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주제분류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미스터리와 보이지 않는 세계

영혼은 과연 존재하는가

고스트 헌터스

“영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건 대뇌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란 주장을 독자들은 아마도 심심찮게 들어봤을 것이다. 너무 자주 듣다 보니 당연한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무언가가 ‘없다’는 주장은 그것이 ‘있다’는 주장만큼 간단치가 않다.

“집 근처에서 흰 까마귀를 봤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체험을 언급하는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될 때 그 까마귀를 보여줌으로써 주장을 뒷받침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세상에 흰 까마귀 같은 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실제로 이 사람이 온 세상을 구석구석 살펴본 뒤 말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일종의 추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추정을 상대방의 체험보다 우위에 두려면, 사고력이나 판단력 면에서 상대방보다 월등하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양쪽의 능력이 엇비슷하다면 아무래도 체험을 해본 쪽이 유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만만찮은 상대를 만나는 바람에 자신의 월등함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할 경우, 상대방의 사고력이나 도덕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들춰내기라도 해서 우위를 점하려 애쓰게 된다. 영혼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도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곤 했는데 이 논쟁의 전형적인 사례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한다.

과학으로 내세를 탐구하려 했던 사람들

1912년 영매 에바 카리에르(Eva Carrière, 1886~19??)가 두 손 사이에서 불빛을 일으키고 있다. <고스트 헌터스>의 표지로 쓰인 사진 <출처: (cc) Albert von Schrenck-Notzing at commons.wikimedia.org>

19세기 말에 영혼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한 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영국의 캠브리지를 중심으로 SPR(심령연구학회,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공동 연구를 해나갔는데, 그 결과가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면이 있다.

미국 매디슨 대학의 언론학 교수이자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데보라 블럼(Deborah Blum, 1954~ )이 쓴 <고스트 헌터스(Ghost Hunters)>는 SPR의 창립에서부터 구성원들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막을 차분한 분위기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두툼한 분량의 이 책에는 수많은 군상과 사건들이 교차하는데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와 영매 레오노라 파이퍼(Leonora Piper, 1857~1950)가 주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SPR의 연구 대상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이목을 끌던 소위 ‘영매’들이었다.

그 당시 서구사회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교령회(seance)는 죽은 이들의 영혼을 불러내 갖가지 이적을 보여주는 모임이었다. 영혼과 소통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영매가 모임을 주도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트릭을 써서 순진한 사람들을 등치는 사기꾼에 지나지 않았다. 오락거리가 많지 않던 그 시절, 교령회는 서커스 입장료의 4배를 받아도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매력적인 비즈니스였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SPR의 창립 멤버였던 윌리엄 제임스가 ‘흰까마귀론’을 들고 나온 것은 바로 그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주장을 반박하려면 단 한 마리의 흰 까마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즉 “모든 영매는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데는 뛰어난 영매 한 명으로 족하다는 것이었다.

윌리엄 제임스의 흰 까마귀

제임스가 자신의 ‘흰 까마귀’로 지목한 영매는 보스턴의 가정 주부였던 레오노라 파이퍼였다. 파이퍼 부인은 그 당시의 통상적인 영매들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다. 화려한 개인기나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파이퍼 부인을 역사상 가장 출중했던 영매로 꼽는다면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을 받은 영매를 한 사람 꼽으라면 누구든 이 파이퍼 부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검증의 과정이 무려 30년 가까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미지 목록
1
2

1890년대의 윌리엄 제임스.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1875년에 심리학 교수가 됐다. 하버드 대학엔 그를 기념하는 윌리엄 제임스 홀이 심리학과 건물로 쓰이고 있다.

레오노라 파이퍼. 여덟 살 때부터 영능력을 보였으나 딸이 영매가 되길 원치 않은 부모의 의지에 따라 평범한 여자로 성장했다.

앞서 말했듯이 파이퍼 부인은 에너지를 물질화시킨다거나 무거운 가구를 공중에 들어 올리는 등의 개인기가 전혀 없었으며, 의식을 잃은 트랜스 상태에서 방문자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 말고는 달리 능력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바로 그러한 단조로움이 연구자들에게는 더 없는 매력으로 비쳐졌는데, 검증을 하는 과정 또한 그만큼 간명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그녀는 영매로서 두각을 나타내 보겠다는 의욕이 별로 없어 보였다. 트랜스 상태에 들어갔을 때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을 못했기 때문에 영매로서의 자의식이 아무래도 약할 수밖에 없었다. 속임수를 쓸 만한 동기 또한 그만큼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파이퍼 부인이 영매로 활동하게 된 것도 본인의 의지와 무관했다. 보스턴 중류층 상인의 아내로 평범한 생활을 하던 그녀는 어느 날 복부에 통증이 생겨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의사들이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하자 결국 심령치료를 하는 맹인을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맹인의 손이 몸에 닿는 순간 갑자기 트랜스 상태에 빠졌고, 자신의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중년 남자의 죽은 아들로부터 메시지를 받게 된다. 마침 그 남자는 보스턴 지역의 이름난 판사였다. 그가 죽은 아들의 메시지를 듣고 난 뒤 ‘전부 맞는 이야기들’이라고 확인을 해주자 이 사실이 보스턴 일대에 소문이 났고, 사람들이 파이퍼 부인의 집을 찾아와 상담을 청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녀는 기겁을 하고 돌려보냈지만,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계속 외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그 해 여름에 한 친구의 설득으로 어떤 미망인의 방문을 허락하게 된다. 마침 이 미망인은 윌리엄 제임스의 장모였다.

단순하지만 강력했던 파이퍼

이 당시 윌리엄 제임스는 동료인 새비지(Minot Savage, 1841~1918) 목사와 함께 보스턴의 내로라 하는 영매들을 모조리 만나본 뒤였다. 두 사람은 영매들이 하나 같이 뻔뻔스러운 사기꾼들일 뿐이었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무렵 제임스의 두 살 배기 아들이 폐렴으로 죽는 일이 일어난다.

이 때 제임스의 장모가 사위에게 파이퍼 부인을 소개하는데, 다행히 장모는 제임스의 신상에 관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은 상태였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상심한 아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장모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제임스는 영매를 방문하기 전에 동행한 아내에게 심령연구의 기본 수칙을 숙지시켰다. 어떠한 정보도 흘리지 않고, 유도심문에 걸려들지 않는 다양한 수칙들을 제대로 지키기만 하면 영매와의 시간이 엄청나게 지루해진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첫 대면에서 파이퍼 부인은 날씨에 대해 몇 마디 하더니 이내 트랜스 상태에 들어갔고, 제임스의 가족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했다. 죽은 장인의 이름인 기븐스를 처음엔 니블린이라고 했다가 기블린, 기븐으로 고쳐나가는 것이, 마치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를 조금씩 바로잡아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가족들의 개인사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모두 정확한 내용들이었다. 제임스는 기분이 점점 불편해졌다고 훗날 회상을 했다.

마침내 파이퍼 부인은 제임스 부부에게 죽은 아이가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제임스는 이것이 너무나 쉬운 추측이라고 생각했다. 영매를 찾는 부부들은 대개 죽은 아이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파이퍼 부인은 아이의 성별과 체구, 이름을 맞췄다. 제임스의 죽은 아들은 존이나 윌리엄이 아닌 ‘허먼 Herman’이란 흔치 않은 이름을 갖고 있었다.

새비지 목사는 제임스로부터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제임스의 장모가 영매에게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흘린 게 틀림없어 보였다. 새비지는 자신의 딸에게 상담을 예약하는 편지를 가명으로 보내게 했다(편지의 필적을 보고 정보를 입수할 가능성에 대비해 딸의 친구에게 대필을 시켰다). 그런 뒤에 세 사람의 머리카락을 책갈피에 넣어 딸에게 주고 파이퍼 부인을 만나보게 했다. 물론 딸은 그 머리카락들이 누구에게서 얻은 건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새비지 목사가 머리카락을 보낸 이유는 파이퍼 부인이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물건에 관련된 과거를 읽어내는 일) 능력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새비지의 딸은 아버지에게 “아무리 뛰어난 영매라도 그렇지, 이런 것으로 정보를 알아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푸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파이퍼 부인은 머리카락을 하나씩 손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머리카락의 주인 이름과, 그 머리카락에 얽힌 정보들, 머리카락을 자를 때 주고받은 이야기 등을 말했다. 새비지의 딸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파이퍼 부인의 진술을 받아 적었다. 나중에 확인해본 결과 모든 정보가 세부적인 부분까지 들어맞았다. 결국 새비지 목사는 평소와 사뭇 다른 내용의 보고서를 ASPR(미국심령연구학회, SPR의 미국지부로 출범)에 제출하게 된다. “이번만큼은 과학적인 연구에 시간과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1)

리처드 호지슨의 개입

리처드 호지슨. 블라바츠키, 유사피아 팔라디노 같은 스타급 영매들의 속임수를 밝혀내 유명인사가 됐다.

이제 공은 영국의 SPR로 넘어갔다. 그들에겐 리처드 호지슨(Richard Hodgson, 1855~1905)이란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회의론자들 사이에 아직도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호지슨은 멜버른 대학에서 법학 박사를 받고 영국의 캠브리지로 유학을 왔다가 SPR의 멤버가 된 인물이다. 저돌적이고 끈덕진 기질의 소유자인 그는 신지학회의 블라바츠키(Helena Petrovna Blavatsky, 1831~1891)를 비롯해 유사피아 팔라디노(Eusapia Palladino, 1854~1918) 같은 스타급 영매들의 속임수를 밝혀내 일약 세계적인 명사가 됐다. 새로운 얼굴인 레오노라 파이퍼가 언론을 통해 부상할 조짐을 보이자 마침 미국의 한 사업가가 호지슨에게 “자금을 대줄 테니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제안한 참이었다.

호지슨은 대서양을 건너와 보스턴에 사무실을 차리고 곧바로 파이퍼 부인을 찾았다. 듣던 대로 이 영매는 호지슨의 죽은 친구와 친척에 관해 아무도 알 수 없는 정보를 말했다. 그러나 철저한 회의론자였던 그는 영매가 몰래 스파이를 고용한 게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호지슨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심지어 윌리엄 제임스에게도 비밀로 한 채 파이퍼 부인의 뒤를 추적할 수사팀을 고용했다. 그러나 한 달 동안의 잠복 수사 끝에 이들이 알아낸 사실은, 의심할만한 단서를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파이퍼 부인과 그녀의 남편은 내담자들에게 별다른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고, 여행을 한다거나 모임을 갖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지역 도서관에 나가 신문을 읽거나 묘지를 방문하는 일도 없었다. 영매들이 잠재적인 방문자들의 정보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시도하는 일들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파이로 의심할 만한 외부인의 출입도 없었다.

그러자 이번엔 호지슨이 직접 나서서 조사를 시작했다. 우편물을 일일이 체크하고, 상담 과정에 빠짐없이 배석해 의심스러운 점이 없는지를 확인했지만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좀처럼 찾아낼 수 없었다. 결국 제임스와 호지슨은 파이퍼 부인을 영국에 보내기로 한다. 바다 건너 아무런 연고도 없는 땅에 떨어진다면 보이지 않는 스파이 조직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란 계산도 깔려 있었지만, 사실 이 시점에서 제임스와 호지슨은 스파이 조직의 존재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를 영국에 보낸 것은 보스턴이라는 환경과 보스턴 주민들의 집단무의식이 그녀의 능력과 모종의 연관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강했다.2)

영국으로 건너간 파이퍼 부인

영국에서 파이퍼 부인의 조사를 맡은 사람은 무선전신의 발명에 기여한 공로로 작위를 받은 물리학자 올리버 로지(Sir Oliver Joseph Lodge, 1851~1940) 경과 인문학자 프레데릭 마이어스(Frederic W. H. Myers, 1843~1901) 였다. 그러나 이역만리에서도 파이퍼 부인의 정보력은 크게 제한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일종의 텔레파시(마이어스는 ‘텔레파시’란 말을 만든 장본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로지와 마이어스는 그 부분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로지에게는 로버트라는 이름의 삼촌이 있었는데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로버트에게는 20년 전에 죽은 쌍둥이 형이 있었다. 로지는 로버트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 죽은 쌍둥이 삼촌의 소지품 하나를 소포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소포를 받아 끌러보니 낡은 금시계가 있었다. 소포를 본 사람은 로지 말고 아무도 없었다.

파이퍼 부인은 트랜스 상태에서 시계를 건네받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시계는 원래 당신 삼촌 것이었어요. 그는 또 다른 삼촌을 아주 좋아했어요. 그 삼촌의 이름은 로버트. 지금 이 시계의 주인이기도 하죠.” 여기까지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파이퍼 부인의 목소리가 변했다. 훨씬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파이퍼 부인은 트랜스 상태에서 매우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냈다) “이건 내 시계다. 로버트는 내 동생이고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얘야, 나 제리 삼촌이야!” 로지의 죽은 삼촌이 바로 제리였다.

로지는 이것이 텔레파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로지의 기억 속에 제리란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촌! 삼촌과 로버트 삼촌만이 기억할 수 있는 걸 말해 보세요. 내가 알 수 없는 얘기를요!” 로지의 요구에 파이퍼 부인(혹은 제리 삼촌)은 어릴 적 개울에서 헤엄을 치다 빠져 죽을 뻔한 일, 스미스네 밭에서 고양이를 죽인 일, 어릴 때 작은 소총을 가졌던 일, 그리고 뱀가죽을 가지고 있었던 일 등을 말했다. 로지는 로버트 삼촌에게 편지를 써서 확인을 부탁했다. 로버트 삼촌은 개울에서 수영을 하다 위험에 처한 일을 기억하고 있었고, 뱀가죽은 지금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일들은 기억을 못했다. 노인이라 기억력이 감퇴된 탓일 수도 있었다. 로지는 또 다른 삼촌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삼촌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으며 고양이를 죽인 일만은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나 그의 삼촌이 기억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이라고 못할 리가 없잖은가? 파이퍼 부인이 사전에 정보를 캐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로지는 세 명의 삼촌이 자라난 마을에 사립탐정을 보내 누군가 미리 정보를 캐낸 적이 있는지 조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도 찾아낼 수 없었다.

마지못한 시인

애초에 호지슨이 SPR의 신임을 받은 이유는 특유의 검소하고 강직한 성품 때문이었다. 그는 영매로부터 매수를 당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강직함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전 세계의 수많은 회의론자들이 자신에게 한껏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매니 뭐니 하는 의심스러운 작자들의 실체를 보기 좋게 까발리면, 전보다 훨씬 전폭적인 성원을 받을 것이고 탄탄대로가 보장될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호지슨은 보고서에서 파이퍼 부인의 트랜스 상태가 진짜이며, 코 밑에 암모니아를 적신 천을 갖다 대기도 하고, 입에 소금이나 가루 비누를 넣어보기도 하고, 부어오를 때까지 살을 꼬집어보기도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이른바 콜드 리딩(cold reading), 즉 눈치로 감을 잡아 정보를 얻어내는 일이 불가능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이퍼 부인이 정말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3)

사실 파이퍼 부인에겐 석연치 않은 의문점들이 있었다. 일단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면 ‘닥터 피니(Phinuit)’라는 요란한 목소리를 가진 제2의 인격이 나타나 사람들을 상대했는데, 닥터 피니는 자신이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서 의사 생활을 했으며, 1790년부터 1860년까지 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거주지를 방문 확인해 본 결과 끝내 그런 인물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었을뿐더러, 결정적으로 피니는 자칭 프랑스인이면서 불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게다가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학 지식은 변변찮은 불어 실력만큼이나 보잘것없었다. 제임스와 호지슨은 닥터 피니가 파이퍼 부인의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란 결론을 이 보고서에서 내리고 있다. 그런데 보고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 결론을 뒤집을 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새로운 영혼이 들어서다

파이퍼 부인에 대한 조사가 어느덧 8년째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호지슨의 친구이자 회의론자였던 작가 조지 펠루(George Pellew, 1859~1892)가 말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펠루는 죽기 전 호지슨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만일 자기가 죽어 사후세계를 확인한다면 반드시 그 사실을 알려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즈음 자신이 펠루라고 주장하는 영혼이 파이퍼 부인을 통해 호지슨을 불러내는 일이 생겼다. 그의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분간할 수 없었네. 죽었는데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랐고 말이지. 이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지.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말일세.”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호지슨은 펠루의 지인들과 펠루를 모르는 사람들을 뒤섞어 파이퍼 부인의 방안에 한 사람씩 들여보냈다. 파이퍼 부인(혹은 펠루임을 주장하는 영혼)은 지인이 방안에 들어올 때마다 그와의 추억이나, 자기들만이 알고 있는 일들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호지슨은 총 130명의 방문객을 들여보냈는데 그중 펠루의 지인은 20명이었다. 그러나 펠루는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금방 알아보았다. 예외였던 한 명은 18세의 소녀였고 펠루와 만났을 때 고작 열 살이었다. 얼굴이 변해 못 알아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이올린을 지금도 그렇게 엉망으로 연주하니?”라는 말로 그녀에 관한 기억을 떠올렸다.

호지슨은 이 현상이 텔레파시로는 설명이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20명이 한결같이 텔레파시 매개자로서의 재능을 갖고 있어, 영매와 정보를 나눌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호지슨은 1898년에 출판된 두 번째 보고서에서 파이퍼 부인이 영혼과 접촉해 정보를 받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린다.4)

그러나 SPR의 초대회장이던 시지윅(Henry Sidgwick, 1838~1900)은 20명 전원의 텔레파시가 불가능한 조건만은 아니란 이유를 들어, 텔레파시 설(說)을 배제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반박했다.

기묘한 후일담

파이퍼 부인을 통해 20년 넘게 이어지던 연구는 SPR의 주요 멤버였던 시지윅과 마이어스, 호지슨 등이 잇달아 세상을 뜨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캠브리지의 고전 학자 베럴(Margaret Verrall, 1851~1912)이 친구였던 마이어스와 그의 동료들로부터 메시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죽은 마이어스의 영혼이 사후 통신을 시도한다면 자신이 매개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동기술법(automatic writing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나, 내용 등을 의식하지 못한 채 다른 누군가가 이끄는 상태로 글을 작성하는 일)을 훈련했고 마침내 마이어스의 서명이 있는 글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베럴 부인은 라틴어와 희랍어에 능했는데 그녀가 받는 글들은 문체가 약간 다른 고전어 문장들이었다.

같은 시기에 대서양 건너편의 보스턴에서 파이퍼 부인이 베럴 부인과 똑같은 내용의 영어 문장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인도에서도 ‘홀랜드’란 가명을 쓰는 여성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는 전갈이 왔다. 홀랜드 부인은 <정글북>의 저자인 키플링의 여동생 앨리스 플레밍(Alice Kipling Fleming, 1868~1948)이었다. 베럴 부인의 딸인 헬렌도 자동기술을 통해 메시지를 받았다. 네 여성이 받은 문장은 퍼즐처럼 이어져 하나의 글을 형성했다. 이로써 교차통신(cross correspondence)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접촉이 장기간 이루어지게 됐다. 교차통신은 1901년에 시작되어 1932년에야 끝났는데, 문서를 해독하는 조사자들이 방대한 문서량을 감당하지 못해 중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5)

고전학자이자 시인이었던 프레데릭 마이어스. 사후 교차통신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성에 낀 유리창 밖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시야도 뿌옇고 소리도 희미해 마치 창문 너머의 둔감한 비서에게 글을 받아 적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SPR의 교차통신 테스트는 주로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됐다. SPR의 연구원인 피딩턴(John Piddington)이 트랜스 상태에 빠진 파이퍼 부인에게 라틴어와 희랍어로 된 지시 사항을 읽어주면서 그 메시지를 베럴 부인에게 전해 달라고 요청한다. 만일 지시 사항이 전달된다면 텔레파시 이론이 틀리고 영혼 이론이 맞음을 암시하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초등교육만 받은 파이퍼 부인은 고전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이다.

피딩턴은 파이퍼 부인에게 고전어로 ‘당신들의 메시지를 잘 받았고 그 의도를 충분히 파악했다. 베럴 부인에게 확인 메시지를 전달할 때 마지막에 원과 삼각형을 확인의 표시로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그날 밤 캠브리지의 베럴 부인은 애너그램(철자를 바꾼 어구) 문장과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의 시에서 발췌한 문장을 받았는데 마지막에 원과 삼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애너그램과 브라우닝의 시구가 나오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겠다) 그 뒤 다시 파이퍼 부인이 브라우닝의 시구를 확인하는 문장을 받아냈다.

교차통신은 텔레파시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특정한 영혼이 중간에 개입해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로 보였다. SPR의 핵심 연구원이었던 앨리스 존슨(Alice Johnson, 1860~1940)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지난 몇 년간 일군의 사람들이 내세에서 연락을 시도해 왔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들은 영혼 존재설과 그 증거들에 대해 제기됐던 반론들을 다 알고 있으며, 그 반론들이 모두 제기될 때까지 기다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 모든 반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교차통신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안해 냈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6)

1909년 1월 10일자 뉴욕 타임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기사는 바로 이 교차통신에 관한 것이었다. “올리버 로지 경이 교차통신을 통해 내세에 대한 훌륭한 실험 결과를 얻어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윌리엄 제임스는 내세의 존재가 100% 확실하게 입증됐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호지슨의 영혼이라고 주장하는 존재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몇 가지 틀린 발언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클럽에서 수영을 하던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라는 요구에 한 명만 빼고 전부 틀린 이름을 댔으며, 심지어 자기 대답이 틀렸는지조차 의식을 못했다는 것, 그리고 평소의 호지슨이라면 절대로 쓰지 않았을 말투를 썼다는 이유였다.

열광과 냉소 사이에서

사실 파이퍼 부인은 터무니 없는 오류를 범한 전례가 몇 차례 있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인 스탠리 홀(G. Stanley Hall, 1844~1924)이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의 조카딸을 거론하며 파이퍼 부인에게 상담을 요청했을 때, 파이퍼 부인을 통해 나타난 호지슨이 그 가공의 영혼과 접촉했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7) 또한 파이퍼 부인이 트랜스 상태에서 한 예언들의 상당수가 빗나갔다.

마이클 세이지의 <Mrs. Piper & the Society for Psychical Resarch>의 표지. 그는 파이퍼 부인이 하녀와의 친분을 이용해 정보를 빼냈다는 회의론자들의 가정을 반박했다.

회의론자들은 이러한 이유를 들어 파이퍼 부인의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파이퍼 부인의 하녀가 윌리엄 제임스의 하녀와 서로 가깝게 지냈으며, 친분을 이용해 정보를 빼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8) <파이퍼 부인과 SPR>의 저자 마이클 세이지(Michael Sage)는 이러한 가정을 반박한다.9)

파이퍼 부인이 정보를 읽어낸 사람들은 미국 전역과 유럽 각처에 살고 있던 이들이어서 하녀가 엿들을 수 있는 성격의 정보가 아니었으며, 영국으로 건너가서 받은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점 등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스트 헌터스(Ghost Hunters)>의 저자인 데보라 블럼은 실제 사건들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둘 뿐,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볼 때 SPR의 연구가 영혼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볼 수는 없어도, 이 연구를 실패로 단정 짓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아무래도 성급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인 단서가 나올 때까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후속 연구10)를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영혼의 존재’는 어떠한 실험 결과가 나와도 믿을 사람은 믿고 거부할 사람은 거부할 가능성이 높은 주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관을 형성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칠 문제이므로, 판단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가급적 있는 그대로 제공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파이퍼 부인에 대해 우호적인 정보를 주로 소개한 것은 정보가 그동안 부정적인 쪽으로 편향되게 제공되어 왔기 때문이다(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뜻인지, 아예 묵살이 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에서 반대되는 관점의 정보를 제공하긴 했지만 최종 판단은 당연히 독자들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석

1
James and Savage, "Report of the Committee on Mediumistic Phenomena," Proceedings of the 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1 (1882): p.102-6.
2
Oppenheim, Janet. (1985). The Other World: Spiritualism and Psychical Research in England, 1850-1914. p.373-4.
3
Hodgson, (1892). first report on Mrs. Piper: "Certain Phenomena of Trance"
4
Hodgson, second report on Mrs. Piper: "A Further Record of Observations of Vertain Phenomena of Trance: Additional Report on Mrs.Piper," Proceedings of the 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13 (1898): 284-583.
5
존 그레이, 불멸화위원회. p106.
6
Johnson, Alice. "On the Automatic Writing of Mrs. Holland", Proceedings of 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21 (1908): 374-377.
7
Julian Franklyn. (1935). A Survey of the Occult. Kessinger Publishing. p.248.
8
Massimo Polidoro. (2001). Final Séance: The Strange Friendship Between Houdini and Conan Doyle. Prometheus Books. p. 36.
9
Michael Sage. (2006). Mrs. Piper & 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p17.
10
최근에 새롭게 보완된 형태의 실험들이 여러 차례 수행되었다. 이에 대해선 Gary E. Schwartz의 <The Afterlife Experiments(2002)>와 <The Truth about Medium(2005)>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발행일

발행일 : 2014. 10. 30.

출처

제공처 정보

  • 김성진 출판기획자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기획 관련 일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머니 매트릭스]가, 역서로는 [어스바운드], [종교의 절정체험(출간 예정)]이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네이버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