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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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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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환준, 작성일 02-12-14 17:10, 조회 6,94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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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현재 대학생으로서 헌책방에서 우연히 조문덕 원장님이 쓰신 <<피라밋 히란야와 우주문명>>(문덕출판사의 세번째 책)을 접하게 되었고, 크게 동감되에 며칠 후에 연구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체험실에서 3차원을 넘는 기를 생애 처음 접하게 되었고, 우선 '종이 피라밋 모자'와 '대형 코팅 히란야', '옴진언 테이프'를 가지고 직접 효험을 본후 다른 시도들을 해보리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장님의 두번째 저술인 <<한인(桓人)>>을 선물로 받아서 이또한 탐독해 보았구요.

 

  저는 체가 그렇게 맑지는 않아서 기감이 발달하지 않은 단계여서인지 몰라도 '종이 피라밋 모자'를 쓰면 짓누르는 듯한 감각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느낌이 일반적인 물질의 중량감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책에 나와 있던 내용들을 더 신뢰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나를 정화하여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수입원이 없는 학생인 관계로 여러가지 시도를 한꺼번에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가지씩 해볼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접하기로 하고 원장님의 책들과 홈페이지의 글들을 여러번씩 읽으며 이해를 넓혀가다가, "가족의 업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서, 저혼자 잘났다고 깨달으려 하는 것보다 온 가족이 다함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에 공감이 되어 동생을 대동하고 연구소에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원장님께 기치료를 받았고 '은히란야 메달'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앗, 여기서 잠시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해야 될것 같군요.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3형제로 구성되어 있는 5인 가족이며, 고향은 경기도 화성이고 1990년도에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당초의 의도는 자식들을 공부시켜 보겠다는 아버지의 의지에서 나왔으며 어린마음에 저는 한껏 들떴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이것이 웬일인지 몰라도 우리 가족의 일은 여러 곳에서 꼬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 가계가 어려워지자 어머니께서 식당 주방일 등의 힘든 일을 하셔서 겨우 가정경제를 지탱해 나갔으며, 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속상해하며 술에 빠져 있다가 아파트 경비원 등을 전전하시면서 3형제를 근근히 키워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3형제도 형을 제외하고는 다들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가정 분위기는 날로 답답해지고 어두워졌습니다. 심지어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채 2달을 버티지 못하고 자퇴하여 정신적인 방황을 시작했고, 동생은 고등학교에 입학식마저 가지 않고 자퇴를 하여 방황했습니다. 그나마 공부를 잘하던 형도 서서히 정신적인 혼란을 보이다가 1997년 정신분열증의 첫 발작이 나타나고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 무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꽉 막혀있듯 답답한데,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나가서 저녀때나 돌아오시고, 아버지는 사업에서 실패하고 남은 돈을 주식시장에서 모두 잃고 다시금 실의에 빠져 술에 의존하고 계신데 형은 퇴원은 했지만 통원을 하며 약을 정기복용하나 사회생활은 불가능한 상태였고, 동생은 가출해서 소식이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그래서 결심을 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여 서울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그것으로 무엇인가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나마 자식교육을 위해 다시금 일을 하기 시작하셨지만(버스기사) 가출했던 동생이 교통사고로 생사가 불분명했던 사건이 있었으며, 형은 호전의 기미가 없었고 어머니의 건강도 날로 악화되어 갔습니다. 저 또한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며 소위 '놈팽이'(^^먹구 대학생이라고도 하지요.)의 나날만 보냈구요.

 

  이 때까지가 바로 조문덕 원장님을 접하기 전의 우리 가족의 상황이었고 다시 그 이후로 돌아가겠습니다.

 

  동생은 기를 받은 후 잘 모르겠지만 일단 편해졌다고 했고 현재 목걸이를 항상 패용하고 있는데 더 이상 방황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동생은 방위산업체에 근무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서도 교통사고가 있거나 했었거든요. 그런데 가족은 정말로 그 끈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저와 동생이 좋아진 것 만으로 형의 호전이 일어났습니다. 전에는 10분이면 2-3회의 망상과 환청 등에 시달렸던 형이 30분 이상 집중하여 텔레비젼을 시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만 해도 연구소의 천주생기 생식을 옴진언 테이프로 만든 육각고리수와 함께 먹어보았는데, 체질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었습니다.(원래 178Cm에 86Kg정도의 거구였는데 현재 70Kg의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고무된 저는 우리 가족의 근원적 문제 중 하나라고 하는 무덤의 영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모님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5대독자인 관계로 우리가 관리하는 무덤이 꽤 많은데 '무덤용 히란야'를 다 묻는 것은 제 힘으로는 힘들었거든요. 결국 추석 때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여(저의 달라진 모습과 형의 호전에 부모님도 의외로 쉽게 동의했습니다.), 그 다음주에 직계 무덤에는 전부 그 히란야를 묻었습니다.(5대조는 100년 이전에 사망한 것 같아 생략했습니다. 원장님께서 그러라고 하시더군요.) 그와 함께 부모님과 형에게도 육각고리수를 만들어 마실 것을 권했고, 최근에는 아르바이트를 하여 형에게 '대형 옥타헤드론'을 구입하여 선물했습니다.

 

  현재 형은 믿어지지 않게 점점 좋아져서 지저분한 망상과 환청 없이 다른 사람과 대화도 장시간 나누게 되었으며 나쁜 꿈에 시달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저 또한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노력해 나가는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는 한 생명체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이제까지의 체험의 일부를 여기 써 봅니다.

 

  이 외에도 저는 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풍치가 있었으나, 육각고리수를 복용해 나가자 이제는 뻣뻣한 칫솔로 양치를 해도 잇몸에서 피가 나오는 일은 없게 되었읍니다.(체험을 한번에 다 정리하려니 힘드네요.^^)

 

  여러분,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에고를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인식의 전환으로서 열린 마음으로 노력하는 것이지만, 큰 방해요인이 되어서 일단 처치곤란한 무덤의 영적 문제는 원장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았습니다. 또한 자기자신의 에고를 버리는 것 즉, "정화(淨化)'를 위해서도 원장님의 기제품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저는 저의 체험에 입각해서 보증합니다.

 

  많이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이제는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노력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모두 빛으로 나아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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