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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즐거움에 무관심해지라--마하라지 어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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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 마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87.57), 작성일 08-06-20 08:52, 조회 11,729, 댓글 2

본문


질문자:



        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데



        10년 정도 전부터 요가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마하라지:



        10년 정도 했으면 목표점이 꽤나 가까워 졌겠네요?







 



 



질문자:



        아마 조금은 가까워졌을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어려운 일 아닙니까?

마하라지:



        본성은 가까이 있고 거기에 이르는 길도 쉬워요.



        필요한 일이라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뿐이니까요.







 



 



질문자:



        하지만 전 수행이 매우 어렵다고 느낍니다.

마하라지:



        수행은 선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수행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행위는 그냥 발생하는 것이니 그냥 지켜보고만 있으세요.



        자기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어요?



        선생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예요.







 



 



질문자:



        존재감은 언제나 있습니다. 의심할 바가 없지요.



        하지만 종종 온갖 마음 속의 일들 , 즉 감정, 이미지, 온갖 생각들로 휩싸입니다.



        순수한 존재감은 이러한 것들에 의해 밀려나고 맙니다.

마하라지:



        마음에서 그런 불필요한 것들을 청소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을 쓰고 있어요?



        마음을 정화하는 선생의 방법은?







 



 



질문자:



        기본적으로 사람은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두려워하는 거지요.



        저는 마치 폭발 직전의 폭탄을 나르고 있는 사람 같은 느낌입니다.



        다시금 폭발을 저지할 수도 , 던져 버릴 수도 없습니다.



        저는 몹시 겁이 나서 미친 듯이 해결책을 구하는데 방법을 알 길이 없습니다.

        제게 있어선 해탈이라는 것이 폭탄을 없애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폭탄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고 그것이 어린 시절부터 있어 왔다는 사실만 압니다.

        저는 마치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는 놀란 아이 같은 느낌입니다.



        아이는 사랑을 갈구하는데, 얻어지지 않으니 두렵고 화가 납니다.



        때로는 저도 포함해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욕망이 강해서 언제나 두렵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공포에서 어떻게 하면 해방될 수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인도의 마음과 유럽의 마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도의 마음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유럽의 마음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근본이 사트바(조화) 적입니다.



        그러니 유럽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쉴 새없이 쫓아다니면서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더 많은 지식을 구하려 하지는 않으니까요.

마하라지:



        유럽인들의 이성적인 능력은



        너무나 대단해서 이성을 통해서 이성을 벗어날 지경입니다.



        유럽인들이 자기 주장을 잘하는 것은 논리에 의지하기 때문이에요.







 



 



질문자:



        하지만 생각하고 추론하는 것은 마음의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마음이 작용을 멈출 수 는 없으니 말입니다.

마하라지:



        습관적인 상태일지는 모르나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순 없겠지요.



        정상적인 상태라면 고통이 생길 수 없어요.



        나쁜 습관이라면 만성병을 낳기 쉽겠지만 말입니다.







 



 



질문자:



        만약 생각과 추론이 정상적인 마음 상태가 아니라면 어떻게 멈추어야 합니까?



        틀림없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을 텐데요.



        저는 저 자신에게 자주 말을 합니다.



        됐다. 이만 멈추자.



        이제 더 이상 같은 말을 되뇌일 필요가 없어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멈추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은 잠깐은 멈출 수 있지만



        오래 멈출 수가 없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소위 "영적인" 기도를 하거나 춤을 추고, 집중훈련, 명상을 하고



        삼매를 구하기도 하며 공덕을 쌓습니다.

        일을 그만두기 위해 , 추구하며 움직이는 것을 그만 두기 위해.



        언제나 일을 합니다. 비극이 아니면 희극이라고나 할까요.

마하라지:



        마음은 두 가지 상태에 머무르는데



        물과 같은 상태가 아니면 꿀과 같은 상태입니다.



        물이라면 아주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지만



        꿀은 아무리 흐트러져도 재빨리 흔들리지 않은 원래의 상태를 가져오지요.







 



 



질문자:



        마음은 그 본성 때문에 쉴 줄을 모릅니다.



        조용하게 해 둘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저절로 조용한 법은 없습니다.

마하라지:



        선생은 만성열병이 있어서 언제나 떨고 있나 보군요.



        마음이 쉬지 못하는 것은 욕망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모든 부정적 감정에서 해방되고 나면 마음이 고요해지기 마련이에요.







 



 



질문자:



        아이를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고통과 두려움을 배웁니다.



        배고픔은 냉혹한 선생이라 의존과 혐오를 가르칩니다.



        우리들의 무의식은 갈등으로 가득하고 그 갈등은 의식으로 흘러갑니다.

        우리는 언제나 화산 위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과의 교제가 마음을 달래는 효과를 느끼는데



        그 사람들과 떨어지고 나면 그 순간 오래된 골칫거리가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정기적으로 인도에 와서 스승님을 뵙습니다.

마하라지:



        선생은 지금 자신이 왔다갔다하며



        여러 상태와 분위기 속을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군요.



        난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그때 그때의 사건으로 봅니다.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연속되면서 자기들 자신을 내게 드러내면서



        나로부터 자신들의 존재를 이끌어내는데,



        꼭 나라고 할 수도 나의 것이라 할 수도 없어요.

        난 여러 가지 현상들 중의 하나도 아니고



        그 무엇에도 부속되어 있지도 않아요.



        난 지극히 단순하고 전적으로 독립해 있어서



        반대와 부정에 익숙한 사람들의 마음으로는



        우리가 독존이라는 것을 파악해 낼 수가 없어요.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문자 그대로 진심이에요.

        뭔가의 대립물로 되거나 부정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



        내게 명백하기 때문에 난 반대하거나 부정하지 않아요.



        난 그냥 그것들을 넘어선 다른 차원에 있어요.



        뭔가와 동일시하거나 반대해서 나를 찾지는 말아요.



        참자기는 욕망과 두려움이 없는 곳에 있습니다.

        자, 선생의 체험은 어떠신가요?



        자기 자신이 모든 일시적인 일들과 전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느끼시나요?







 



 



질문자:



        예 이따금 그렇습니다.



        그러나 일단 위험하다는 느낌이 끼어 들면,



        고독해지고 타인들과의 관계가 몽땅 단절된 느낌이 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바로 이점에 선생님과



        저의 사고 페턴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도인들의 경우에는 감정이 생각을 따라갑니다.



        인도인에게 생각을 하나 던져주면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서구인들의 경우에는 그 반대입니다.



        감정을 던져주면 거기에 생각을 덧붙입니다.



        선생님의 생각들은 지적으로는 매우 매력적입니다만,



        감정적으로는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마하라지:



        지성의 문제는 옆으로 재껴 놓으세요.



        이런 일에는 지성을 사용하지 말아요.







 



 



 



질문자:



        제가 이행할 수 없는 충고가 무슨 소용입니까?



        이런 것들은 모두가 관념인데 선생님께서는



        제가 느낌으로 생각에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관념은 느낌일수 없으며 저는 느낌이 없으면 반응이 안나옵니다.

마하라지:



        왜 자꾸 행위를 말합니까?



        도대체 행위를 선생자신이 한다고 봐요?



        모종의 알려지지 않은 힘이 활동하는 거예요.



        그런데 선생은 자기가 활동한다고 상상 하잖아요.



        사실은 단지 발생하고 있는 일을 바라보고 있을 뿐 이예요.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말이에요.







 



 



질문자:



        왜 제게는 난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이처럼 저항감이 많은 것일까요?

마하라지:



        아니 도대체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가 있나요?



        댁은 지금 마취를 당한 채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와 비슷해요.



        깨고나면 수술은 끝나있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선생 자신이 뭔가를 했다고 말할 수가 있겠어요?







 



 



질문자:



        그렇지만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 것은 제가 아닙니까?

마하라지:



        그렇지 않아요.



        결정을 하도록 만든 것은 한편으로 선생의 병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와 가족의 압력입니다.



        본인에게 선택권이 없고 오직 거기에 대한 환상만 있을 뿐이예요.







 



 



질문자:



        그렇지만 저는 선생님께서 보시는 그처럼 무력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단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를 뿐입니다.



        제게 부족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지식입니다.

마하라지:



        수단을 모르는 것은 힘을 지니지 못한 것만큼 명백히 그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문제는 당분간 접어두세요.



        결국에 있어서 우리가 왜 무력함을 느끼는 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력함을 뚜렷이 보기만 한다면 말예요.

        난 지금 나이가 일흔 넷인데 아직도 갓난아이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아이 같다는 느낌이 강해요.



        내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지금에조차 네게 있는 그 아이가 바로



        너의 참자아 (스와루파) 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한 순수한 존재의 상태로 돌아가도록 해요.



        거기에서는 "내가 있음" 이 "내가 이렇고"



        "내가 저렇다"라는 식의 오염 이전의 순수함 속에 남아있어요.

        지금 선생이 지고 있는 짐은



        잘못된 자기 동일시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 모두를 버리도록 하세요.



        나의 스승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날 믿어라, 넌 신성한 존재이다.



        이 말을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라.



        너의 기쁨도 신성하고 너의 고통도 신성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언제나 그 점을 기억하라.



        네가 곧 하나님이며 너의 의지만이 행해진다."

        난 참으로 스승님의 말씀을 믿었고



        머지 않아서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참되고 정확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여러 시간을 "내가 있음" 오직 그것과 함께 앉아 있곤 했는데



        그러자 머지않아 평화와 환희, 그리고 모든 것을 감싸는



        깊은 사랑이 나의 평상 상태가 되었어요.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사려져 버렸지요.



        나 자신도, 내 스승도, 나의 생활,



        나를 둘러싼 세계조차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오직 평화와 헤아릴 수 없는 침묵만이 남은 거예요.







 



 



질문자:



        그 모든 일이 겉으로는



        몹시 간단하고 쉬워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끔씩은 환희로운 평화를 느끼는 놀라운 상태가 찾아들고,



        그리하면 저는 그 상태를 지켜보면서 놀라와 합니다.

        정말 쉽게도 찾아오는 구나,



        이렇게 익숙하고 이처럼 완전한 것이 나인데,



        이처럼 가까이에 있는 상태를 위해 그처럼 애쓸 필요가 어디 있나?



        이번에야말로 좀 오래 머무르겠지.



        그러나 그런 평화는 곧 없어져 버리고 저는 다시 의문 속으로 빠집니다.

        이게 진리의 한 순간이었나,



        그렇지 않으면 일종의 정신이상이었나?



        만약 현실이었다면 왜 가버렸지?



        그래서 저는 아마도 이런 새로운 상태 속에



        저를 영원히 묶어 두려면 뭔가 독특한 체험이 있어야만 하고



        뭔가 결정적인 체험이 있기 전까지는



        이 같은 숨바꼭질이 계속될 수밖에 없나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하라지:



        지금 선생이 뭔가 독특하고



        극적인 놀라운 폭발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저 선생의 깨달음을 방해하고 지체하는 일일뿐입니다.



        폭발을 기대해서는 안돼요.



        왜냐하면 폭발은, 선생이 태어났을 때에,



        또 자기 자신을 존재-앎-느낌의 공유체로 깨닫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지요.

        지금 선생의 잘못은 오직 하나 뿐인데



        그것은 안을 밖으로, 그리고 밖을 안으로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외부에 있는 것으로 여기고,



        외부에 있는 것은 안에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겁니다.

        마음과 느낌은 외부의 것인데,



        사실 세계는 전적으로 자신의 심성이 투사된 것일 뿐입니다.



        바로 그것이 선생의 기본적 혼란이에요.



        다른 어떤 새로운 폭발도 그것을 바로 잡아주질 못해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서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질문자:



        하지만 생각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왔다갔다하는데



        제가 어떻게 생각으로서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생각의 끊임없는 잔소리가 저의 주의를 밖으로 돌리고 힘이 빠지게 합니다.

마하라지:



        생각을 바라볼 때 그저 왔다갔다는 것만 지켜봐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도 반응을 나타내지 말고 그냥 바라보고 있으라구요.



        처음엔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조금 훈련을 쌓고 나면



        마음이 여러 차원에서 동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모두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지요.

        사람의 관심이 어느 특정한 차원에 사로잡혀서



        다른 여러 차원을 배제하는 것은



        거기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을 때뿐입니다.



        또 그럴 때조차도 무시된 그 차원들에서도



        의식의 장의 바깥에서는 작업이 계속 진행되지요.



        그러니 자신의 기억 및 생각과 싸우려 들지 말고



        오히려 관심의 장 속으로 보다



        더 중요한 다른 질문들을 포함시키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가?"



        "난 어떻게 태어났을까"



        "날 둘러싼 우주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참된 것은 무엇이며, 일시적인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 등이 좋겠지요.



        만약 본인이 관심이 없으면 기억은 지속되지 않아요.



        구속을 지속시키는 것은 감정적인 고리일 뿐이예요.



        선생은 항상 즐거움을 구하고



        고통은 회피하며 언제나 행복과 평화를 구하고 있어요.



        지금 댁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행복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겠나요?

        그러니 방법을 바꿔보세요.



        고통과 즐거움에 관심을 주지말고,



        요구하지도 말고 거절하지도 말고



        모든 관심을 "내가 있음"이 항존하는 그런 차원 위에 모으도록 해봐요.



        그리하면 머지 않아서 평화와 행복이



        선생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을 방해하는 몇몇 특수한 창구를 통해서



        평화와 행복을 찾는 행위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예요.







        장애를 없애기만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찾을 필요가 없어요.



        이미 가진 걸 어떻게 또 찾아요?



        선생 자신이 이미 하나님에요. 최고의 실재라구요.



        그러니 우선 나를 믿도록 해요.



        선생을 믿으세요. 그리하면 첫걸음을 뗄 수가 있어요.

        그리고 나면 믿음이 체험에 의해 입증됩니다.



        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최초의 믿음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는 있는 일이 거의 없어요.



        어떤 일이든지 착수할 때에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거예요.

        심지어는 날마다 먹는 빵도 믿음이 있으니까 먹지 않아요?



        내가 한 말을 기억하면 아마 선생은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다시 말하는데 ,



        선생은 어디에나 있으면서 모든 것을 넘어서 있는 진리의 현존입니다.

        그러니 그에 따라 행동해 봐요,



        전체와 조화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 보라구요.



        그리하면 머지 않아 내가 하는 말의 실제 체험이 일어날 거예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믿음을 지니고 거기에 기초해서 움직이도록 하세요.







        난 지금 댁에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 내가 말을 하는 건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그 무엇보다 선생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안전하고 행복하길 원하고 있으니까 말이예요.

        그러니 그러한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부정하지도 말아요.



        자신을 사랑하는건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예요.



        단지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뭔지를 정확히 아는 거예요.



        선생이 사랑하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하고 ,



        사랑하며 , 분투하고, 창조하는 대 생명력입니다.

        선생이 사랑하는 건 그러한 생명이고



        그것이 바로 선생 자신이고 모든 것이지요.



        나누지 말고 한계를 넘어서서 그것을 전체적으로 깨닫도록 해봐요.



        그리하면 모든 욕망이 그 속에 녹아 들 거예요.



        더 큰 것이라야 더 작은 것을 담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선생 자신을 찾도록 해요.



        그걸 발견하면 모든 걸 발견할 수 있어요.



        누구나가 존재하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내가 있음" "내가 안다" '내가 사랑한다" 는 느낌에 머무르면서



        이러한 말들의 가장 깊은 뜻에 이르려는 의지를 지님으로써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질문자: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생각해도 됩니까?

마하라지:



        자신을 어떤 하나의 상과 동일시하지 말아요.



        만약 선생이 하나님이란 말로 미지의 어떤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난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라는 뜻이 되고



        만약 하나님을 자신의 자아로서 이해한다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최선의 방법은 "내가 있다"라는 단순한 느낌 위에



        꾸준히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예요.

        여기서는 인내심이 지혜예요.



        실패에 대해서는 생각하질 말아요.



        이 일에는 실패라는 것이 있을 수 없어요.







 



 



질문자:



        저의 생각은 절 내버려두질 않을 겁니다.

마하라지:



        그런 데에도 신경 쓰지를 말아요.



        생각과는 싸울 필요가 없어요.



        생각에 대해서는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생각은 더불어 싸워 줄수록 그 힘이 커질 뿐이에요.



        그러니 그냥 무시하고 쳐다보기만 하세요.

        그냥 "발생하는 일은 내가 있음으로 해서



        발생되는 것" 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해요.



        모든 것들은 선생에게 선생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체험을 하려면 우선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해야 해요.

        생각을 멈출 필요는 없고 그냥 관심을 꺼버리면 돼요.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러한 무관심한 마음 이에요.



        그러니 집착을 말도록 해요.



        그게 모두에요.



        온 세계는 고뇌로 되어 있고 갈고리는 선생의 것이에요.



        그러니 갈고리를 똑바로 펴주면 그 무엇도 선생을 묶지 못해요.



        그러니 선생의 탐닉하는 마음을 포기하도록 해요.



        그것 외에는 포기할 것이 없어요.



        습관적인 탐욕과 결과를 기대하는 습관을 버리도록 해봐요.



        그리되면 전 우주의 자유가 선생의 것이 될 것이니



        노력없는 상태가 되도록 해요.







 



 



질문자:



        삶이라는 것 자체가 노력입니다.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마하라지:



        할 필요가 있는 일은 하도록 하세요.



        저항하지 마세요.



        균형이라는 것은 동적으로, 오직 바른 일을 하는데에 기초 지워져야 해요.



        성장하길 싫어하는 아이가 되지 마세요.



        정형화된 제스쳐와 폼도 도움이 되질 않아요.

        전적으로 자기 생각의 명징함과,



        동기의 순수함, 행동의 정직함에만 의지하도록 해요.



        그리되면 잘못되진 않을 거예요.



        초월해서 모든 것을 뒤에 내버려 두도록 해요.







 



 



질문자:



        하지만 뭔가가 영원히 내버려둬진 채로 남을 수 있습니까

마하라지:



        선생은 24시간 끊임없는 그런 황홀경 같은 것을 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황홀경이라는 것은 필연코 왔다가 갈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의 두뇌라는 것은



        그런 식의 긴장을 오랜 동안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만약 뇌가 지극히 순수하고 섬세하지 않으면



        그러한 긴 황홀경은 뇌를 태워버릴 수도 있어요.



        원래 모든 것은 고정된 상태로 머무르지는 못해요.



        모든 것은 박동을 하게 마련이고 나타나면 사라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심장의 박동, 호흡, 소화, 자고 깨며



        나고 죽는 모든 것이 물결치며 왔다 가는 거예요.



        리듬, 주기 , 극단의 조화로운 교차야말로 생명의 룰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한 생명의 기본 패턴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만약 선생이 불변의 뭔가를 구하려 한다면 경험을 너머서야 해요.



        "내가 있음"을 언제나 기억하라고 말하는 뜻은



        "거듭 반복해서 그것으로 되돌아가라"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어떤 특별한 생각도 마음의 본래적 상태일 수 없고,



        오직 침묵만이 본래의 상태예요.







        침묵에 관한 생각이 아니라



        침묵 그 자체가 본래의 상태라는 거지요.



        본래의 상태에 머무를 때에는 마음이 경험과 마주칠 때마다



        곧 자연적으로 침묵으로 되돌아가게 돼요.



        아니 달리 표현하면 모든 경험이 침묵을 배경으로 해서 발생하는 것이죠.

        자, 이제 선생이 여기서 배운 것이 씨가 될 것입니다.



        아마 선생은 그걸 잊어버릴 수도 있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럴 거에요



        그러나 때가 되면 다시 살아서 싹이 트고 자라서 꽃과 열매를 이룰 겁니다.



        모든 것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니,



        선생은 아무 일을 하지 말고 단지 그것을 막지나 마세요.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7-17 09:04)

아름다운 마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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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천사님 저도 책은 모르겠구요... 제가 이글을 퍼오는 개인 블로그를 올려드릴게요... 거기에서 글로 보세요...
  <a href=http://blog.naver.com/dlfcprkgksk?Redirect=Log&logNo=60029097242 target=_blank>http://blog.naver.com/dlfcprkgksk?Redirect=Log&logNo=60029097242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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