너무 사로잡혀 있습니다. 당신들이 만들고 있는 그 만화경 같은 영화에서 당신들은 모든 것입니다. 당신들은 모든 장면을 디자인합니다. 당신들은 각 부분을 담당합니다. 물론 훌륭한 연기자이기도 합니다. 당신들은 그것을 너무 멋지게 만들어 놓고는 그것이 단지 영화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겁니다. 거기에 휘말려 들어간 나머지 대개는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말씀 드렸듯이, 당신들은 이러한 창조 양식 속에서 당신들이 갖고 있는 힘을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에 따라 생각을 내보내면 그것이 창조됩니다. 자, 이제 비법의 한 부분에 도달했습니다. 당신들은 이 현실과 그 너머에 있는 모든 것의 집단 공명 속으로 들어설 수 있는 능력을 내면에 갖추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 안의 집단 공명, 모든 세포의 집단 공명, 보이지 않는 현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존재의 모든 집단 공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당신들은 그러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의아해 합니다. 삶이라 불리는 이 캔버스 위에 진정 그리고 싶어 하는 것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그림인데도, 어째서 그렇지 못한가? 당신들의 삶에서 조화롭지 못한 모든 것은, 모든 상황 속에 진주가 숨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거기 존재합니다. 진주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저 알기만 하면 과연 어떠할지를 보여주기 위해, 거기 부조화의 상황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 당신들은 자신들이 창조하고 있는 부조화에 대해 의아해하기만 합니다. 판단 없이 받아들이면, 허용하기만 하면, 연꽃 속의 진주는 당신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생각을, 소망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제한하지 않고 내보내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 위해, 모든 가능성들이 스스로를 정렬합니다. 이것을 절대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믿어버리면, 자격이 없다고 믿으면, 당신의 문화나 당신의 가족을 인류의 집단 공명 구조 속에 제한 시켜 믿게 되면, 당신은 거침없는 창조성 자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어떤 식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면, 당신은 이미 그것을 제한시켜 버린 것입니다. 모든 가능성이 당신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당신은 그토록 강력하므로, 창조성을 허용하지 않는 의심이나 기대, 신념 구조에 의해 방해 받지 않고 생각을 내보내게 되면, 우주가 스스로를 재정렬하여 당신에게 화답해 줄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토록 간단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들이 알든 모르든, 그것들은 소위 과학적 사실입니다. 그 모든 것은 수학 방정식처럼 조금도 어김이 없습니다. 조화를 원한다면, 의식이 확장되기를 원한다면, 바깥에서 맴돌면서 소위 ‘큰 거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건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모든 면에서 당신은 ‘안 되는 것들’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안 되는 것은 매듭이 아니니 아무리 매듭을 지으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들은 부조화, 흥분, 스릴에 가득 찬 삶이라는 드라마에 너무 골똘한 나머지, 삶이 그 같은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배우기 위해 대단한 드라마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드라마 자체가 알고 있는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과거라는 족쇄에 매여 혹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매여, 당신 자신의 힘을 자아 바깥에다 주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들 자신은 하나의 교향곡입니다. 당신들이 창조하는 것은 경이로운 음악입니다. 당신들은 지휘자입니다. 당신들은 작곡자로서 교향곡을 창조합니다. 우리는 단지 그 아름다운 음악에 매료되길 권할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들 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벗들이여, 당신들은 서정시인입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쓸 수가 있습니다. 당신들의 현실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적인 연습이 아니라는 걸 당신들 내면에서 알아야 합니다.









당신들의 지성이나 에고는 당신들의 가슴, 당신들의 직관에 도움을 주기 위해 거기 존재하는 겁니다. 지성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면 당신들은 또 다시 가능성을 차단하게 되고, 가능성을 축소시키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행위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소망을 품은 생각을 내어보세요. 벗들이여, 그것을 우주로 던져보세요. 기쁨 속에서 소망으로 품은 생각을 하는 순간, 그건 이미 존재한다는 걸 아십시오. 바로 그 찰나에 당신은 그걸 창조한 겁니다. 그땐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허용하세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남은 인생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거나 누워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위 낙오자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의 의향을, 그것이 이미 거기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의향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걸 소위 물리적인 확신이라 하지요. 당신의 지성이, 당신의 앎, 당신의 직관, 당신의 가슴에 도움을 주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에서입니다. 당신은 생각을 내보내면서 이미 그것이 이루어진 것임을 아는 가운데, 실제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정도 비법이면 당신들에게도 아주 간단하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인생 여정에 대해 미리 내다볼 필요는 없습니다. 앞날을 미리 내다 본다면 당신은 마음속에다 구체적으로 그걸 쓰게 되고, 어떠한 창조성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이걸 아시는지요? 당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우주의 메시지라는 것을! 당신의 물리적 현실 속에서 무엇이 당신에게 공명을 일으키고 있는지, 당신이 무엇을 해야 조화로운지를 알려주는 메시지들이라는 것을.





 



조화로운 삶, 그건 지성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소위 직관으로 사는 것입니다. 매순간이 일어나도록 허용하는 겁니다. 당신의 가슴에 공명하는 것이죠. 당신이 내일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내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해도, 모든 것이 마땅히 있어야 될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당신은 이미 절대적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경이롭고도 안전한 우주에 살고 있으며, 어떠한 것도 당신을 해칠 수 없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바른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모두 자기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알기 위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신성의 표현임을 진실로 아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분리된 건 없음을 아는 것이죠. 하지만 당신 자신의 영혼이 조금도 흠 없이 완전하다는 믿음이 왜 이렇게 없는 겁니까? 진실로 잘못된 길이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당신의 머리를 제외하곤 어디에도 심판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우주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든, 우주는 놀랍도록 그것을 허용하는 가운데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판단하는 것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모든 인류가 다 그렇습니다.







프타아, 당신은 어떤 식으로 가슴의 깨달음에 접근하십니까?







단지 허용하는 가운데 있는 것이죠. 당신은 무엇을 하느라고 몹시 바쁘지만, 가슴의 깨달음이란 하는 게 아니라 그저 허용하는 겁니다. 자신을 명상의 상태로 데려가, 내면의 그 고요한 장소에서, 그저 허용을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할 일이라곤 그것이 전부입니다. 대단한 의식이나 절차는 필요 없습니다. 가슴에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으로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이여, 분리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쪼개고 나누어진 당신의 그 모든 부품들은 판단 속에만 있습니다. 가슴, 마음, 잠재의식, 초의식, 영혼, 신체, 집단 공명 같은 것들은 당신의 판단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모두 분리되어 있는 부품들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허둥지둥 달려가느라고 바쁘죠. 당신네들의 백화점에서처럼 말이죠. 이걸 사려면 저쪽으로 가야만 하죠.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완벽하게 가만히 앉아서 그 모든 부분들 속에 동시에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내면에 있는 그 고요한 장소에서 입니다. 그것은 변함없는 상태로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꽃이 피어나는 걸 상상할 수 있습니다. 꽃의 모든 부분들이 부드러운 햇살에 감싸이고, 그 햇살은 개화를 재촉하죠. 모든 세포들이 살아 움직입니다. 깨어나는 것이죠. 꽃잎은 하나의 부분이지만, 꽃은 하나의 전체로서 진실로 신의 표현이라고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의 신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근원, 바로 그와 같은 겁니다. 모든 게 당신을 거기 존재합니다.



 



저는 플로리다 상공에서 날고 있다가 레이더 스크린에서 사라진 비행선에 대해 읽은 바 있습니다. 대형 여객기가 사라졌다가 10분 후에 다시 나타났다는 겁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어찌된 겁니까?









이런 경우에는 순간적으로 비행기가 휘어진 시간대로 들어간 것입니다. 비행기 안의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시간이 휘어지는 현상이죠. 시간이라는 것은 매우 탄력적입니다. 매우 유연하죠. 외계인들의 우주선의 기술은 여러 차원 안에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당신네의 기술로는 이상해 보이겠지만 우주선 바깥의 현실에서는 우주선 자체가 특정 차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일단 우주선 안으로 들어서면 외부에서 인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방식으로 이 3차원 현실이란 것이 얼마나 탄력적인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거나 잠들 무렵이면 때로는 시간이 아주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도 나는 여기 없고 다른 어떤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요.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의식은 시간과 공간을 지나 여행을 합니다. 육체가 또 다른 현실로 옮겨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할 때마다 시공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전에도 말했듯이 꿈에서도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의식을 지닌 채로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의식 상태에서 당신의 몸을 떠나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으며 당신이 없어진 동안에도 육체는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들의 영혼 에너지는 당신들의 물리적 신체에 묶여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신들 모두 그 무엇보다도 위대합니다. 무엇보다도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강력합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듯이 인격체를 지닌 자아만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괜찮고,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며, 어떤 것에 대해서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면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 어른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을 해주어야 하지요?







벗이여,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우선 이런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우린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여, 우린 그저 모든 것이 존재할 뿐이고, 우주 법칙에는 판단이 없다고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슬픔에 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소위 아동 학대라든지, 기아, 질병에 인한 슬픔 말입니다. 인간에 의해 사랑 받고 있는 동물들에게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요. 자신들이 학대 받고 있을 때, 의지할만한 사람도 없고 자신들의 상처나 고뇌에 대해 말할 수 없을 때 동물들도 슬픔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관련된 모든 생명체의 가슴속에 엄청난 동정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이여, 어린아이든, 애완동물이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든, 당신이 감정적으로 너무 밀착되는 상황에 빠지게 되면, 감정에 몰입된 나머지 소위 공동창조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감정적 상태, 분노, 고뇌, 판단 안에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단 한 번 의 삶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수천 번에 수천 번의 삶이 존재합니다. 이건 매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지적으로 내가 말하는 내용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간단하지만 가슴의 깨달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그리 간단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차례 말씀 드렸지만 당신은 지금껏 존재했던 모든 인간의 모든 면을 갖추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모든 것이었습니다. 살해자이기도 했고, 피살자이기도 했습니다. 어린아이이기도 했고, 아동 학대자이기도 했습니다. 전쟁광이기도 했었고, 평화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아동 학대, 살인, 고문, 강간과 같이 감정적인 사건이나 상황에 관련된 사람은 자기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 같은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조차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여, 그 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어린 아이를 무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정말이지 강력합니다. 상황 상황마다, 특히 아직 신념을 쌓아 올리지 못한 아이들도 영혼 차원에선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분명하게 압니다.









아이에게 먹일 음식이 없어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아이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아야만 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당신네 행성의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창조한 그런 존재들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동 창조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이여, 전쟁 중인데도 그 지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또 어떻습니까? 왜 거기에서 태어나기로 선택한 것일까요? 그것은 모두 경험을 위해서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 같은 일들이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경험을 위해서, 믿음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스스로 환생한 어린아이들도 있습니다. 동정심을 가르치기 위해서, 판단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껴안음을 가르치기 위해, 의식의 확장과 수용을 가르치기 위해 말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지적으로는 이해합니다만, 지금껏 보고 들은 바로는 현재의 인류에게 있어 모든 것을 괜찮다고 믿고 넘어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력한 동물들이나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이 같은 일들을 보고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일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있지요. 사랑하는 이여, 요청되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당신의 바깥에 있다고 판단한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의 거울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의 모든 면을 받아들일 때, 판단과 하나가 되어서 화내는 것도 괜찮게 여기고, 분노와 고뇌로 눈물 흘리는 것도 괜찮게 여기고, 당신들 모두가 상처 받은 가슴으로 죽음도 괜찮게 여기게 될 때, 그 때 진실로 변화를 창조하게 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상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상, 항상, 당신 자신입니다. 항상, 항상, 당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도 우연이나 사고가 아니라는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벗이여, 사고란 없으며, 우연의 일치도 없습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껴안기 위해, 받아들이기 위해, 영혼차원에서 나온다는 걸 아는 가운데 수용하라고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의무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고통을 덜어주는 데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벗이여. 하지만 고통을 덜어주는 걸 의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동정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겁니다. 그건 의무가 아니지요. 그걸 의무로서 한다면, 하지 않는 게 더 낫습니다. 가슴속 기쁨으로 한다면,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와 한다면, 그건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보내는 겁니다. 하지만 상처 받은 가슴들도 당신 자신의 반영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이여, 우리도 당혹감과 부당함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부당하다고 인식할 때 그것은 오직 받아들여지기 위해 거기 있으며, 보다 큰 구조에서 볼 때는 모든 것이 신에게로 가는 길이요, 전체성으로 가는 길이요, 분리가 없는 세계로 가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들 모두가 흘리는 눈물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인 경우가 많지만 실은 자기 자신의 고통을 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도록 나 자신을 상기 시키곤 합니다. 그런 순간에는 느낌 속에 존재하면서, 이리(태양신경총을 가리키며)로 돌아오곤 합니다. 지난주에는 하나임의 상태를 의식하려고 마음을 집중시켰는데, 느낌이 변하더군요. 느낌이 여기(태양신경총)로부터 오는 것 같지가 않고 제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지극히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죠.







그렇군요. 당신이 자신을 현재로,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올 수 있다면, 과거도 없고,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자동적으로 느낌 속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열게 되면, 분리가 없는 경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내면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러한 느낌, 그러한 감정의 흐름은 마치 나선형의 소용돌이 같아서 세포차원까지 공명하게 하여 하나임의 느낌, 전체성의 느낌을 만들어 줍니다. 진정한 행복감이지요.







그렇다면 그런 것들 역시 제 느낌인가요? 내부에 아무런 얽매임도 느껴지지 않는 데도요?









벗이여, 사실 느낌이란 오직 에너지일 뿐이며, 중립적입니다. 좋은 느낌이나 나쁜 느낌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그저 존재할 뿐이며, 에너지일 뿐입니다. 어떻다는 판단 없이 허용의 순간 속에 있게 되면, 에너지 센터가 열리면서 에너지가 태양신경총에서 가슴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변형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변형이란, 느낌이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상태 자체입니다. 고통을 창조하는 건 오직 판단일 뿐이며, 고통이란 저항일 뿐입니다. 고통이란 에너지의 이동을 허용하지 않는 겁니다. 고통은 느낌이 아닙니다. 느낌에 저항하는 거지요.









저는 과거에 천체 하모니라 할 만한 걸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의 심포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전체의 하모니와 관련하여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상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저는 음악으로 나타난 하모니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제가 지금껏 들어왔던 지상의 음악과는 견줄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다중 우주의 거대분자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당신의 물리적 신체 안에는 지구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원소가 다 있습니다. 당신의 영혼 에너지 안에는 은하계의 모든 원소가 다 있습니다. 전체의 하모니라는 건 사실 전체의 에너지이고, 음악으로도 들을 수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색깔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빛의 주파수가 맞으면 소리나 색깔로 이해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존재의 상태에 들어서게 되면, 당신은 의식적으로 전체의 하모니를 들을 수도 있고, 무심결에 통하게 되기도 합니다. 전체의 교향악이 연주되는 느낌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소우주이자 거대분자이므로 당신 내면에는 그러한 하모니에 대한 앎이 있고, 그러한 하모니가 실존하고 있습니다. 그건 경이로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당신 내면에 그러한 전체의 하모니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거기 대하여 판단하지 말라고 제안하고 싶군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세요. 당신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습니다. 이건 한갓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상황입니다. 의기소침해질 때면,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여러분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렇게 일상의 나날을 견디고 있는 거지요.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이지 마법 같은 세계가 이미 여러분의 내면에 갖추어져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는 원주민들의 영혼에 특별한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다소 부정적 상황에 의해 압도 되어 왔던 원주민들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조화를 이룰까요?









무엇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존재’하면서 자기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과 조화를 이루고, 분리된 것은 없음을 이해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원주민들의 고난과 시련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당사자들 모두에게 커다란 가르침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은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위대한 경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의식적 차원에서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유럽인들의 고대 종족에 대한 관심과 흥미, 거의 잊혀져 버린 의식적 기억에 대한 앎은 원주민들뿐 아니라, 과거에 원주민이었던 모든 사람들의 영혼에 기억의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앎에 있어서 매우 위대했던 한 종족이 자신들의 문화를 잃어버렸지만,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것을 얻었으니까요. 이 시대에는 당신네 행성 사람들 전체의 생애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영혼에너지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프리카 대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실로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를 구하려고 급하게 달려갈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 남을 존중하는 것도 힘겨울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또 다시 당신에게도 돌아옵니다.







암 환자들에 대해 묻겠습니다. 그들의 고통이 느낌에 대한 저항이라면, 어떻게 해야 그러한 고통을 덜어줄 수 있나요?







벗이여, 당신이 치유의 에너지를 주는 겁니다. 하지만 사실,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뿐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각자가 자기 현실을 창조했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의 창조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마음이 되기까지는, 자신이 창조한 것과 하나가 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맨 처음 불편함을 창조했던 판단과 하나가 되는 것. 그러므로 환자에게는 모두가 다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도 희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겁니다. 당신은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병이란 길 잃은 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어떠한 신체적 질병도 감정의 반영으로서만 창조된다는 점을 일깨워 주십시오. 책임감만이 당신들 모두를 피해의식으로부터 구해줍니다.









당신이 해준 말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 중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어떤 식으로 그들의 현실을 창조하든 판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가슴속 그 동정심으로부터 사랑과 치유의 에너지를 보내게 되지만, 치료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치료되지 않는 것이 근본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제 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결정한다면, 그렇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특권입니다. 자신의 영화를 쓰는 것은 자신이니까요.









지난주에 세상에서 멸종되어 가는 동식물에 관해 말씀 하시면서 그들은 사라져 가는 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물론이지요. 당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테니까요. 없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멸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직 당신의 시간과 공간의 틀 속에서만 그렇습니다. 지구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여,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현실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닙니다. 유연하지요. 수많은 지구가 있고 수많은 현실이 있습니다. 당신이 영원히 사라졌다고 믿는 많은 생명체들이 사실은 다른 지구뿐 아니라 다른 행성에서 매우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네 동물과 식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신들만 관심을 가지고 있은 게 아닙니다. 더 이상 진화 패턴 안에 머무를 필요가 없는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다른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 사라진 겁니다.









여러분의 질문에는 여러분이 인식하는 만큼의 다차원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답 역시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대답이 여러 가지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신념체계라는 상자의 틀 안에서 분명하고 단순한 말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모든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시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류를 혼란케 하는 말들은 이미 충분히 주어졌으니까요.









당신들은 소위 ‘행위’에 너무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엇이 되는 것에 너무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이미, 당신들이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존재 상태 그대로입니다. 당신들은 이미 그러한 존재임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당신들 각자는 진실로 당신들 우주의 중심 태양이며, 당신들 바깥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의 반영이요, 거울일 뿐입니다. 당신들이 무엇을 하든, 어떠한 스토리를 선택하든, 당신들은 결국 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합치는 상황을 낳게 될 것입니다. 전체가 되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곳 지구에서의 우리들 사명이, 영적인 것을 물질로 변환시키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시는지요?







벗이여, 당신은 이미 물질로 환생한 영혼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위대한 영적 존재로서 환생을 선택했고, 3차원의 현실을 경험하기로 선택했습니다.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이미 도달해 있는 곳으로 빨리 가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당신은 기억을 잊은 것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을 외롭고 가엾은 인격체로 생각하면서 영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경험을 위해 이걸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변형에 대해 말할 때, 당신은 이미 되어 있은 상태로 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고뇌를 엑스터시로, 분리를 비분리로 변형시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아주 빠르고 쉽지요. 당신이 창조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판단과 하나가 되십시오. 고통스런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그런 상황에 대한 판단과 하나가 되십시오. 고통이란 누적되는 것이며, 판단에 의해 야기되는 저항일 뿐이라는 점을 알도록 하십시오. 고통을 받아들이고 무엇이든 가치가 있음을 알도록 하세요. 그렇게 되면 급속히 에너지 센터가 열리면서 ‘하나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허용해야지요.









하지만 ‘함’이 없이 어떻게 그걸 허용하지요?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세요.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신성의 표현임을 알도록 하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미 그곳에 있다는 거군요. 그러니까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어떤 사람을 돕기 위해 서둘러 간다고 해도, 실제로는 우리가 그의 경험을 빼앗고 있는 건가요?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벗이여, 우리는 돕지 말라거나, 가슴의 지시를 따르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동정심이나 동료를 돕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시나리오는 창조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뿐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당신이 그 일과 주파수를 맞추게 되면, 당신은 거기에서 당신 자신의 가르침을 배우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경시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압니다. 도움이나 동정심, 놀라운 치유의 에너지를 주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지요. 단지 도움을 줄 때, 판단 속에서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되어야만 한다고 기대하지 마라는 겁니다. 그것뿐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이 점도 말씀 드려야겠군요. 당신이 다른 누군가의 경험을 변화시키려고 애쓴다 해도, 당신은 결국 자기 자신의 배움을 위한 기회를 창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파트너와 상황을 공동 창조할 때 모두가 동등한 파트너라면 카르마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는 카르마를 이런 식으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다른 기회에 그것을 바로잡아야만 하는 것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주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아무것도 심판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잘못된 행동에 대해 처벌을 받는다는 이 카르마는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늘 의아하게 생각했던 게 바로 그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대답해 보시죠.









카르마란 없는 것이죠.







완벽한 대답입니다. 최고에요. 카르마라 불리는 것은 낡은 종교에서 나온 하나의 사상 구조물일 뿐입니다. 사상 구조물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잘 알고 계시겠지요. 당신들의 보다 새로운 종교들 중 하나인 기독교의 사상 구조는 이렇게 말하죠. 잘못을 저지르면 내생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말이죠. 기독교인들이 환생을 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빠르고도 쉬운 방법이죠? 단 한 방이면 끝납니다. 올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지옥으로 간다?









자, 이 점을 말씀드리죠.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이 물리적 현실에서 떠나게 될 때, 바로 정확히 그러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옥 말입니다. 어떤 식으로 상상했던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때 그들은 따분해질 것이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처벌이라는 방식의 카르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환생한 모든 것들은 사실은 동시에 존재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기절초풍할 일이지요. 그건 기술적으로 불가합니다. 이 시간 틀 밖에서는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어느 한 생애에서 껴안지 않은 경험은 그것이 무엇이든, 다른 생애에서 껴안아야 합니다. 그러니 그건 처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으니까요. 조화 안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둘 중 하나의 상태일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무엇이든지 사랑이 아니면 두려움이라는 우주 법칙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 판단 없이 그저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이번 생애의 과거나 미래뿐 아니라 모든 생애의 과거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리된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변형을 경험하게 되면 바로 그 같은 일이 당신에게 일어날 겁니다.









이 지역의 동식물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 해변에 고래들이 떼 지어 올라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고래들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겁니까?









얼마나 여러 가지의 대답을 원하는 겁니까? 사랑하는 이여, 물리적 현실이 있고, 고래류 나름대로의 현실이 있습니다. 고래나 돌고래는 인간과 같은 영혼에너지로 되어 있습니다. 고래는 놀라울 정도로 다차원적인 존재로서, 천체의 하모니를 듣기도 하고 연주할 수도 있는, 당신네 행성의 역사가입니다. 그들은 별의 사람들과 실제로 의사소통을 하고 항상 그렇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인류에게 배울 수 있는 놀라운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북극에서 살았던 탁월한 고래류가 있었는데, 그 종족들은 모두 함께 조화를 이루며 지냈습니다. 그러한 고래들 중 한 마리는 높은 경지에 올라 전세계에 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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