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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이 바로 관조자이다 -마하라지 어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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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 마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87.57), 작성일 08-06-19 20:23, 조회 4,637, 댓글 0

본문


선생님께서는 제가 세가지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면, 초인간적인 면 그리고 비인간적인 면의 세가지를 말합니다.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것을 말하며



        참되고 순수한 "나"라는 것을 지칭합니다.

        초인간적인 나는 그러한 비인간적인 면이



        의식속에 "내가있음"으로서 반영된 것이고,



        인간적인 것이라는 것은 육체적이고 생사가 걸린 과정 전체를 말합니다.



        지금 이순간이라는 좁은 한계 속에서



        초인간은 시공 속의 이 나를 알고 있는데



        한 인간만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업이라고 하는



        사슬에 꿰어진 일련의 많은 인간들을 자각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축적된 체험의 잔여물일 뿐만 아니라



        관조자이며 기억의 자리이고 연결고리입니다.



        나면서부터 다음에 또 태어날 때까지 생활의 골격을 만들고



        모양을 이루는 것이 바로 사람의 성격입니다.

        보편적인 것은 모두 이름과 형태를 넘어서 있고



        의식과 성격을 넘어선 것으로서 순수하여 자의식이 없는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이 선생님의 견해를 말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마하라지:



        마음의 차원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고



        마음 너머의 차원에서는 단 한마디도 맞지않아.







 



 



질문자:



        저는 인간이라는 것이 정신적인 구조물이라는 것,



        즉 기억과 습관들의 뭉치를 총칭하는 개념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이 나타나는 장소, 즉



        관조의 중심이라는 것도 역시 정신적인 것입니까?

마하라지:



        인간이라 하는 것은 토대를 필요로 해.



        즉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육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야.



        마치 색깔이 나타나려면 바탕이 필요하듯이 말이지.



        색깔은 많지만 눈은 하나가 아닌가.

        자성이라는 것은 색깔 속에 있으면서



        또 눈 속에도 있고, 그렇지만 단순하고, 단일하고,



        나뉘지 못하고, 현현되지 않으면



        지각할 수도 없는 그러한 빛과 비슷한 것이야.



        알려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각할 수는 없고



        대상화되지는 못하며 나눌 수도 없는 것이지.

        그건 물질도 정신도 아니며



        객관적인 것도 주관적이지도 않으며,



        물질의 뿌리이고 의식의 원천이며 단순히 살고 죽는 것을 넘어서 있다네.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며 모든 것을 배제하는 생명으로서



        그 속에서는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라네.





 



 



 



질문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절대자나 생명은 실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저희의 무지를 덮어 가리기 위한 이론에 불과한 것입니까?

마하라지:



        둘 다야. 마음에 대해서는 이론이고,



        그 자체로는 실재하는 것이며,



        거짓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는 면에서는 현실이지.



        빛이 존재함으로서 어둠이 사라지듯이 절대는 상상을 파괴해 버려.



        모든 지식이 일종의 무지라는 사실을 보는 것은



        그 자체가 진실의 움직임의 하나야.

        관조자는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유기체,



        즉 하나의 육체라고 하는 기초가 있을 때에 나타나는 것이야.



        그 속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자각으로 반영되어 있어.



        순수한 자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앎으로 돼.

        그리고 자아(self) 가 있을 때에 자각은 관조자가 되는 거야.



        관조자에게 자아가 없으면 관조라는 것도 없어.



        이것은 간단한 문제야.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이 끼어들기 때문이지.



        영원히 분리된 인간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이 명백해져.

        자각과 마음, 그리고 물질이라는 것은



        움직일 수 있고 없다는 두 가지 측면과, 관성과 에너지



        그리고 조화라는 세가지 측면으로 드러난 하나의 진리일 뿐이야.







 



 



질문자:



        의식과 자각은 어느 쪽이 먼지 생기는 것입니까?

마하라지:



        자각이 대상을 지닐 적에 의식으로 되는 거네.



        대상은 언제나 변하는 것이고 의식 속에는 움직임이 있는데



        자각은 그 자체로는 움직임도 없고 시간도 없어.



        여기 그리고 지금일 뿐이야.







 



 



질문자:



        지금 동파키스탄에는 심각한 유혈분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러한 사건들이 선생님께는 어떻게 보이며,



        또 선생님께서는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마하라지:



        순수한 의식 속에서는 그 어떤 일도 생기지 않아.







 



질문자:



        그처럼 형이상학적인 고공에서 내려오십시오.



        당장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너밖에는 그 고통을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이 무슨 소용있습니까?



        모든 일은 환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고통에 모욕을 더하는 것입니다.

        동파키스탄의 뱅갈 사람들은 하나의 사실이고



        또 그들의 고통 역시 사실입니다.



        정말이지 그런 일들을 분석을 통해 없는 일로 매도해 버리지 마십시오.



        선생님도 신문을 읽으시고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시지 않습니까?

        난 모르겠다하실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일들에 대한 선생님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마하라지:



        태도가 없어.



        아무일도 생기고 있지 않은걸.







 



 



질문자:



        언젠가 선생님의 눈 앞에서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살육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되면 선생님께서"아무일도 없어" 하면서



        쳐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시지 않겠습니까?

마하라지:



        난 쳐다보고만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한 게 아니야.



        아마 나도 난투극 속으로 뛰어들어서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내게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아.



        빌딩이 하나 무너진다고 하자구.



        그러면 없어지는 방도 있을 거고 멀쩡한 방도 있을 거란 말이지.

        그렇지만 공간에 대해서 파괴된다거나 멀쩡하다는 표현을 할 수 있나?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 구조물이나 그 속에 있는 사람일 뿐이야.



        공간 그 자체에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아.



        이와 비슷하게 형태가 무너지거나 이름이 닦여 나간다고 해도



        생명 그 자체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아.

        보석 세공사가 오래된 장신구를 녹여서 새것으로 만든다고 하자구.



        좋은 작품이 그렇지 못한 것과 함께 생겨나지.



        그렇다고 신경 쓰느냐. 그렇지도 않아.



        왜냐하면 금이 손해날 게 없으니깐 말이야.







 



 



질문자:



        제가 분개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는 방식입니다.

마하라지:



        죽음이라는 건 자연스런 것이며 죽는 방식은 사람이 만든 것이야.



        분리는 두려움과 공격을 낳고, 이것은 다시 폭력을 낳지.



        사람이 만든 분리를 없애 버리면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이런 무시무시한 광경은 반드시 없어져 버릴걸세.

        그러나 실재를 말하면 죽인다는 일도 죽는 일도 없으며



        실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산적이 없기 때문이야.



        마음을 바로 잡으면 모든 일이 바로 잡혀.



        세계가 하나이고 인류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행동도 그에 따라가지.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고 사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



        자신의 내면에 질서가 없으면 세상에도 질서가 있을 수 없지.



        진리라는 입장에서 보면 아무일도 생기지 않아.

        마음이라는 스크린 위로 운명은 끊임없이



        이전의 상들을 투영하고 그리하면 환상이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를 취하지.



        그림이 왔다 가면 무지에 의해 빛은 차단 당하고 말아.



        빛은 보되 그림은 무시하도록 해.







 



 



질문자:



        사물을 보는 시각이 그렇게 냉담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죽고 죽임을 당하는데 그림을 운운 하시다니요.

마하라지:



        그럼 모든 수단을 써서 가서 죽어 보게나.



        만약 자네의 뜻이 진정 그러하다면 말일세.



        또 만약 가서 죽이는 것이 의무라고 느껴지면 가서 죽여보라구.



        그러나 그것이 악을 종식시키는 길은 아니야.



        악이라는 것은 병든 마음의 악취일 뿐이야.



        마음을 치료하고 나면 마음이 더 이상 왜곡하고 추한 그림을 그려내지 않아.







 



 



질문자:



        그 말씀을 이해는 하겠습니다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철저한 이상주의적 삶의 시각은 제게 깊은 혐오감을 줍니다.



        저는 제가 그런 깊은 꿈 속에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마하라지:



        오해가 생기는 것은 자신이 몸이라는 생각 때문이야.



        그 생각을 검토하여 그 뿌리깊은 모순을 보고서



        지금 현재 자네의 존재가 불꽃의 소나기와 비슷하며



        각각의 불꽃은 찰나에만 번뜩시며



        그 소나기 자체도 일이 분 정도 지속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해.



        시작이 곧 끝인 일에는 중간이 있을 수 없어.



        그것은 무시간적이야.



        그러나 시간없음이라는 것은 곧 지속을 말하는 것이지.







 



 



질문자:



        제가 살고 있는 세계가 참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참된 세계가 있고 그것에 대해 저는 왜곡된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한 왜곡은 제 몸과 마음 속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참된 세계는 없으며,



        제 마음 속의 꿈 속 세계만이 있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존재의 온갖 끔찍한 일들이



        제가 육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믿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자살을 해서라도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마하라지:



        상념에 관심을 두는 한,



        그것이 자네 자신의 생각이든 타인의 것이든



        언제나 어려울 수밖에 없어.



        그러나 자네가 모든 가르침, 모든 책 그



        리고 말로 된 모든 것을 무시하고



        깊이 자네 자신의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자신을 발견하면,



        오직 그것만이 자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모든 상황을 만족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해줄 거야.

        왜냐하면 그때에 비로소 어떤 상황에 대한



        자네의 생각이 지배당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예를 들어 자네가 어떤 매력적인 여성과 교제를 하고 있다고 치면



        그녀에 관한 상을 지니게 되면서 성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된다네.

        문제가 생기면 금욕이나 쾌락에 관해 책을 찾아보기 시작하지.



        만약 그 여자와 자네가 아기들이라면



        두 사람이 발가벗고 있어도 전혀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아.



        그런 것처럼 만약 자네들이 육신이라는 생각을 그만두게 되면



        사랑과 섹스에 관한 문제들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거야.

        한계적인 모든 의미가 없어지면,



        두려움도, 고통도 그리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도 ,



        그 모두가 멈춰버리게 된다네. 오직 자각만이 남지.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7-17 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