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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모든 추구는 불행이다 - 마하라지 어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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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 마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87.57), 작성일 08-06-19 22:32, 조회 4,416, 댓글 0

본문


이 글은  마하라지님의 어록이란 글 중에 뒤 부분에 있는 대화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글의 내용이 집약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올립니다. 





질문자:



        저는 영국에서 왔는데 마드라스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서 저의 아버님을 만날 것이고,



        우리는 자동차로 대륙을 넘어 런던까지 갈 것입니다.



        저는 심리학을 공부하려고 하지만,



        제가 학위를 얻으면 무엇을 해야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산업심리학이나 심리요법을 전공할지도 모릅니다.



        저의 아버님은 일반 개업의이신데, 저도 같은 길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 관심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의문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의문들에 대해 당신께서



        어떤 해답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마하라지:



        제가 그대의 의문들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적임자인지 모르겠군요.



        저는 사물과 사람들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습니다.



        저는 제가 있다는 것을 알 뿐인데,



        그 정도는 그대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등합니다.



 



 



 



질문자:



        물론 저는 제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릅니다.



마하라지: 



        '내가 있다'에서 그대가 '나'라고 여기는 것은 그대가 아닙니다.



          그대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자연적이고,



          그대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많은 탐구의 결과입니다.



          그대는 의식의 전체장을 무시하고 그것을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그대는 올바른 스승을 찾아야 하고,



          발견에 필요한 조건들을 창출해야 합니다.



          알반적으로 말해서, 외부적인 길과 내부적인 길의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어떤 사람과 함께 살면서,



          인도해 주고 형성해 주는 그의 감화력에 그대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거나,



          아니면, 내면의 인도르 구하여,



          내면의 빛이 그대를 이끄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나 그대의 개인적 욕망과 두려움을 도외시해야 합니다.



          (스승의 길에) 가까이 있는 것으로나 탐구에 의해,



          즉 수동적인 길이나 능동적인 길에 의해 그대는 배웁니다.



          그대의 스승에 의해 대표되는 생명과 사랑의 강이



          그대 자신을 운반해 주도록 하거나, 아니면 그대 내면에 있는



          별의 인도를 받으면서 그대 자신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나 그대는 움직여 나가지만, 성실해야 합니다.



          신뢰와 사랑을 받을 만한 어떤 사람을 발견하는 행운이 있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그들 대다수는 어려운 길,  지성과 이해, 분별과 무욕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길입니다.



 



 



 



질문자:



        저는 여기 온 것이 행운입니다.



        비록 내일 떠나기는 하지만,



        당신과 한번 나눈 대화가 저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마하라지:



        그렇습니다.



        일단 그대가 "나는 진리를 원한다"고 말하면,



        그대의 모든 삶은 그것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대의 모든 정신적, 신체적 습관들, 느낌과 감정, 욕망과



        두려움, 계획과 결정들이 가장 근본적인 변환을 겪게 될 것입니다.



 



 



 



질문자:



        제가 그 실재를 발견하겠다고 일단 결심했으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마하라지:



        그것은 그대의 기질에 달렸습니다.



        만일 그대가 성실하댜면,



        어떤 길을 선택해도 그대의 목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실성이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질문자:



        성실성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마하라지:



        그것은 새가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게 하고,



        고기가 자신이 태어난 산간개울로 돌아가게 귀소본능입니다.



        열매가 익으면 씨앗은 땅으로 돌아갑니다.



        성숙됨이 전부입니다.



 



 



 



질문자:



        그러면 무엇이 저를 성숙시키겠습니까?



        체험이 필요합니까?



마하라지:



        그대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체험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 오지 않았겠지요.



        더 이상 체험을 그러모을 필요는 없고, 오히려 체험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대가 어떠 노력을 하든, 어떤 방법을 따르든



        그것은 더 많은 체험을 산출할 뿐이고,



        그대를 넘어서게 해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책들은 그대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지만,



        그대인 그 사람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탐색에서 물질적인, 정신적인,



        혹은 영적인 어떤 이익을 얻기를 기대한다면, 핵심을 놓친 것입니다.



        진리는 어떤 이점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대에게 더 높은 어떤 지위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어떤 권력도 주지 않습니다.



        그대가 얻는 것은 진리와, 거짓으로부텨의 자유가 전부입니다.



 



 



 



질문자:



        분명히 진리는 우리에게 남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마하라지:



        (그런 생각이) 아무리 고귀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상상에 지나지 않지요! 



        진리 안에서는 그대가 남을 돕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대는 사람들을 고귀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으로 나누어, 분리하고,



        고귀한 사람들에게 비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요청합니다.



        그대가 분리하고, 그대가 평가하고, 그대가 판단하고 비난합니다.



        진리의 이름으로 진리를 파괴하는 것이지요.



        진리를 규정하려는 그대의 욕구 자체가 진리를 부정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언어 속에 담겨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행동 속에서 거짓을 부정하는 것으로써만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거짓을 거짓으로 보고(분별), 그것을 배척해야 합니다(무욕).



        거짓의 포기는 (그대를) 해방하며,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그것이 완성에의 길을 열어줍니다.



 



 



 



질문자:



        제가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은 언제 압니까?



마하라지:



        '이것이 참되다', '저것이 참되다'하는 관념이 일어나지 않을 때입니다.



        진리는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거짓을 거짓으로 보고 그것을 배척하는데 있습니다.



        마음이 거짓에 눈멀어 있을 때는 진리를 찾아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에서 거짓이 완전히 추방되어야 진리가 마음에 나타납니다.



 



 



 



질문자:



        그러나 무엇이 거짓입니까?



마하라지:



        분명히, 존재성이 없는 것은 거짓입니다.



 



 



 



질문자:



        존재성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거짓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마하라지:



        스스로, 모순되는 것은 존재성이 없습니다.



        아니면 일시적인 존재성만 있는 것인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시작과 끝이 있는 것에는 중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비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부여한 이름과 형상만 가지고 있지,



        아무 본체도 본질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질문자:



        만일 지나가는 모든 것이 존재성이 없다면, 우주도 존재성이 없습니다.



마하라지: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합니까?



          물론 우주는 존재성이 없습니다.



 



 



 



질문자:



        존재성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하라지:



        자신의 존재성을 (마음 따위에) 의존하지 않는 것,



        우주가 떠오를 때 같이 뜨지 않고,



        우주가 질 때 같이 지지 않는 것,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 어떤 증거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것에게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일순간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거짓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참이 거짓의 아버지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거짓은 시간과 공간 안에 한정되어 있고, 환경에 의해 산출됩니다.



 



 



 



질문자:



        거짓을 어떻게 제거하고 실재를 확보할 수 있습니까?



마하라지:



        어떤 목적으로 말입니까?



 



 



 



질문자:



        더 낫고 더 만족스러운 삶, 통합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마하라지:



        마음의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적이고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실재는 생각할 수 없으며,



        어떤 목적에 그것을 이바지 하게 할 수 없습니다.



        실재는 (오직) 그 자체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질문자: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제가 어떻게 원할 수 있습니까?



마하라지:



        원할 가치가 있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까?



        설사 있다 할지라도, 어떤 사물을 원하듯이 실재를 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실재를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폐기할 수는 있습니다.



        거짓의 폐기가 참에의 길을 열어줍니다.



 



 



 



질문자: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보입니까?



마하라지:



        자기잇속과 자기걱정이 거짓의 초점입니다.



        그대의 일상생활은 욕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진동합니다.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면, 마음이 어떻게 ㅡ 마치 강물이 바위들 사이에서



        거품을 일으키듯이  ㅡ 무수한 이름과 형상들을 취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행위의  이기적인 동기를 추적하고,



        그것이 해소될 때까지 그 동기를 유심히 바라보십시오.



 



 



 



질문자:



        사람이 살려면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마하라지:



        그대 자신을 위해서 돈을 벌 필요는 없지만,



        그래야 할지도 모르지요 ㅡ 처자식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계속 일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단순히 살아 있다는 것조차 하나의 희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기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추구적인 동기가 보이면 즉시 모두 내버리십시오.



        그러면 따로 진리를 탐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가 그대를 발견할 테니까요.



 



 



 



질문자:



        최소한의 필요물이란 것이 있습니다.



마하라지:



        그것은 그대가 잉태되었을 때부터 공급되지 않았습니까?



        자기걱정의 속박을 놓아버리고 본래의 그대가 되십시오.



        '행동하는 지성과 사랑'말입니다.



 



 



 



질문자:



      그러나 우리는 생존해야 합니다!



마하라지:



        생존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지요!



        진정한 그대는 무시간이며, 탄생과 죽음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육신은 필요한 기간만큼 생존하겠지요.



        육신이 오래 산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충만한 삶이 오래 사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질문자:



        어떤 것이 충만한 삶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저의 문화적 배경에 달려 있습니다.



마하라지:



        만일 그대가 실재를 추구한다면,



        그대 자신을 모든 배경, 모든 문화,



        모든 사고와 감정의 유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십시오.



        남자나 여자다. 심지어 인간이다 하는



        관념조차도 내버려야 합니다.



        생명의 바다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니 먼저 모든 자기 동일시를 내버리고,



        그대 자신을 이러이러한 사람, 아무개,



        이것이나  저것이다고 생각하기를 그만두십시오.



        모든 자기걱정을 내버리고 그대의 물질적이거나



        영적인 안녕을 걱정하지 말 것이며,



        거칠거나 미세한 모든 욕망을 내버리고



        어떤 종류의 성취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지금 여기에서 완전하며,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대가 멍청하고 무모해지거나,



        앞날을 내다볼 줄도 모르고 매사에 무관심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걱정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자신과 가족을 위한 의식주가 필요하겠지만,



        탐욕을 욕구로 착각하지 않는 한,



        그런 것들이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가 상상하는 대로의 사물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물들과 조화를 이루면 살아가십시오.



 



 



 



질문자:



        인간이 아니라면 저는 무엇입니까?



마하라지:



        그대로 하여금 자신이 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크기가 없는 의식의 한 점, 곧 의식하는 무無일 뿐입니다.



        그대 자신에 대해 그대가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있다'가 전부입니다.



        그대는 순수한 존재 ㅡ 자각 ㅡ 지복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모든 추구의 끝입니다.



        그대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찰나적으로, 상상적인 것을 상상적인 것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



        순수한 자각 안에 초연히 머무를 때,



        그대는 그 끝에 이릅니다.



        그것은 전혀 어렵지 않지만, 무집착이 필요합니다.



        거짓에 매달리기 때문에 참을 보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거짓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시간을 필요로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을 일단 이해하면,



        무시간이며 항상 지금 안에 있는 그 실재에 더 가까이 간 것입니다.



        시간 안에서의 영원성이란 



        시계의 움직임과 같은 단순한 반복일 뿐입니다.



        그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끝없이 흐르는, 하나의 텅 빈 영속성입니다.



        실재는  현재를 그토록 생기 있게 하고



        과거나 미래와는 너무나 다른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마음 안에 있을 뿐입니다.



        만일 어떤 것을 성취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거짓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재는 항상 그대와 함께 합니다.



        본래 그대인 그것이 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의 마음이 (대상을) 추구하느라고



        그대 자신의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만 하면 됩니다.



        그대가 어떤 것을 원할 때, '나에게 그것이 정말 필요한가?' 하고 자문해 보십시오.



        그리고 만약 그 답변이 '아니다'라면, 그것을 그냥 포기하십시오.



 



 



 



질문자:



        제가 행복해야 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을 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것이 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을 붙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마하라지:



        지금의 그대보다 그대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행복에 대한 모든 추구는 불행이며, 그보다 더한 불행으로 이끕니다.



        행복이란 이름에 값하는 유일한 행복은



        의식하는 존재의 자연적인 행복입니다.



 



 



 



질문자:



        그런 높은 자각의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마하라지:



        경험은 기억만을 뒤에 남기며,



        이미 무거운 짐을 더 보태줄 뿐입니다.



        그대에게는 더 이상의 경험이 필요 없습니다.



        이전에 경험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만약 경험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주위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슬픔에서 교훈을 배워 그대 자신의 슬픔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모든 경험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경험을 탐내지 마십시오.



        그대에게는 어떤 경험도 필요 없습니다.



 



 



 



질문자:



        당신 자신께서도 경험들을 겪어내지 않으십니까?



마하라지:



        제 주위에서 일들이 일어나지만, 저는 거기에 전혀 가담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제가 거기에 심정적으로 개입할 때만 하나의 경험이 됩니다.



        저는 완전한 어떤 상태에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를 개선하려 들지 않습니다.



        경험이 저에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질문자:



        우리는 지실이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합니다.



마하라지:



        사물을 다루려면 사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다루려면, 그대에게 통찰력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그대 자신을 다루는 데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본래의 그대, 곧 의식하는 존재가 되고,



        그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헤매지 마십시오.



 



 



 



질문자:



        대학교육은 무엇보다도 유용합니다.



마하라지:



        분명히 그렇지요.



        그것은 생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그대는 심리학도인데,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 그대에게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대가 심리학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삶은 행동 속에서 실재를 반영할 때만 삶이란 이름에 값합니다.



        어떤 대학도, 그대에게 죽음이 닥쳐왔을 때 "나는 잘 살았다,



        나는 다시는 살 필요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게끔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다시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죽습니다.



        너무나 많은 과오를 범했고, 너무나 많은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했으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고작 경험을 수집하여 자신의 기억을 풍부하게 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험은 실재의 부정입니다.



        이 실재는 감각적이지도 않고 개념적이지도 않습니다.



        즉, 몸의 것도 아니고 마음의 것도 아니지요.



          그 둘을 포함하면서 초월하기는 하지만.



 



 



 



질문자:



        그러나 경험은 무엇보다도 유용합니다.



        경험에 의해 우리는 불길에 데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마하라지:



        사물을 다루는 데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유용하다고 이미 그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말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차를 몰거나 돈을 버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에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을 비추는 빛이 되는 데는



        물질적인 지식이 도움이 안 되겠지요.



        그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그대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지식보다 훨씬 더 친숙하고 더 깊은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그대의 외부적인 삶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야경꾼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면적으로 그대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평안과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어떤 대학도 그대 자신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그것을 배우는 방법은 수행뿐입니다.



        바로 지금부터 그대 자신이 되기 시작하십시오.



        그대가 아닌 것을 모두 내버리고 계속 더 깊이 들어가십시오.



        우물을 파는 사람이 함수층에 도달할 때까지는 물이 아닌 것을 내버리듯이,



        그대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남지 않을 때까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내버려야 합니다.



        그런 뒤에 남아 있는 것은 마음이 가서 붙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한 인간도 아닙니다. 그대는 그냥 있습니다.



        시간, 공간과 외연外延을 같이 하면서도



        그 둘을 넘어선 자각의 한 점으로서,



        그 자체는 무원인인 궁극의 원인으로서,



        만약 그대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제 답변은  "특별히 어떤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있다."가 되겠지요.



 



 



 



질문자:



        만약 당신께서 특별히 어떤 것도 아니시라면, 보편자이셔야 합니다.



마하라지:



        보편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의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으로서라면?



        그대에게 접촉되는 어떤 것이든, 그것을 분리하지 않고,



        반대하지 않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세계다, 세계가 나다.



        나는 세계 안에서 내 집에 있다.



        세계가 내 집이다.



        모든 존재가 나의 존재이고. 모든 의식이 나의 의식이며



        모든 슬픔이 나의 슬픔이다."라고 참으로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보편적인 삶입니다.



        하지만 저의 진정한 존재는 그대의 진정한 존재 역시 그러하지만



        우주를 넘어서 있으며, 따라서 특수와 보편의 범주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스스로 일체를 갖추고 있고 독립적인, 있는 그대로의 것입니다.



 



 



 



질문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하라지:



        이런 문제에 대해 시간을 내서 숙고해 봐야 합니다.



        그대의 머리에서 낡은 틀을 지워버리되, 새로운 틍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대 자신을, 움직이는 것 이면의,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있는 부동자이자,



        일어나는 모든 일의 말없는 주시자로 깨달아야 합니다.



 



 



 



질문자:



        그것은 제가 활동적 삶에 대한 모든 관념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마하라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려갈 돈을 벌기도 하겠지요.



        이 모든 일은 사건들의 자연적인 흐름 안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운명은 성취되어야 하니까요.



        그대는 임무들이 닥쳐오는 대로 마주하면서



        아무런 저항 없이, 사소한 일에서나 큰일에서나



        주의 깊고, 철저하게, 그것을 겪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태도는 애정 어린 초연함,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엄청난 선의善意, 달라고 하지 않아도 부단히 주는 것이 되겠지요.



        결혼에 있어서는 그대가 남편도 아니고 아내고 아니며,



        그 둘 사이의 사랑입니다.



        또한 그대는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명료함이요 친절함입니다.



        그대에게는 그것이 막연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신비로운 것이 가장 실제적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대의 삶을 창조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그대의 의식은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하며,



        거기서 그대는 모든 것을 더 명료하게 그리고 더 큰 집중력으로 보게 됩니다.



        그대는 태어날 때 그것이 되었다가 죽을 때 사라질,



        (그대가 자기로 알던) 그 사람이 일시적이고 거짓된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대는 욕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관능적이고 감정적이며 지적인 그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발견하십시오.



        '나는 무엇인가?'하는 것이 모든 철학과 심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의문입니다.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십시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7-17 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