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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뿌린대로 거두리라 - 프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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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랑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121.♡.112.135), 작성일 09-01-14 16:28, 조회 3,9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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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뿌린 대로 거두리라









당신들이 순간에서 순간으로 현실을 창조하는 방식은 분명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당신들의 큰 영혼, 보다 위대한 당신들의 속사람은 당신들의 겉사람이 하는 일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우주에 자신을 표현하면서 당신들 속사람의 가장 큰 기쁨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순간에 존재하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각자 모두는 나날의 삶 속에서, 약동하는 3차원의 이 현실 속에서, 흥분을 가져다주는 일들을 창조합니다. 여러분은 그 흥분이 위대한 기쁨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결코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처럼 간단한 겁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멋진 여행을 할 작정이라고요? 그렇다면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떨쳐버리고 육체의 여행길에서 놀라운 모험을 창조하게 될 것임을 진정으로 알도록 하세요. 영혼 에너지의 모험 못지않게 의식의 모험도 하게 될 것입니다. 모험을 향해, 배움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하지만 사실은 여행하는 동안, 당신이 위대한 앎을 나눠주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정말 멋진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 쓰지 마세요.



여러분 모두 모험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 모두가 위대한 배움을 불러들이고 있고, 최근 당신네 현실에서는 주기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매순간마다 당신들은 신성의 표현의 정수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시기에 기쁨 속에서, 웃음 속에서, 사랑 속에서, 모험을 창출하도록 하세요. 당신네 행성에 만연한 두려움과 파멸 속으로 빠져들지 마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앞으로 다가 올 시기에 당신들은 5만 년 역사 가운데 최절정의 시나리오를 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다가올 변화, 여러분 행성에 일어날 변화를 증거하고, 그 변화에 기여하기 위해 지금 이렇게 육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창조한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임박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가슴 속에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지구 위에 사는 인간으로서 의식을 지닌 채로 그 변화를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 말입니다. 그래서 지구 여신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들은 풀잎 위에 맺혀진 이슬일 뿐입니다. 당신들이 지구라고 부르는 여신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는 것은 왜일까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의식적이고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크게 절망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그 모든 게 저쪽에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출 수가 없단 말야.”













 



사랑하는 여러분,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당신들의 지성과 인격체로는 전체성이라는 신의 정수를 끌어안을 수가 없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끌어안을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당신의 가슴뿐입니다. 당신의 가슴은 신성한 본질 속으로, 모든 시간 연속체와 모든 은하계의 앎 속으로, 이미 일어났다고 인식되는 모든 일과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한 앎 속으로 성큼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당신의 가슴이지, 당신의 지성이 아닙니다. 당신의 의식적 이해력도 아니고요.









직관을 허용하고, 받아들임을 허용하는, 당신이라는 존재의 여성적인 면을 만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믿음의 도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적인 마음으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품어 안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뜻하는 바대로 창조할 수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건 당신만의 주권이지요. 그건 어떤 것을 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거지요. 우리는 그러한 존재 상태에 대해, 그 모든 것의 영광에 대해, 당신들을 위해 한 장의 그림을 그려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면, 현실이라는 하나의 차원에 국한되어 버립니다. 당신들의 영혼에너지, 당신들의 가슴은 현실의 모든 차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림을 미리 보여준다고 해도, 이른바 무한성의 극히 일부분만을 나타낼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생애, 이 시점에서, 여러분은 항상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얘기할 때도, 이미 말했듯이 당신들이 본래의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부족 상태에 있게 되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당신들은 모든 것을 제한하게 되고, 분리를 창조하게 됩니다. 매사에 근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매순간의 선택은 결국 사랑이냐 두려움이냐 입니다. 충분치 않다는 두려움, 사랑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무가치하다는 두려움, 죽을 것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사랑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항상, 항상 선택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당신들의 생애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모든 병, 모든 불편함은 두려움이라는 선택, 판단이라는 선택에서 옵니다.









사랑을 선택할 때 판단하지 않음을 선택할 때, 당신들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존재함을 알게 되고, 그 존재함 속에 신성의 표현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당신들의 우주, 그 다중 우주로 나아가 사랑을 선택하고 수용 안에 있게 되면, 당신들은 현실이라는 캔버스에 한 번의 색칠을 하는 셈입니다. 두려움을 누르고, 사랑을 선택할 때마다, 필사적으로 하려는 욕망을 누르고 사랑을 선택할 때마다, 당신들은 이 현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변형에 대해 얘기했지만 많은 분들에게 그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변형이란 당신들 가슴속에서 느끼는 모든 고뇌, 번민, 고통의 변화를 뜻합니다. 수천, 수만 번의 생애에서 겪은 고통, 상처 받은 가슴으로 죽을 것만 같은 심정이 신성한 엑스터시로, 화합으로, 하나됨으로 변하는 겁니다. 당신들은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았고, 분리된 적도 없습니다. 그것을 알도록 하십시오.













 



당신들은 진정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당신들은 은하계의 무수한 행성에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과도 결코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당신네 행성의 어떤 생명체와도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당신네 태양과 달로부터도 따로 떨어져본 적이 없고, 나뭇잎, 풀잎, 그리고 당신네 정원의 활짝 핀 꽃들과도 따로 떨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잊어버린 것뿐이지요. 그것뿐입니다. 고통과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 속에서 문을 닫아버린 거지요. 당신들 자신이 이 3차원 현실의 흥분과 떨림을 지닌 장미향내 나는 신임을 잊어버린 겁니다. 당신들의 가슴속에 저항이라는 고통을 창조한 건, 이러한 현실에 대한 당신들의 판단, 자기 자신에 대한 당신들의 판단입니다. 그리하여 그 모두가 하나임을 잊어버린 것이지요. 그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이야말로 우주적 진리입니다. 정말로 그토록 간단한 겁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겁니다. 당신이 어떠한 사람이든,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떠한 행동을 하든, 모두 신성의 표현임을 알도록 하세요. 신성한 근원은 모든 은하계와 모든 다중 우주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하찮다고 생각하고, 나쁘고 사랑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생애를 통한 그 같은 자기 비하는 어린 시절부터 쌓이기 시작하여 결국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괜찮고말고요. 당신과 신성한 엑스터시 사이에 가로놓인 건 오직 판단일 뿐입니다. 수많은 생애를 통해 알게 된 고통, 번민, 고뇌를 창조한 건 오직 판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통은 느낌이 아닙니다. 그것은 느낌을 느끼지 않으려는 저항일 뿐입니다. 당신은 느끼는 걸 너무나도 두려워하니까요. 상상력과 감정으로부터 창조된 신성한 불꽃, 그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의식으로부터, 영혼의 하나됨으로부터 물질의 형태로 자신을 창조해 놓고는 다시 근원과 합치려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 자신을 판단하지 마세요. 당신 자신은 경이롭습니다. 당신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이 3차원의 현실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근원으로서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수용하세요. 고통이 가져다주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결국은 하나임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창조했음을 알도록 하세요.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고통을 창조했습니다. 당신은 고통을 가져다주는 모든 혼란스러운 상황을 창조해 놓고는 ‘아!’ 하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 고통 안에는 아무 판단 없이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한 따뜻한 사랑만을 요구하는 연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머랄드 같은 당신 가슴 안에서, 하나임 안에서, 신성과 더불어 꽃피우고 드러날 것입니다. 그 모든 걸 창조한 건 바로 당신입니다. 저 밖에서 당신에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이라는 존재의 장엄함으로, 당신은 계속해서 껴안아야 할 상황을 창조해낼 것입니다.









본래의 자기 자신과 통하는 길은 판단하지 않는 겁니다. 그저 존재하고, 그 존재함 속에서 모든 걸 수용한다면, 변화를 창조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변형, 고뇌에서 엑스터시로의 변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은 인류의 기적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당신 몸 안의 모든 세포를 변화시킵니다. 그것은 이번 생애의 과거와 미래를 변화시키고, 당신의 인식 구조상 이미 살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생애와 미래라고 믿고 있는 모든 생애를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변화는 수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집니다. 수용 속에서 당신들은 인류의 황금시대를 창조하게 됩니다. 5만년 만에 나타난 황금시대입니다.









순간순간마다 당신이 선택하는 겁니다. 사랑이냐, 두려움이냐?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움을 밀쳐내서는 안 됩니다. 없애 버리려고 애써서도 안 됩니다. 실은 변화시키려고 애써도 안 되며, 두려움조차도, 당신 자신에 대한 판단조차도 유효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 역시 신성의 표현이며, 변화를 창조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당신의 빛 속으로 거두어들이는 겁니다. 그것도 괜찮은 것임을 아는 것이죠. 그건 마치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이를 어루만지며 당신은 말하죠. “괜찮단다,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그 모든  것을 껴안으세요. 당신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판단, 다른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판단을 껴안으세요. 그것은 당신 자신에 대해 내면에서 느끼고 있는 것들의 반영일 뿐입니다. 이렇게 수용함으로써 당신은 모든 판단과 하나가 됩니다. 당신은 수용함으로써 변화를 창조하는 것이지, 변화를 향한 필사적인 노력이나, 당신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김으로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밟아 온 모든 발걸음,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모든 반응, 두렵고 사소하고 비열한 것으로 판단한 모든 것, 질투와 소유욕으로 인한 모든 반응들, 다른 누군가에 대한 모든 반응들은 사실은 당신 자신에 대한 반응임을 아는 것, 즉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임을 앎으로써 변화를 창조하게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건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한쪽 발 앞에 또 다른 한 걸음을 용감하게 내딛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고 해서 어린아이를 때리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껴안고는 이렇게 말하죠. “잘했다, 얘야, 또 한 걸음을 내딛었구나!” 그런 식으로 당신은 자기 자신과 함께 할 수 있으며, 그러한 껴안음과 수용 안에서 내면의 에너지 센터가 열리게 되며, 고통스러웠던 것이 복부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정수리로 옮겨져 불꽃을 창출하고, 그 불꽃은 은하계 전체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본래의 진정한 ‘나’입니다. 그것이 신입니다. 통합과 비분리의 경지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변형은 기적입니다. 책임을 지세요. 불편함이라는 모든 창조물, 고뇌라는 창조물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축복하세요. 그것을 축복하세요.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는 가운데, 당신은 자신이 신임을 진정으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수용하는 가운데, 그저 아무 판단도 하지 말고, 어떤 것을 변화시키려고 애쓰지도 않으면 당신은 무지개와 별빛을 창조하게 됩니다. 그렇게 존재하세요.









최근 성직에 뜻을 품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성직을 갖게 되는 것은 원천적으로 거부당해 왔지요. 사람들을 갈라놓는 그러한 종교적 장벽이 낮아지도록 저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여성들을 지지하고 싶습니다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거부되는 게 필요한 일인가요? 종교에서 남녀간의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 여성의 영향력을 진정 높이는 일이 될까요? 아니면 남성 세력에 대한 반발 정도에 지나지 않을까요?









벗이여, 성이 여성이라는 것은, 각 개인의 내면에 있은 남성 에너지나 여성 에너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평등을 확립하기 위해 법을 만든 것은, 여성 에너지가 높아진 것을 반영하는 것뿐입니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영역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전에 말씀 드렸듯이, 소위 여성 운동이라는 것은 사실은 지나친 것입니다. 여성 운동을 한다면서 남성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당신네 종교는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종파가 무엇이든, 여전히 당신네 역사의 반영이라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종교는 수천 년 동안 인류를 노예로 만들고 구속해왔습니다. 분리시키고, 무가치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죄가 많다고, 원죄가 있으므로 회개를 해야 한다며 두려움을 조장해왔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변화되어야 할 시기입니다. 우주는 어떠한 심판도 없다는 것을 인류가 이해해야 할 시간입니다. 당신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제외한다면, 누구도 판단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심판하지 않습니다.









구름 위에서 인류를 심판하는 신이나, 천사계급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주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습니다. 그저 존재할 뿐이며, 존재하는 것은 모두 유효합니다. 모두 신성의 표현이니까요. 모두 사랑으로 껴안아야 할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낡은 제도의 틀 안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낙타가 사막으로 도망친 후에 낙타 우리의 문을 고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는 관습에 묶여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선 정해진 미래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순간마다, 가슴에서 느끼는 매순간마다, 사랑과 화합의 울타리 안에서, 다음 순간을 창조하는 겁니다.



 







 



가서 가슴이 노래 부르는 일을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자발성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의 기쁨과 경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종교라는 제도에 묶어버리면, 과거라는 쇠사슬에 얽매여 노예가 되고 맙니다. 자신만의 자유로운 지배력, 자신만의 통치권을 부정하게 되지요.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결정한다면, 사실은 그것도 유효합니다. 항상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는 개념을 납득하기 힘이 듭니다. 긴 안목에서, 영원의 차원에서, 혹은 영원한 지금이라는 차원에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우리의 존재 영역에서 그런 겁니까?









벗이여, 영원한 지금이 있을 뿐입니다.









만약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누군가를 살해 한다면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왜냐하면 그 안에는 사랑이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벗이여, 인류는 항상 사랑 아니면 두려움을 선택해 왔습니다. 만약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취했다면, 살인으로 얻은 그것을 갖지 않은 채 존재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고, 두려움은 곧 판단에서 오는 겁니다. 사랑이 아닌 것은 모두 두려움의 표현이고, 그것 역시 유효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것도 신성의 표현이니까요. 다중 우주의 근원으로부터 창조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실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판단하지 말고 이해하도록 해보세요. 여러분 각자는 모든 것이었고 모든 표현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가슴속에는 종종 살의가 있습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런 생각을 만들어 내는 두려움을 껴안도록 하세요. 어째서 이토록 많은 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 자신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야생마처럼 날뛰게 내버려두면 남아날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법을 만든 겁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들 내면에는 신성의 빛, 그리스도의 빛, 근원의 빛도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모든 것, 모든 사람과 연결시켜주는 빛의 필라멘트지요. 두려움으로 인해 당신은 그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건 이번 생애만의 두려움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고통은 누적되는 겁니다. 그것은 당신 안에 프로그램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시간이 무르익었습니다. 인류의 의식 안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원자와 분자의 살아있는 의식 안에서, 여러분이 무생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동물과 식물, 지구 여신의 의식 안에서, 시간이 무르익었습니다. 그 변화가 전 우주를 통해 울려 퍼집니다.









이 행성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이 시공 연속체 밖에서는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당신네 행성의 수천 가지 표현들, 인류의 수 천 수만 가지 표현들, 그 모든 것들이 변화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존재의 매순간마다 써 내려가고 있는 이 멋진 미래를 향해, 지금이라는 그 존재함 속에서 내가 곧 신임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을 향해.









안녕하세요, 프타아. 제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요. 아, 제 질문이 뭔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군요.









벗이여, 그건 당신의 가슴속에선 실은 질문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모든 말은 이미 전에 들은 것이라고요. 당신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말들은 당신 안에 있는 앎에 불을 붙이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사실 덧칠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하면 생각, 혹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나요?









무엇보다도, 어떠한 것도 억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억제하는 것은 남성 에너지이니까요. 나아가서 정복하라, 이거죠? 반항적인 생각들을 억누르고, 소위 에고를 떨쳐버리고, 지성을 장악하고, 마음을 영원히 잠재워라. 자, 모두 좋습니다. 하지만 그건 균형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는’ 것은 남성적이지요. 그런 반항적인 생각들을 허용해도 좋습니다. 그저 허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여성 에너지입니다.









수용하고, 허락하고, 양육하는 에너지, 그러한 허용 속에서 고요함을 창조하고, 공간을 창조하여 그 안에서 존재하는 거지요. 당신들 모두에게 있는 그 에너지는 나선형과 비슷합니다. 당신을 다중 우주와 연결시켜주는 나선형 에너지입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해주는 말조차도 그 나선형의 가장자리에서 벌어지는 유희 정도로 상상해도 좋습니다. 말, 생각, 지적 이해, 이해라는 제한된 상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실은 그 나선형의 경계선상에서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빛의 필라멘트와 같습니다. 그 안에 창조의 공간이 있습니다. 수용의 공간, 무한성의 공간, 억제하려고 애써서는 그 존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저 허용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우리는 실은 우리의 생각인 거지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그 이상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상이지요. 당신이 생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은 지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념체계나 인격체로서의 나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그 모든 것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생각은 다 괜찮은 겁니까?









물론이지요, 벗이여. 무슨 생각이든 다 괜찮습니다. 그저 허용하고, 완전한 영혼 에너지가 그 안에 담겨 있음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허용의 경지로 들어서는 것, 단일성, 하나됨의 경지로 들어서는 것을 가슴은 열렬히 바라고 있습니다. 억제하려고 할 때마다 자발적인 창조성이 차단된다는 것을 알도록 하세요.









두려움과 관련하여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병이 두려움과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병이란 두려움이고,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부족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수용적이고, 제대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제 몸에 어떤 현상이 생기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내게 뭔가를 더 보여주기 위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는, 내가 놓치고 있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봅니다. 뒤로 물러앉아 수용의 자세가 되어 느끼는 거죠. 저는 두려움이 어디 있는지, 잠재의식 안에서 그 두려움을 창조한 게 무엇인지를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뚜렷하지가 않고, 혼란스럽기 일쑤입니다.









그렇군요, 사랑하는 이여. 오늘날의 인류는 잠재의식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의식 아래 숨어 있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괴물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한때, 당신네 기준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때, 인류는 그 모든 두려움을 종교에, 신에 대한 믿음에 맡길 수 있었습니다. 종교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구속하든, 종교에 항상 모든 걸 맡겨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변화의 시기에, 사람들은 저 위에서 그들을 심판하기에 바쁜, 신이라 불리는 어떤 노인이 존재하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심리학이 등장하여, 당신의 잠재의식 안에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은 분노의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동전의 또 다른 면이지요. 당신의 잠재의식은 적이 아닙니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당신의 삶 속에 창조하는 괴물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작용하는 게 아닙니다. 몸 안의 병은 감정적 불편함을 반영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제가 그걸 인정한다고 해도 그걸 어떤 식으로 다루어야 하지요?









변화를 원한다면, 질병을 껴안아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당신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판단 없이, 그 질병을 사랑해야 합니다. 질병 안에는 보석이 담겨있으니까요. 당신이 그것을 창조했으니 당신이 그걸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을 두려워하면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 속에 있으면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네. 이해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제대로 알기가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제 삶의 여러 영역을 살펴봅니다. 제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영역들을요. 다시 말해 어느 정도까지는 제 자신을 들여다보아야만 합니다. 제가 다이어트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따위를요.









벗이여, 당신이 무엇을 먹고 마시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당신의 현실은 느낌으로 창조됩니다. 감정이 느낌을 창조하지요. 그렇죠?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 지칠 대로 지친 느낌입니다. 모든 것을 잘하고 있는데도 웬일인지 항상 피곤하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딘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나 봅니다. 비타민이 부족한 걸까요? 아니면, 제게 뭔가를 제대로 못하고 있은 건가요?









벗이여, 비타민이 부족하다면, 사실은 당신이 뭔가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 입안에 무엇을 입 안에 집어넣느냐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무엇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지를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 되는군요.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기쁨 속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요.









더 많이 웃고, 더 기쁨 속에 있게 되면, 당신 몸은 더욱 더 건강해지고, 놀라울 정도로 약동하게 될 겁니다.









그래요, 그저 조화를 이루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조화를 이루면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이 당신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얼마나 어렵게 느껴질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듣지요. 당신이 매순간마다 당신의 현실을 창조하며, 할 일이라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또 할 일이라곤 기쁨 속에 사는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신은 “저는 최선을 다하는 데요” 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걸 잘 압니다.













 



몸에 질병이 나타나면, 당신은 블랙홀에 빠져 맨 처음 질병을 창조한 판단을 판단합니다. 당신은 완벽한 육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완벽한 조화 속에 있게 되면 육체가 건강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완벽하고 생동감 넘치는 건강 상태에 있지 못하면 자신이 너무 어리석고 조화롭지 못하여 이러한 질병을 창조해 버렸다고 판단합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어리석다는 걸 알게 될 꺼야” 하고 걱정합니다. 자, 당신이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자신을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가혹하게, 다른 사람이 당신을 판단할까봐 항상 염려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될 수 있는 한, 즐겁게 살고 있는 데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그냥 인정하고 계속 밀고 나가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벗이여, 당신은 그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런 질병을 창조한 감정적 고통도 인정해야 합니다. 당신이 그것을 창조했다고 책임감 있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판단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껴안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신성의 표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균형 속으로 들어서게 하는 기회들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하지 않음’으로써 변화를 창조합니다. 껴안음으로써 변화를 창조합니다. 질병을 다시 한 번 어린 아이인 것처럼 받아들여보세요. 껴안고, 쓰다듬어 주며 자장가를 불러주세요. 강제로 쫓아내지 마세요. 억누르지 말고 사랑으로 품어 빛 속으로 인도하세요.









타이밍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최근 제 마음은 타이밍 쪽으로 쏠리고 있어요. 제가 어떤 일을 언제 하면 좋을지, 혹은 다른 사람은 언제 하면 좋을지에 관해서요.









음, 타이밍이라고요? 당신의 가슴이 노래 부르는 때가 최적의 시기이지요.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타이밍에 관해서라면, 사랑하는 이여, 그것은 그들의 일입니다. 나날의 삶을 영위해 나가면서 타이밍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가슴속엔 완벽한 시계가 있으니까요. 일단 무엇을 했으면, 잊어버리세요. 가슴이 노래 부르는 일을 했다면, 그건 모든 가능성이 일어나도록 허용한 것이며, 당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쪽으로 일이 펼쳐질 것임을 아는 가운데 한 겁니다.









자, 제일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의심’입니다. 전에 말씀 드렸듯이, 당신의 현실을 창조하는 자는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이 우주에다 생각을 내보내면, 전 우주가 당신이 우주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믿고 있는 바에 따라 재정렬을 하게 됩니다. 당신이 곧 강력한 창조자요,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창조할 수 있노라고 내가 말하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죠. “아이고 제발 효과가 있기를!” 당신이 그걸 망쳐 놓은 겁니다.









당신이 긴박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고 금요일까지 어떤 것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나타나지 않았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죠.“내가 그토록 강력한 존재라면, 어째서 금요일까지 그 일이 생기지 않는 거지?”









네, 그래요.









그게 바로 필요라는 겁니다. 신은 필요한 게 없어요. 그는 오직 바라고 그 바람을 통해 창조하는 것이지, 필요 때문에 하지는 않습니다. 필요는 절망, 두려움이라는 동전의 또 다른 면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잘 포장되어 있기는 하지만요. 일단 놓아버리고 가능성을 허용하게 되면 당신이 원하던 바를 창조하게 됩니다.









더 이상 그 일에 투자를 하지 않을 때도요?









물론이지요. 전에 말씀 드렸듯이, 물리적 현실로 나타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언제,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면서 당신이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압력을 가하는 것, 그게 바로 기대라는 거지요. 우주가 자신의 방식으로 그 일을 허용하도록 허용하며 그땐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고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가장 창조적인 부분은, 당신에게 가장 이로운 게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전체의식이 그것을 안다고요? 그렇다면 저는 물러나고, 저의 보다 위대한 의식이 대신 맡으면 되겠네요. 그렇게 하면 남성적인 정신 에너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고요.









머리를 떼어내어 겨드랑이 아래에 집어넣으세요.









프타아, 당신이 여기 이 방에 있지 않을 때는 무엇이 당신의 현실입니까?









사랑하는 이여, 수없이 많은 현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현실에 우리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어떤 일을 하면서, 그것이 결국 배움을 위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판단에 꼼짝없이 갇혀서 이제는 계속해서 배움을 반복해야 한다는 게 두렵습니다.









하지만 판단을 완전히 통과할 때까지는 계속해서 그것을 창조해야만 합니다.









이제는 그것을 아는데, 그렇다면 이제 그만 굴리고 치워버릴 수는 없을까요?









물론이지요.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 그토록 가혹한 심판관이고, 또 그 판단에 다시 판단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뉴 에이지의 불행입니다. 망상의 복수, 뉴 에이지들의 저주. 당신이 판단 혹은 판단에 대한 판단과 하나 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알고 한 바탕 크게 웃는 겁니다. 그 웃음 속에서 모든 것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느낌이 어떻게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당신이라는 존재는 사실 느낌입니다. 느낌이 무엇입니까? 그건 에너지이지요. 진동하는 주파수입니다.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 진동하는 주파수. 그리고 그 주파수는 당신의 느낌에 따라 변합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당신은 자기가 무얼 믿고 있는지 정말로 모를 때가 많습니다. 믿고 있는 바가 곧 그 개인의 인격적 자아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에, 믿음이 곧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은 알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인류는 사실 느낌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항하는 데에 매우 익숙하고, 느낌에 대한 두려움에 매우 익숙합니다. 그것은 전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당신들 대부분이 느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 합니다. 당신이 느낌을 수용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 그걸 판단했든, 사실은 그것이 중성적 에너지임을 알게 됩니다. 느낌이 받아들여질 때, 그건 온몸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기쁨을 창조하고, 화합을 창조하고, 비분리를 창조합니다.









당신이 어떻다고 판단하면 저항을 창조하고, 그것이 곧 고통입니다. 고통은 느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 많이 말했고, 당신은 그 내용을 읽어서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충분히 납득했을 겁니다. 사랑하는 이여, 변형이란 느낌을 판단 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태양신경총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중성적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것이 가슴으로 옮겨지고, 정수리로 옮겨가서 엑스터시를 창조하는 겁니다.









당신이 뒤로 물러앉아 그 모든 것을 진정으로 웃어넘길 수 있으면, 절망이나 불행도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것은 변화됩니다. 복부로부터 웃음이 피어오르고 그렇게 변화를 창조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필사적으로 깨달음을 찾아 헤매지요. 그건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절박한 소망입니다. 당신들이 이미 고향에 와있음을 인정한다면, 이 의식세계, 이 현실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의 면모를 변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아무런 기대도, 의심도 없이 그런 소망을 갖게 되면, 그 순간 이미 당신은 고향에 와 있음을 진실로 알게 될 것입니다.









나의 소망은 당신들 모두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보석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리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며, 그러한 충만한 존재 상태에 있는 당신들에게 진실로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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